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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렁 Jun 02. 2024

[애니 감상문] 91Days

구원받지 못한 이들의 덧없던 인생에 바치는 장송가

0. 감상에 앞서

마피아와 복수극이라는 소재 자체는 평이했으나 인물 구성이나 서사, 이야기의 볼륨, 작화 등 전반적으로는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이어서 몇 번은 돌려본 것 같다. 아래에 작품에 대한 감상을 남긴다.


1. 작품의 주된 서사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것은 "안젤로 라구자"라는 인물로, 조직의 일원이었던 자신의 아버지 "테스타 라구자"와 어머니, 그리고 자신의 동생이 집으로 찾아온 같은 조직원들에게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현장에서 간신히 도망친 안젤로는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인 "코르테오"의 집으로 몸을 피한다. 이후 수년이 흐른 뒤 안젤로에게 그날의 진상, 자신의 가족을 죽인 자들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발신인 불명의 편지가 도착하게 되고, 그는 "아빌리오 브루노"라는 가명을 등에 업은 채로 복수를 위한 여정을 나선다.


아빌리오는 그들(바넷티 패밀리)에게 복수하기 위해 우선 패밀리에 잠입하기로 하였고, 여기에 코르테오가 만든 밀주가 활용되며 그들이 패밀리의 일에 엮여 들어가게 된다. 아빌리오의 최종적인 목표는 패밀리 내부 인원들의 신의를 얻어 복수의 대상 중 하나이자 현재의 '돈'인 빈센트 바넷티까지 죽이는 것으로, 12화 분량의 이야기는 아빌리오가 바넷티 패밀리에 스며들며 차례로 편지에 쓰인 인원들에게 복수하는 과정을 그려낸다.


2. 빠르고 간결한 전개 과정

서로가 서로를 속고 속이는 복수극은 사건들의 인과관계를 합당한 과정과 근거를 바탕으로 풀어낼 수 있어야 한다. 지나친 비약은 상황의 개연성을 낮출 수 있고, 이와 반대로 지나치게 상세한 설명과 복선은 자칫 이야기의 속도를 늘어뜨릴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91Days라는 작품은 템포가 좋았다. 상황에 대한 편리주의적 비약도 적은 편이었고, 작품 내 주요 인물이더라도 소모되는 과정이 질질 끌리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자신 일생일대의 꿈이었던 극장 설립일에 살해당한 빈센트 바넷티의 허망함이 기억에 남는다. 피로 쌓아 올린 금자탑에 분홍빛 결말은 없었고, 모든 게 헛된 꿈이었다고 말하며 그는 숨을 거둔다. 빈센트의 잘못과 아빌리오의 분노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일순간 목숨과 꿈 모두를 잃어버리게 된 빈센트에게 동정심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3.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것

복수극에 완전한 승자는 없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고, 이는 증오의 고리가 되어 질기게 그 목숨을 이어나간다. 12화 내내 죽음과 복수를 울부짖은 91Days라는 작품은 결국 이 끝에 무엇이 남는지에 대해 관객에게 반문한다. 다른 이들의 목숨을 짖밟고 올라선 바넷티 패밀리와 네로는 몰락했고, 심지어 네로는 동생인 플라테를 자신의 손으로 죽이게 된다. 모진 과정을 겪어 복수를 이뤄낸 아빌리오 또한 형제나 다름없던 코르테오를 자신의 손으로 죽이게 된다. 이런 수라장 끝에 살아남게 된 네로와 아빌리오에겐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살아남았기에 죽은 이들의 마음까지 짊어질 수밖에 없었다. 작품의 종국에 네로는 아빌리오를 죽이기 위해 바닷가로 향하나, 실제로 그가 아빌리오를 죽였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모래사장에 찍힌 그들의 족적이 파도를 만나 허망하게 사라질 뿐이었다.


3. 마무리하며

특유의 음울하고 공허한 분위기가 매력적인 작품으로, 보고 나서 여운이 꽤 남는 편이다. 엔딩곡도 분위기에 잘 어우러진다. 조금은 차분한 마음으로 애니를 보고 싶은 날 추천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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