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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드가 Mar 15. 2020

계좌에 마이너스 일억이 찍혔다

트레이더로 살아낸다는 것 (1)

  지난 한 주간 해외 유수의 커뮤니티와 포럼, 그리고 트위터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다양한 SNS에도 수많은 분석을 기고했지만 브런치에는 그 어떠한 글도 남기지 않았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이 지나치게 깊은 금융 지식을 설파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금 이 글 역시 현재 시장 상황에 대한 논리적인 분석이나 예측을 중점으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지난 3주간 개인적으로 겪은 일을 투명하게 기록하는 한 편의 수기를 남기고 싶었을 뿐이다.


  나는 마지막 금융위기였던 2008년을 겪어보지 못했다. 그 당시 나는 학생 신분이었고 아직 투기의 세계에 입문하기 직전이었다. 그러니 1997년의 IMF와 2000년대 초 IT버블 역시 겪어보지 못했다는 말이다. 지난 3주간의 경험은 지난 수년간의 시간 동안 내가 쌓아온 시장에 대한 지식과 경험, 원칙과 논리를 모두 붕괴시킬 만큼 강렬한 경험이었다. 그간 크고 작은 파도들을 겪지 못해 본 것은 아니다. 나는 2017년 비트코인 버블에 올라탔으며, 12월 이후의 끝없는 약세장 역시 지켜봐 왔다. 2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친 2018년의 글로벌 증시 조정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았으며 좋은 기회로 활용해 큰 수익을 쌓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역시 세상에 "금융위기(Financial Crisis)"라는 말이 아주 직접적이고 가슴에 와 닿게 거론될 정도의 파괴력을 맛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할 수 있겠다. 'Crisis', 이 단어를 책이나 칼럼 따위에서, 혹은 유학 시절 '경제의 역사 (The Ascent of Money)' 수업에서 듣던 것과 이것을 내가 정통으로 얻어맞고 직접적인 타격을 입어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다.




  지난 2월 20일 목요일, 나는 시장에서 특수한 신호를 포착하고 증시의 하락을 예상했다. 그리고 당시 저조한 GDP 수치 발표와 크루즈선의 코로나 19 확산으로 인해 불안정한 일본 증시에 선물 매도(short) 포지션을 취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다음 주 월요일 변동성(VIX)의 큰 상승과 함께 미국 증시를 필두로 전 세계의 증시는 하락했다. 이어지는 화요일, 일본 증시는 3.3% 하락했고 목표한 가격(Target Price)에 도달한 매도 포지션은 청산되었다. 그리고 20년 1분기 최고의 수익에 자신감이 오른 나는 아주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선물(先物): 상품의 미래 가치를 예상하고 사거나 파는 행위

*매도포지션: 가격이 하락하면 수익을 얻는 매매

*변동성(VIX): 시장에서 투자자의 위험에 대한 인식


  내가 수년 전 처음 투자를 시작했을 때부터 특별히 자주 들어오던 주식 격언이 있다. 이를 테면, "떨어지는 칼날을 잡지 마라", "시장의 바닥을 예측하려 들지 마라"와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 나는 이에 완전히 반하는 전략을 사용해 높은 수익을 올려왔었다. 떨어지는 칼날을 정확한 위치에서 받아내는 기술을 연마했고 그 점을 활용해 사람들의 환호성을 유발하기도 했었다.


  이번에도 그 날카로운 칼날을 정확한 위치에서 받아내긴 했다. 단 1포인트의 오차도 없이 정밀했다. 문제는 별다른 청산주문 없이 지정가 매수만 포지션을 두고 잠에 들었다는 사실이다. 그 다음날 아침, 밤사이 내가 매수한 가격에서 반짝 반등했던 미국 증시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다시 내리꽂았고 스탑로스 없이 체결된 5계약의 선물 매수는 처참한 결과로 이어졌다. 2월 한 달 내내 잠을 줄여가며 꾸준히 쌓아온 수익을 단 하룻밤 사이에 지워버렸다. 시장은 타오르는 속을 외면한 체 1월달과 작년의 노력마저 앗아가려 힘차게 내리막길을 달려가고 있었다.


*스탑로스: 투자 손실을 제한하는 자동화된 거래 주문 



매번 자금 관리에 따른 손절 원칙을 지키는 한 무한한 연패를 기록하지 않는 이상 절대 파산하지 않는다. 그러나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단 한순간이다.



  무서운 진실, 너무나 어마어마해서 감당할 수 없는 일은 못 본 체하고 싶은 것이 인간이라는 영장류의 천성일 지도 모른다. 나는 도무지 내 손으로 단 하룻밤 사이에 생긴 수만 달러짜리 손절 버튼을 누를 수 없었다. 그 버튼을 누르는 순간 나는 완전한 패배자로 낙인 찍힌다는 생각, 이것을 쌓아 올리기 위해 피눈물 나게 노력한 지난 시간들이 뇌리를 스쳤다. 그러나 이것을 지금 잘라내지 못한다면 완전한 죽음이었다. 그래서 나는 강제적인 시스템으로 대처하기로 했다. 포지션 유지에 필요한 최소 증거금과 아주 약간의 금액을 제외한 모든 달러를 인출한 채 다시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도무지 뇌가 견디어 낼 수 없는 수준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의식의 코드를 강제적으로 종료하는 것은 내 오랜 버릇이다.


*손절: 손해를 보면서 투자 포지션을 정리하는 것

*증거금: CFD거래에서 투자자는 보유한 금액의 수백배에 달하는 규모까지 거래할 수 있다. 이때 가격변동에 의해 손실이 발생하면 포지션을 유지하기 위해 최소 필요한 담보금액이 존재한다.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짧지만 깊은 잠에서 깨어난 후의 세상은 더없이 고요했다. 아주 당연하게도 미국 증시가 반등하는 마법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내 선물거래계좌에서는 포지션 유지에 필요한 증거금이 부족해지자 자동으로 마진콜(Margin Call)이 발생했다. 이후 한동안은 지난 패배를 곱씹으며 분노하고 냉정하게 시장을 주시했다. 대부분의 직업은 실책을 덮기 급급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실패에 맞서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숫자는 속일 수 없다. 그러니 어쩔 수 없다. 헛구역질이 날 만큼 속이 쓰려도 나의 실패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것이 주는 교훈을 찾아내야 했다. 불평하거나 좌절하는 대신 효율적으로 대처해 이어지는 시장에서 수익을 끌어낼 방법을 모색해야만 했다.


*마진콜(Margin Call): 투자 포지션을 유지하기 위한 증거금이 부족해지면 증권사 측에서 손실을 입지 않기 위해 강제적으로 고객의 포지션을 정리하는 것.




  십여 일간 상처를 핥으며 다음 먹잇감을 물색하던 중, 3월 9일 월요일, 여지껏 상상조차 못 했던 일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국제유가가 개장과 동시에 31.5% 급락했다. 주말 사이 선물옵션 포지션을 보유하고 있던 일부 이들은 증권사에 수억 원의 빚이 생기는 기가 막힌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미국 증시 선물은 하한가에 도달했고 전 세계가 혼란에 휩싸였다.


  지난 패배의 쓰림을 다스리며 준비해둔 계획을 실행했다. 가장 취약한 증시인 이탈리아와 유럽의 선물을 매도하고, 동시에 나스닥과 코스피 우량기업 중 계량분석으로 과대낙폭인 종목을 선별해 현물 주식을 분할 매수하기 시작했다. 이론적으로 나쁘지 않은 롱숏(Long/Short Mandate) 헤지전략이라 생각되었다. 그러나 금융 위기를 처음 겪어보는 미숙함이 여기서 드러났다. 일반적인 수준의 약세장 마냥 판단해서 그저 모든 주식이 바겐세일 중인 것처럼 보였다. 유동성 확보와 현금비중을 조절하기 위해 온갖 계획과 시스템을 준비해두었지만 눈앞에서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떨어져 내리는 주식들을 보고 있자니 탐스러워 미칠 것만 같았다. 모든 것이 기회로 보였다. 10년에 한 번씩 찾아온다는 위기가 선사하는 부의 흐름이 온몸을 타고 느껴졌다.


*헤지전략: 현물 시장에서 발생하는 기초자산의 가격변동 위험으로부터 투자가치를 보전하는 전략



대규모 금융위기를 처음 겪는 이들은 낮아 보이는 가격에 쉽게 도취되어
모든 것이 엄청난 기회로만 느껴지기 마련이다.



  외국인은 연이어 무지막지한 금액을 매도했지만 두려울 게 없었다. 내가 직접 겪어본, 투자기관의 내규상 팔아치울 수밖에 없는 - 기관 투자자들이 눈물을 머금고 손절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믿고 개인의 유연한 매수 기회라 판단했다. 떨어질수록 더 값싸보이기만 하는 주식에 현금을 쏟아부었다. 모든 국가의 증권 시장, 부동산, 비트코인, 심지어 금조차 모든 자산이 터져 나가며 공중분해되는 상황에 흠뻑 취해있을 때 현금 비중 조절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현 사태가 실물경제에 실재(實在)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판단하기 위해 수개월 간의 분할 매수를 위한 현금이 필요했으나 이미 잔고는 거의 바닥에 가까웠다. 분할 매수를 면밀히 계획했으나 수개월간 지켜보기만 해온 종목들이 하루에 -13%, -17% 심지어 -52%라는 수치로 하락하는 것을 보며 참는 일은 무척이나 어려웠다.


  하락이 정점에 달한 목요일, 미국 증시는 사상 초유의 사태로 -10%에 도달했지만 유동성 조절에 실패한 나에게는 더 이상 가용할 수 있는 현금이 남아있지 않았다. 비중이 막대하게 커진 투자 포트폴리오는 아홉 자리 수의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었다.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인생은 길다.
중요한 것은 돈을 지키는 것이다. '지금 당장 눈 앞에 있는 돈을 벌어야 한다.'는
원시적 시선에 사로잡히지 마라. 기회는 언제나 다시 찾아오는 법이다.





  이 글은 어떠한 의미에서, 장황하게 쓰여진 나의 반성문이다. 수년간 극기심을 발휘하며 지켜낸 원칙들이 손쉽게 무너져 내렸다. 누구든 나름의 투자방법과 원칙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바심의 유혹에 매료되면 합리적인 의사결정보다는 강렬한 느낌에 의존하게 된다. '10년에 한 번 찾아온다는 그 기회' 성급함이 화를 불렀다.


  "아 그때 이걸 샀어야 하는데", "아 이걸 일찍이 손절했어야 하는데" - 내 짧은 투자 이력에도 이런 후회와 아쉬움을 수천 가지는 나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인생을 한 단계 도약시킬 수 있는 기회는 매 순간 찾아온다는 말이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그런 기회의 순간이 왔을 때 수중에 그 기회를 향유할 여유자금이 있어야만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조바심의 유혹에 지지 않고 무리하지 않으면서 아직 남은 오랜 여정을 착실히 준비해 나아가야만 한다.

  


  나는 내가 죽기 전까지 투자를 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니 앞으로 무려 60 ~ 80년의 긴 시간이 남아있다. 그래서 수백억 대의 자산가가 되기 전에 아직 미숙한 시기에 이런 시장을 경험한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기기로 했다. 지난주 워런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는 33조를 잃었고, 레이 달리오의 브릿지 워터는 20% 손실을 입었다. 앞으로도 역사는 반복될 것이고 수없이 많은 위기가 찾아올 것이다. 내가 할 일은 다가오는 위기에서 나의 역사, 나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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