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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렁 Jun 02. 2024

[영화 감상문] 다운사이징, 알렉산더 페인

어떤 세상이건 선하고 착실하게 살아갈 수 있는 자는 훌륭한 사람일지니

0. 들어가기에 앞서

넷플릭스에서 <다운사이징>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풀어낼 수 있는 고민과 서사가 많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처음에는 들었지만, 주인공인 "폴 사브라넥(맷 데이먼)"의 심리에 초점을 맞춰보니 또 그 나름의 매력이 있었던 것 같다. 아래에 짧게 감상을 남긴다.


1. 다운사이징이라는 소재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다운사이징"은 모종의 과학 기술을 통해 세포의 크기와 질량을 줄일 수 있는 기술을 뜻한다. 이 기술을 통해 인류는 자신들의 신체 사이즈를 줄이면서 생존에 필요한 자원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고, 개인의 입장에서는 생존에 필요한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감소했다. 작중에서는 일반 크기의 시민의 1달러가 다운사이징된 시민 세상의 1,000달러의 거치를 가지는 것으로 설명된다. 그렇기에 다운사이징을 희망하는 사람들은 수술비용을 지불하고 소형화된 세상에서 여생을 살아갈 수 있다. 그런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폴 사브라넥"과 그의 아내 "오드리 사프라넥(크리스틴 위그)"의 시점에서 작품은 막을 올린다.


본 작품에서는 전반적으로 가벼운 분위기로 풀어냈지만, 다운사이징이라는 소재 자체는 다방면으로 고민해 볼 수 있는 요소가 매우 많았다. 투표권과 소득세, 다운사이징된 인류와 그렇지 않은 인류 사이의 이념 갈등, 범지구적 대의를 위한 결정과 소득대비 풍족한 여생을 위한 개인의 선택 사이에 놓인 다운사이징이라는 행위의 의미, 범죄자를 강제로 다운사이징시키는, 일종의 형벌로서 악용된 다운사이징, 아무리 풍족한 세상이라고 할지라도 나타날 수밖에 없는 빈부 격차 등 다양한 고민을 해볼 수 있을 소재를 잘 선정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당 소재를 가지고 여러 편의 시리즈로 이야기를 풀어내도 흥미로울 것 같다.


2. 폴 사브라넥이라는 인물

이와 같은 작품 속 세상에서 감독이 방점을 둔 곳은 다름 아닌 "폴 사브라넥"이라는 인물이었다. 작품의 전반적인 서사나 인과 관계가 그렇게까지 치밀하지는 않았고, 폴에게 다양한 상황을 제시하고 그가 각기 다른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관찰하기 위해 상황들이 준비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메시지는 "어느 하나 쉬이 뜻대로 이뤄지지 않는 폴의 삶"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잘못 발음하기 일쑤고,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아픈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고향으로 돌아와 작업치료사 일을 할 수밖에 없었고, 변변찮은 수입에 어머니와 함께 살던 집에서 아내와 함께 살고 있었으며, 이런저런 이유로 그와 함께 다운사이징을 받기로 한 아내는 머리와 눈썹을 밀다가 돌연 다운사이징을 포기하고 도망가버리고, 다운사이징된 세상에서 본업과는 관계없는 상담사로 일하고, 새로운 관계를 이어나가려던 순간은 그의 성급함으로 날아가버리고, 그런 과정 중 윗집 이웃 "두샨 머코빅(크리스토프 왈츠)"의 집 청소를 하던 "녹 란 트란(홍 차우)"에게 그녀의 아픈 친구를 위해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빈민촌으로 향하고, 나름의 지식으로 진통제 투약량을 알려주지만 다음번 그녀를 찾아갔을 때 녹 란 트란이 진통제를 많이 투약해서 그녀가 죽은 것 같다는 소식을 전해 듣기도 하고, 녹 란 트란의 의족을 고쳐주려다가 되레 망가뜨려 그녀를 도와 청소를 다니기도 한다. 어느 하나 제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험들이 누적된 그는 이윽고 자신의 삶의 이유와 목적에 대해서 고민하고 일종의 자책까지 하게 된다. 작품의 막바지에 폴과 두샨, 녹 란 트란은 다운사이징된 첫 번째 인류가 살고 있는 노르웨이로 향하는데, 그곳에서 그는 다운사이징을 이뤄낸 요르겐 박사(롤프 라스가드)에게서 인류는 곧 멸망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일종의 "노아의 방주"처럼 그들이 지하에 만들어낸 세상을 향해 그들과 함께 들어가 인류에 기여하고자 한다. 그런 그를 녹 란과 두샨은 만류하지만, 그는 그렇게라도 그의 삶의 가치와 존재의 목적을 만들어내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그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지하세계로 향하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지하 세상으로 들어가는 입구로 들어간 그는 열한 시간 동안 경사길을 오르고, 그러고 나서 내리막길을 거쳐 지하 세상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옆사람의 말을 듣고 잠시 고민하더니 결국 지하세계로 들어가지 않고 밖으로 뛰쳐나오게 된다. 결국 작품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의 마음대로 이루어진 것은 별달리 없었다.


위의 내용만 보자면 폴의 인생은 어느 하나 원하는 대로 이뤄내지 못하고 어영부영 살아만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 그의 인생이 그렇게까지 무의미하지만은 않았다. 그는 작업치료사로서 주변 사람들의 자세를 교정해주기도 하고, 처음 녹 란을 마주쳤을 때도 그녀의 의족을 찬 걸음걸이를 보고 그녀를 돕는다. 그런 그였기에 다운사이징을 결심하고 나서 직장과 주변 사람들에게서 환대를 받으며 다운사이징 전의 인생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녹 란이 마구잡이로 부탁한 면도 있으나, 그는 기꺼이 그녀를 따라가 그녀의 아픈 친구를 돕기도 하고, 자신 때문에 의족이 망가져버린 그녀를 업고 청소를 돕기도 하고 평소 녹 란이 그녀의 동네 사람들에게 베풀던 선행을 함께 하기도 한다. 폴은 자신이 이뤄낸 것이 없음에 좌절하고 절망하지만, 그런 그의 곁에서 녹 란은 그의 인생이 의미 없지 않으며 그는 충분히 좋은 사람이라고, 잘 해내고 있다고 다독인다. 본 작품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점은 이 부분이다. 존재의 거창한 의미를 찾아내고 대의를 이뤄내는 것만이 삶의 전부는 아니라는 점, 하루하루 잘 이겨내고 착실히 선행을 이어나가는 삶 또한 충분히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이라는 점을 다운사이징이라는 작품은 폴과 녹 란의 서사를 통해 풀어냈다.


3. 마무리하며

어마어마한 수작이라거나, 비주얼이나 아이디어가 특출 나다거나 하는 작품은 아니었지만 상황 설정과 내면 심리의 고민이 인상 깊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기엔 괜찮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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