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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렁 Oct 28. 2024

노트북(The Notebook, 2004)

서로가 온전히 한 곳을 바라볼 수 있었던 사랑의 순간에 대한 기록

0. 들어가기에 앞서

<노트북(The Notebook)>은 '라이언 고슬링'과 '레이첼 맥아담스'를 주연으로 한 로맨스 영화로, 지금에 와서 보자면 21세기 로맨스 장르의 선구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어바웃 타임>, <미 비포 유>, <라라랜드> 등 여러 작품들이 연상되는 것이 단순한 우연은 아닐 것이다. 다시 보더라도 감정의 농도가 짙은 영화로, 2024년 10월 9월에 재개봉하여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아래에 작품에 대한 감상을 남긴다.


1. 작품의 전반적인 구성, 로맨스

영화 '노트북'은 의심의 여지없는 로맨스 장르 작품으로, 구조적으로는 액자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작품의 주연인 '노아(라이언 고슬링)'와 '앨리(레이첼 맥아담스)'의 노년 시절이 액자 바깥의 배경이며, 그 액자 속에는 노아와 앨리의 치기 어렸던 과거 시절이 담겨있다. 목공이었던 노아가 부잣집 딸인 앨리를 알게 되고, 이후 일련의 갈등 끝에 진정으로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게 되지만, 둘은 끝끝내 신분과 환경의 차이를 뛰어넘지 못하고 헤어지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서로를 완전히 지우지 못했던 이들은 후일 이윽고 만나 다시금 사랑을 이어가게 된다. 험난하고 애틋했던 서로 간의 이야기를 앨리는 치매로 인해 잊게 되지만, 노아는 앨리에게 몇 번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하여 앨리가 써 내려갔던 공책(노트북) 속에 담긴 서로의 이야기를 읊는다. 그렇게 이야기의 끝에 다다른 앨리는 그제야 그 이야기가 자신과 노아의 이야기였음을 깨닫고 오열하며 노아와 석별 이후의 정을 나누지만, 이내 몇 분을 이어나가지 못하고 다시 기억을 잃게 된다. 가혹한 굴레에 얽혀 순간이나마 과거를, 앨리를 되찾고자 하는 노아의 노트북 낭독이 작품의 주된 전개 과정이다.


2. 클리셰라 해도 이견이 없을, 강렬했던 이들의 사랑

부잣집 규수와 하층민 남성의 사랑과 갈등은 2024년에 보자면 꽤 전형적인 플롯일지 모르겠지만, 이 작품이 개봉한 2004년의 시대상에서 바라보자면 마냥 그렇지만은 못했을 것이다. 새장 속을 벗어나지 못하던 앨리를 세상 밖으로 이끄는 노아의 행동은 당대를 살아가던 이들에겐 제법 큰 자극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차도 바닥에 누워 신호등을 바라보는 노아와 이를 따라 도로에 누운 앨리의 행동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앨리는 밤중이기는 하지만 혹여나 차가 지나가면 어떻게 하냐며 걱정하지만, 노아는 이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그런데 정말로 차가 도로를 지났고, 부리나케 자리를 피한 앨리와 노아는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건넨다. '노트북'이라는 작품은 어떤 것이 옳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지에 대한 지침이 아니다. '노트북'은 조금은 어설프더라도 서로에게 온전히 기댈 수 있었던, 서로가 한 곳을 바라볼 수 있었던 사랑의 순간들을 아름답게 포착해 낸 기록이었다.


3. 아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의 사이엔 크나큰 간극이 있다

치매로 인해 과거의 기억이 흐릿해진 앨리를 노아는 포기하지 않았고, 언젠가 앨리가 자신의 미래를 예견한 듯 남겨두었던 공책 속 과거를 그녀 자신에게 읽어주며 과거를 상기시키려 했다. 이야기의 중반까지만 해도 앨리는 그것이 자신의 과거였음을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서사가 막바지로 향할수록 그녀는 이야기에 대한 기시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종국엔 노아가 자신에게 해주었던 이야기가 노아와 자신의 과거였음을 깨닫고 오열하며 자신을 떠올리게 된다. 

"It was me."
(노아가 자신에게 해준 이야기가 자신과 노아의 과거였음을 깨달은 앨리의 성토)

 노아는 이전에도 이 상태를 유지한 것이 5분 정도였다고 말하며, 짧게나마 과거의 기억을 되찾은 앨리와 재회한다. 이 장면을 통해 노아는 이전에도 몇 번이고 똑같은 과정을 반복했음을 어림짐작할 수 있다. 노아의 말처럼, 5분도 채 되지 않아 앨리는 과거에 대한 기억을 잃고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노아를 배척하고 멀리한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처음 겪은 상황이 아님에도 앨리에게서 쉽사리 멀어지지 못하는 노아의 모습이 이를 바라보는 관객 입장에서는 애틋하게 다가온다. 작품의 중반부에는 노아와 앨리의 자식들과 손자/손녀가 찾아와 이제는 그만 앨리를 포기하고 돌아오라고 말하지만, 노아는 차마 앨리를 놓아주지 못하고 끝내 그곳에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4. 마무리하며

서로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데에는 어떠한 제약도, 간섭도, 가정도 무용하다. 때로는 시대와 환경이 사랑의 본질을 해하고 연모하는 이들을 멀어지게 하고자 하나, 한 번 이어진 감정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으며 서로를 쉽사리 놓아주려고도 하지 않는다. 앨리가 써 내려간 과거의 기록은 그녀와 노아 사이에 깊고 진하게 연결되어 있던 아름다운 감정들의 편린이자 흔적이었다. 앞으로도 한 동안은 로맨스 영화의 첫 번째 순위를 '노트북'이 담당하게 될 것이라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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