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 연습실- 냉혹한 그 공간의 기억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
문제를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건 분명 사랑이다.
연습실 안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공기를 가로질러 뽐내어지는 동기들의 빛나는 실력들을 보면 나만 부족해서 그런 거란 슬픈 생각만 앞서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기에 당시엔 부족한 나의 실력만을 원망하고 괴로워할 뿐이지 내가 이런저런 이유로 잘 못한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인정하진 않았을 것이다. 잘하고 싶었고 사랑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더 공들이고 노력했는데 마음처럼 되지 않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마인드 컨트롤 밖에 없었을 테니까....
연습실이 깨끗해야 하는 이유.
어릴 적에 나는 한국무용을 배웠다. 당시 그 춤을 배우러 다닐 땐 특별히 어떤 기술이나 기교가 없이도 장단에 맞춰 신명 나게 춤을 추고 뛰어다니는 것과 어렸다는 이유로 생각보다 재미있게 배웠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어릴 때 다녔던 한국무용 학원에서의 선생님께 가장 많이 배운 건 춤의 실력이 아니라 춤을 대하는 진심 어린 마음가짐과 자기 자리에 대한 정돈된 깔끔함이었다. 당시 무용 선생님은 남자분 이셨는데 아빠의 지인이기도 했고 지금은 한국춤의 대가라고 인정받고 칭송받으시는 분이었지만 내가 어릴 적엔 선생님도 지금보단 젊었고 훨씬 건강하셨기 때문에 언제나 학원에 연습하러 나오는 우리들에게 춤을 연습해야 하는 공간인 이곳이 언제나 깨끗해야 함을 자주 말씀하시곤 했었다. 그래서 그게 뭐 어쩌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무용 연습실의 공간을 소중히 여기셨던 선생님은 연습실 바닥을 자주 청소하시기도 하셨고 때론 걸레질도 손수 할 만큼 그 공간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기 때문에 먼지 한 톨없어야 하는 그 공간에서 큰 축음기 같은 기계에 지금은 보기 힘든 릴 테이프를 감고 돌려서 장단을 틀고 연습과 지도에 집중하던 선생님의 모습은 몰입된 깔끔함과 연결되어 어린 시절의 나에게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추억의 한 장면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도 작정하고 청소를 하게 되면 선생님이 말씀하시던 연습실이 내 집처럼 깨끗하고 평안해야 한다는 말씀은 선생님이 유별나서 하신 말씀이 아니라 자신이 춤을 추고자 하는 곳에 대한 소중함을 알고 그 공간을 대해야 한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춤추는 사람들을 가까이 에서 보고 그 안에 직접 들어가 마음을 다해 사랑을 했고 사랑을 받기도 했으며 사랑을 주기도 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시간이 아깝거나 후회되는 시간이 올까 봐 두려운 적이 없었냐고 물어본다면 없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라고 말하고 싶다. 무용과를 다닐 때 내 나름의 좌우명은 무용과를 다닌다고 내 삶을 무용지물 (無用之物) 되지 않게 살겠다고 다짐하곤 했었다. 그래서 그 이후의 내 삶은 한때 정말 내 인생에 꽤 많이 집중하고 몰입했었다.
평생 집중만 하고 몰입만 하고 살았다면 아마 지금과 다른 삶이 펼쳐져 있거나 숨이 막혀 여러 번 쓰러졌을 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아이도 키우면서 많이 다듬어져 둥글둥글해진 나를 바라보면서 아무리 떼써도 달라지지 않는 내 인생도 이젠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 같다.
그게 물론 무용 연습실 공간에서만 배운 감정들만은 아니겠지만 차가운 거울 앞에서 냉정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인생에서 경험해 보지 않으면 그 깊이를 가늠하긴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꼭 움직이는 춤으로만 연결되는 보이는 감정이 아니라 냉정하게 자기를 집중해서 바라보고 겸손하게 삶을 이해하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건 정말 중요한 삶의 태도라고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