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홍지승 Apr 04. 2021

결핍이 주는 특별한 에너지

가끔은 그때가 그립기도 합니다.

저수지에 갇힌 물이 잠들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 물은 안쪽 둑을 밀어내면서 탈출할 기회만을 노린다.

반드시 그 기회의 날은 오기 마련이다. 또 그 물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꾸준히 중력을 가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잔잔하게 잠든 거 같지만 사실을 출렁거리며 살아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틈만 생기면 물은 흘러가기 시작할 것이다.

장애물이 나타나면 비껴가고 그래도 뚫고 나갈 길이 보이지 않으면

물은 또 다른 탈출구를 열어 줄 틈이 생길 때까지 겉보기에는 졸고 있는 것처럼 조용히 머물러 있을 것이다.

물이란 어떤 기회도 놓지는 법이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된다.           


  어디서 읽은 구절인지 모를 저 글귀들을 보면서 여러 번 다짐했다. 나도 한번 저렇게 살아야지! 하며 다짐했었고 실제로 힘들 때마다 저 글귀를 떠올렸다. 그래서 그 힘들었던 시간들 중에서도 나름 남보다 좀 더 버틸 재량과 용기가 생겼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때는 너무나 막연하고 막막했겠지만 그래도 한번 더 믿는 마음의 바탕엔 저 글이 있었다. 젊었을 때 고통이 고통인지 알듯 모를 듯 혼란스럽던 시절, 그때 나의 무덤덤한 성격이 가장 반가웠던 건 여우스럽지 않은 그런 성향의 때론 곰 같고 돼지같이 미련해도 그저 그 시간만 지나가면 좋을 거라고 믿을 수 있었던 어리석지 않은 건강한 미련함 때문이었다. 

  물론 할 수 있는 것도 거의 없었고 늘 주변의 모든 것들이 나만 빼고 잘 돌아가던 시절조차 나만 불행한 듯 느껴져서 많이 속상하고 힘들었어도 그 조차 내색하면 유치하고 이상할 거 같았지만 그저 묵묵히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던 그 시절을 가끔 지금도 떠올린다.



  지금은 지갑에 언제든 큰돈은 아니어도 사고 싶은 물건들을 큰 고민 없이 바로  지갑을 열어 살 수 있을 만큼 인생이어서 감사한 일이고 먹고 싶은 게 있어도 언제든 장을 봐 와서 바로바로 해 먹을 수 있는 것 또한 감사한 일이고 무엇보다 자잘한 신경을 쓰지 않고 구매의욕을 불태울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기쁨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내 청춘의 정점에서의 느꼈던 가난은 사실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지 않다. 그저 그땐 정말 비가 내리면 우산 없이 맞을 수 도 있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으니까... 

  지금도 그때 우연히 글 쓰는 일을 도와주기로 하고 받은 선금으로 받은 돈으로 혼자 동네 회센터 같은 곳에 가서 가장 작은 광어를 만 원어치 회로 떠 달라고 해서 혼자 집에 와서 몰래 먹었을 때 느꼈던 생선살의 맛은 특급호텔에서 먹은 가장 최고의 만찬이었던 걸로 기억되는 걸 보면 배고픔이나 결핍이 주는 에너지가 그저 나쁜 것만으로 기억이 되는 건 아니었다. 또한 그렇게 힘들 때 주변에 지인들이 챙겨준 그 순간들도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가슴속에 감사함으로 기억되는 것 또한 인생의 한 페이지이자 소중한 순간 이기도 하며 그 순간을 함께 보낸 사람들이 내겐 무형의 자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꽃을 잘 키우는 동생이 풍요로움 속에서 피는 꽃보다 결핍의 에너지를 받고 피는 꽃을 보면 그 꽃이 더 예쁘고 사랑스럽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인생도 그런 거 같다고 결핍이 그저 억울하고 나쁜 감정으로 기억되기보다 이겨내면 자랑스러운 그런 감정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을 때 나도 모르게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예술자료원에서 책을 읽을 때마다 젊은 시절 그곳에 점심을 건너뛰며 읽었던 무용 책이 언제나 내 청춘의 가장 빛나는 한 장의 사진으로 기억되는 걸 보면 그땐 미래를 알지 못했어도 그저 그 순간으로만 생각해보면 그때의 선택과 그때의 그 집중력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책을 갑자기 다독으로 읽을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짧은 시간 읽은 글로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일도 불가능하다. 어떤 식의 결과물이든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보내야 하는 그 깊고 넓은 시간의 바다에서 헤험치기만 하고 허우적댄다 해서 그 선택을 후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선택은 그때마다 최선의 선택이었음이 분명 이었을 테니까....

  용기란 것도 결국 어찌 보면 포기하지 않고 한번 더 하는 마음일 것이고 소질이라는 것 또한 그 어떤 일이든 잘하고픈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이 보기엔 하찮고 우습게 보일지 몰라도 그저 묵묵히 자기 일을 하고 자기 길을 걷고자 마음먹었던 그 순간이었음을 이 아침에 추억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발레 보러 극장에 자주 가는 이유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브런치 시작하기

카카오계정으로 간편하게 가입하고
좋은 글과 작가를 만나보세요

카카오계정으로 시작하기
페이스북·트위터로 가입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