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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 Mar 25. 2020

나는 어떻게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나 - 2

포트폴리오 준비하기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는 것과 단순히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다. 그림 그리기는 혼자 예술뽕에 차서 얼마든지 즐기며 자기만족에 할 수 있지만 포트폴리오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존재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 만족이 아니라 내 그림을 볼 사람의 입장에 맞춰 준비해야 한다. '내 그림을 이해 못하다니, 너의 취향에 문제가 있어!'라고 치부해버리고 싶다면 일러스트레이터가 아니라 예술가의 길을 가야 한다. 내 포트폴리오를 보게 될 사람은 내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 열정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는 게 아니라 특정 이익을 추구하는 프로젝트에 당장 투입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숙련된 사람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포트폴리오를 통해 내가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는지를 잠재적 고객에게 어필해야 한다는 말이다.


포트폴리오 만들기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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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지도 알게 된 거 같고 혼자 자기만족을 위해 그리는 게 아닌 클라이언트를 위해 그림을 그리는 프로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어 졌다! 목표가 생기니 한참 잊고 살았던 열정이 내 심장을 달구는 듯했다. 한술 더 떠 '내가 안 해서 못한 것이지 막상 하면 못할 게 없다니까!' 하는 밑도 끝도 없는 근자감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연필을 잡았다. 도통 뭐부터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알리가 없다. 그림 그리는 것 자체는 좋은데 이걸로 일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전혀 알지 못했다. 물론 자기 작품을 홍보하고 알려야 한다는 것 정도는 대충 알고 있었지만 이대로 인스타그램에 그림만 올린다고 되는 일인지, 다른 방법이 있는 건지, 내가 제대로 하고 있긴 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허공에다 혼잣말하는 느낌이랄까. 데일리 드로잉을 하면서 A4용지 반 정도 되는 크기의 그림을 매일 그렸는데 잠재적 클라이언트들에게 보여줄 포트폴리오는 뭔가 더 크고 진지하게(?) 그려야 할 것 같아 A3 사이즈의 종이에 더 공들여서 그리기 시작했다. 더 큰 사이즈만큼 힘들게 완성한 그림들을 보면 뿌듯하기도 했지만 그리면 그릴수록 점점 더 내가 뭘 하고 그리고 있는 건지, 이렇게 마냥 내가 그리고 싶은 것만 그려서 될 일인지 더더욱 눈앞이 뿌예지는 느낌이었다.


데일리 드로잉을 하면서 그림을 꾸준히 인스타그램에 올리다 보니 다른 일러스트레이터들과 조금씩 교류를 하기 시작하였는데, 그러면서 알게 된 점이 있다면 프로이던 아마추어던 그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묵묵히 혼자서 개인 프로젝트를 해나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포트폴리오 챌린지를 만들어 온라인상에서 자신의 그림을 서로에게 보여주고 피드백을 주고받는 그룹들도 있었다. 히키코모리처럼 골방(?)에 처박혀 맨날 혼자 그림을 그리던 나에겐 이런 일러스트 커뮤니티가 절실했다. 내가 낄 수 있는 그룹이 있을까 하고 여기저기 수많은 온라인 커뮤니티들을 기웃기웃거리던 중 우연히 일러스트레이터 지망생들/현직 일러스트레이터들을 위한 온라인 코스를 발견하게 되었다. Make Art That Sells라는 일러스트레이션 관련 수업을 제공하는 회사였다.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수업 비용을 보니 절대 저렴하지 않아 계속 망설였지만 수업을 들은 학생들의 작품, 후기들을 꼼꼼히 살펴본 후 수업료를 내고 들을 가치가 있을 거 같다고 판단하고 MATS-B라는 수업을 결제했다. 일러스트가 활발히 사용되고 있는 TOP 5 분야를 소개하고 그 분야에는 어떤 회사들이 있는지 아트디렉터들이 어떤 걸 원하는지, 포트폴리오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 굉장히 많은 정보가 있었다. 그리고 각 분야마다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게 매주 과제도 내주었다. 혼자서 맨땅에 헤딩을 하던 나에겐 엄청나게 유용한 정보였고 그 수업을 결제한 학생들만 들어갈 수 있는 페이스북 그룹에서도 많은 격려와 칭찬으로 큰 용기를 얻게 되었다. 

온라인 수업 들으면서 제출했던 과제들


수업에 대한 만족도가 굉장히 컸던 나는 같은 회사의 어린이 동화책 일러스트 수업도 결제했다. 5주 과정 동화책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는 수업이었는데 원고를 읽고 분석하고, 캐릭터 만들기, 배경&표지, 포트폴리오 홍보 방법, 출판사 아트디렉터의 조언, 동화책 출판 분야에 관련된 실용적인 정보까지 5주 동안 소화하기 엄청 벅찰 만큼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온라인 수업이지만 페이스북 그룹에서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홀로 고독하게 그림 그린 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 좋았다. 이 당시 수업을 들으며 배웠던 정보는 아직도 참고자료로 쓰고 있고, 과제로 그렸던 그림들은 일러스트 일로 돈을 벌 수 있게 해 준 소중한 포트폴리오가 되었다. 


그 외에도 일러스트 관련 정보를 얻거나 포트폴리오를 쌓을 수 있을 다른 온라인 수업들을 많이 들었는데, 몇 가지 예를 들자면 당장 써먹을 수 있는 테크닉이나 스킬들을 배울 수 있는 Skillshare, 그림책과 그래픽 노블 등 스토리텔링을 목적으로 하는 일러스트레이션을 배울 수 있는 SVSlearn에서도 많은 것을 배웠다. 지금까지 나열한 웹사이트들은 모두 영어권 국가의 회사들이지만 영어를 못한다고 좌절하지 말자! 요즘은 유튜브에도 좋은 채널들이 많고 클래스 101 같은 유료 강의 사이트들도 있으니 한국어로도 얼마든지 일러스트 관련 강의를 들을 수 있다. 


온라인 강의를 듣는 것과 동시에 일러스트 챌린지에도 참여했다. 앞에서 잠깐 언급한 SVSlearn에선 한 달에 한 번씩 그림 주제를 내주고 먼슬리 챌린지에 도전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 당시 나는 커뮤니티에 속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고 포트폴리오도 쌓을 수 있다는 생각에 적극 참여하였다. SVSlearn 포럼에는 작업 과정을 공유하는 글들도 올라오고 정보교류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그런 포럼 게시판 글들을 읽고 있으면 '세상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도 덩달아 열정이 달아올랐고 더 잘하고 싶다는 의욕에 불타올랐다.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는 과정은 길고 힘들고 외로운 순간의 연속이기 때문에 이렇게 동기부여를 해주는 것들이 있어야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해 나갈 수 있다. 

SVSlearn 먼슬리 아트 챌린지를 하며 그렸던 그림들


포트폴리오 준비 팁

1. 통일감이 드는 포트폴리오를 만들자.

'저는 이런 것도 할 수 있고 저런 것도 할 수 있어요!'라고 외치며 본인의 다재다능함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겠지만 그렇게 중구난방인 포트폴리오는 잠재적 클라이언트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 사람은 어떤 스타일로 그린다는 거지?'라는 생각만 들게 할 뿐이다. 통일감이 느껴지는 포트폴리오가 중요한 이유는 클라이언트가 일을 맡겼을 때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예상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들도 정해진 예산에서 콘텐츠를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에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예측이 가능한 일러스트레이터를 고용하고 싶어 한다. 큰 비용을 들여서 일러스트를 의뢰하여 맡겼는데 본인들이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것이 나오면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도 엄청나게 곤란해진다. '저는 이런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는 사람입니다'라는 걸 확실하게 보여주자.


2. 일단 내가 일하고 싶은 분야를 정하자. 그리고 그 분야에 집중된 포트폴리오를 만들자.

예를 들어 동화 일러스트 포트폴리오를 집중적으로 준비해서 보여준다면 확실하게 그 분야에 특화된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인상을 남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동화 일러스트에 관한 일이 곧 들어올 가능성이 커진다. '난 아직 내가 어떤 분야의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은지 못 정했는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다. 걱정하지 말자. 그건 하루아침에 정해지는 게 아니다. 여러 가지 경험들을 해보고 꾸준히 그림을 그리다 보면 자신이 하고 싶은 분야가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꼭 한 가지 분야의 일러스트 일만 할 필요도 없다. 만약 동화책도 하고 싶고 패션 쪽도 하고 싶다면 둘 다 해도 된다. 중요한 건 두 가지를 섞지 말고 동화 일러스트와 패션 일러스트 포트폴리오를 따로 준비하라고 말하고 싶다. 클라이언트가 누구인지, 어떤 분야를 타깃으로 하는지에 따라 포트폴리오를 각각 다르게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동화 일러스트를 준비한다고 해서 꼭 동화책 분야에만 내 그림이 쓰이는 것도 아니다. 아동복, 교육, 장난감, 식품, 잡지 등 다른 어린이 관련 사업분야로도 얼마든지 확장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건 일단 추후의 문제이고 처음 일러스트 커리어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은 한 분야에 집중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그 분야의 잠재적 클라이언트들에게 자신을 고용하라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3. 강의를 듣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고군분투하며 모든 걸 혼자 헤쳐나가려고 하지 말고 필요하다면 전문가들의 가르침을 받으라고 말하고 싶다. 요즘은 일러스트와 예술의 경계가 흐릿해진다고들 하지만 확실히 일러스트는 돈을 받고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그림을 그려주는 상업미술이다. 일러스트레이터로 돈을 벌려면 내 그림은 잘 팔려야 한다. 내 그림을 사주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들이 뭘 원하는지를 잘 파악하고 그들이 원하는 걸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내 그림을 더 잘 팔리도록 할 수 있는지일러스트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어떤 스타일이 업계에서 선호되고 있는지, 어느 분야에서 일러스트가 많이 사용되고 있는지 등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정보들은 전공자가 아닌 이상 혼자 그림만 그린다고 저절로 알아지는 게 아니다. 물론 많은 시간을 투자해 독학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다. 조건이 된다면 대학에 들어가 일러스트를 전공하는 방법도 있다. 그림에 대해 전문적으로 배울 수도 있고 늘 조언을 구할 수 있는 교수님과 선배들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난 돈도 없고 나이도 많다. 얼른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단 말이다!!'라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우리에겐 온라인 강의가 있다. 나 역시 유료 강의를 들으면서 일러스트 시장에 대해 많은 걸 배울 수 있었고,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자세히 알게 되었다. 온라인 강의는 일러스트레이션에 대한 지식도 없었을뿐더러 주변에 물어볼 사람도 마땅히 없던 나에게 큰 희망이었고, 자기만족으로 그림을 그리고 마는 것이 아니라 일러스트레이터를 커리어로써 발전시켜가는 방법을 알게 해 준 고마운 존재이다.



그림만 그린다고 좋은 포트폴리오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잠재적 클라이언트가 무엇을 필요하로 하는지, 대중이 무엇을 보고 싶어 하는지를 알려면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한다. 여기서 공부란 일러스트가 어디에 무슨 목적으로 쓰이고 있는지, 트렌드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클라이언트가 제공하는 정보를 좀 더 효율적으로 시각화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등을 연구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잘하기 위해선 절대 혼자서 방구석에 처박혀 냅다 그림만 그리고 있으면 안 된다.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관심도 많이 가져야 하고 여러 분야의 책도 많이 읽어야 한다. 호기심이 많아야 꾸준히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이 부분은 포트폴리오뿐만 아니라 홍보를 위해서도 꾸준히 해야 하는 일이니 다음 포스팅에서 다시 한번 다루어 보도록 하겠다. 


데일리 드로잉 프로젝트 이후 거의 1년 동안은 취미가 아닌 프로로써 내 그림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 연구하고 배우는 시기였다. 이제 잠재적 고객에게 보여줄 포트폴리오가 생겼다. 그런데 이걸 누구한테, 어디다가 보여줘야 하는 것인가?


다음 화에선 홍보에 대해 포스팅할 것이니 stay tuned!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eunji.illustration/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EunjiJung

샵: https://etsy.com/ca/shop/EunjiJung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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