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쩌면 춤의 신(神)이 그를 우리보다 먼저 그를 선택했던 걸까? -
'발레'라는 예술 앞에서는 절대 핑곗거리를 찾지 말 것.
늦은 나이에 발레에 입문한 사람들의 가장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핑계는 "늦게 발레를 배웠기 때문에 못 해도 뭐라고 말하지 말아 주세요"라는 말이 가장 일반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도 제가 쓰는 모든 글 앞에 그렇게 말씀드리곤 했었죠. 제가 발레를 늦게 배워서 발레를 잘하지 못했다는 표현을 가감 없이 쓰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만난 이영철 발레리노의 인생 이야기를 경청해서 듣고 나서는 제가 하고자 하는 저의 많은 말들 안에는 그 적당한 핑계가 얼마나 거짓된 것인지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번 제 연재물을 읽어보시는 독자분들은 아시겠지만 제가 이끌어 나가는 무용수들과의 인터뷰는 구술채록(Oral history)을 전제하에 녹취를 허락받고 약속된 2시간 안에서 주로 그들이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듣고 그 내용을 토대로 글을 써 내려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터뷰 당시 한 이야기들은 서로가 기본적으로 신뢰를 바탕으로 하여 다른 인터뷰 기사들과 차별화를 둘 수 있다는 점을 특징으로 잡았고 저 또한 그들의 말을 잘 경청하기 위해 나름 많은 준비를 해서 그들을 만나러 가기도 합니다. 그러니 서로가 가끔은 어떤 이야기에는 맞장구를 치며 웃을 때도 있었고 어떤 공연 이야기에서는 저도 모르게 관객이었던 제 입장에서 본 관점을 이야기를 하며 물개박수를 민망하게 혼자서 칠 때도 있었지만 이번 인터뷰는 국립발레단의 연습실 N스튜디오 안 휴게실에서 이루어졌고 다른 인터뷰와는 다르게 어쩌면 전장의 최전선에 서 있는 장군(將軍)을 보는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그가 나눠준 특별한 기운과 그와 진심으로 나눈 이야기들을 저 혼자서만 알고 알고 있을 일이 아니라 발레를 사랑하시는 독자분들이라면 함께 아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들로 집중적으로 쓰기 위해서 그에 관한 내용은 1,2편에 쓰지 않고 이렇게 인터뷰 후기라고 카테고리를 정하고 그 안에 글을 쓰고자 했습니다.
그와 저는 뒤늦은 나이에 발레를 선택해서 발레를 배웠고 발레를 그 누구보다 격하게 아끼고 사랑해 마지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무명의 작가로 오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언제나 "내가 춤을 못 추는 건 늦게 배워서야~"라는 적당하고 어리석은 18번의 핑곗거리가 늘 있었고 그의 선택에는 오로지 선택과 집중이라는 전제하에 그가 목숨을 걸고 춤을 추었던 그의 롤모델 무용수처럼 삶을 살아나갔다는 대목에서 저는 인터뷰 내내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무용을 전공한 사람들이라면 그 모두가 선망해 마지않았던 국립발레단의 수석 무용수의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그가 노력한 이야기들을 듣고 나니 그동안 제가 보았던 수많은 공연에서 그가 무대 위에서 보여준 모습들이 그 순간마다 얼마나 처절하고 절실했는지 알고 나니 마음이 아프다 못해 아려서 한참을 그가 인터뷰하고 떠난 뒤에도 이야기를 나눴던 그 자리에 멍하니 있었던 저를 기억합니다.
사람들은 매번 핑계를 댑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거짓말로 내가 왜 이 일을 이만큼 밖에 못 했는지에 관해 시시때때로 변명을 하기 바쁩니다. 저 역시도 매번 그랬었고 그렇게 살아온 세월에 아무런 죄책감이 없이 살았던 것에 대한 반성과 자기 질책이 한동안 제 뇌리 속을 떠나지 않았던 건 열심히 살았다는 그 어리석은 착각이 주는 헛된 메아리가 이제야 제 심장을 관통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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