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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주 Sep 26. 2023

기억에게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

영화 <당신과 함께한 순간들>을 보고,

 기억은 인간의 주관성이 최대로 발현되는 감상이다. 타인과 동시에 경험한 것이라도 시간이 흐르면 각자 다르게 기억하기 때문이다. 당시의 감상은 물론이거니와 팩트까지도. 만약 내가 A라는 사람에 대해 내가 가진 기억으로 AI를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내가 기억하고 싶은 혹은 실현시키고 싶은 것들로만 구성될 것이다. 마치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고 설명해준 일화처럼.


 영화 <당신과 함께한 순간들>은 4개의 대화 형식의 챕터로 구성되어 이와 같은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챕터1. 인간 마조리 & 프라임 월터

치매를 앓는 80대의 마조리와 젊은 모습을 한 남편 프라임 월터가 대화를 나눈다. 건조해 보이는 프라임 월터는 마조리가 간식을 먹게 도와주며, 둘만의 추억을 나누며 마조리와 소통한다. 그 과정에서 마조리는 좋았던 혹은 아쉬웠던 과거를 회상하며 ‘다음번에 얘기할 때 그게 사실이 되는거야’라며 기억을 수정하길 원한다. ‘기억나’ ‘거짓말, 빈 그릇 없는 건 뻔하잖아.’라며 치매를 앓는 마조리의 기억을 정정해주는 프라임 월터는 기억의 수정을 원하는 마조리에게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라는 거야?라며 절대적인 기억의 가치를 말한다.


챕터2. 인간 테스 & 프라임 마조리

 챕터1에서 등장한 마조리가 죽고 딸 테스 곁에 프라임으로 등장한다. 챕터1의 월터처럼 건조하고 덤덤한 모습, 늘 엄마의 애정을 기다려왔던 테스는 프라임 마조리에게도 냉담한 태도를 일관한다. ‘덜 웃어봐요, 그러면 더 그분 같을 거예요.’라며 프라임 마조리의 존재를 부정하고 프라임 마조리에게 극복되지 못한 상처으로 거짓 정보를 제공한다. 그것은 프라임 마조리에게 거짓 기억으로 저장된다. 음악 취향이 달랐다던 두 사람은 같은 음악을 듣고 챕터2 시퀀스가 종료된다.


챕터3. 인간 조 & 프라임 테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테스는 프라임의 모습으로 남편 조와 대화를 나눈다. 조에게서 본인의 자살 과정을 전해듣는 프라임 테스. ‘내가 얘기를 해줄게, 그럼 원래부터 알고 있던 게 되는 거야.’라며 테스는 조의 정보로부터 기억이 저장되고 완성되어진다. 이후 조는 결국 본인이 좋았던 부분만을 제공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프라임 테스를 본인이 추억하고 싶은 기억만으로 꾸며 추억을 나누길 원했던 조.


챕터4. 프라임 월터 & 프라임 마조리 & 프라임 테스

 인간들이 모두 떠나고 프라임 월터, 마조리, 테스만 남아 대화를 나눈다. 특징적인 것은 이들의 기억은 모두 앞서 진행된 챕터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상대방을 통해 일방적으로 저장된 정보라는 것이다. 3명의 프라임들은 각자 대화를 통해 서로가 숨기고 싶어 했던 상처(마조리에게 청혼한 기억을 바꾸어 말한 월터, 의도적으로 데미안의 존재를 획득하지 못함을 알게 된 마조리 등)를 마주하게 된다. 이들에게 저장된 정보는 애초부터 일방적으로 전달된 기억이다. 그들에게 ‘잘못된 기억’이라는 명제 자체가 모순적인 거 아닐까.


 망각은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도 하면서도 우리는 왜 그렇게 기억에 집착하는 것일까. 흩뿌려져 있는 경험 중 일부분만 채택해 기억하는 것에는 우리의 방어기제가 깊숙히 깔려있다. 인간은 유한한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헤어짐과 죽음을 만난다. 이러한 슬픔과 헤어짐에 앞서 각자가 다양한 방법으로 기억을 기억한다, 그리고 소화해낸다. 영화에서 기억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우물, 서랍장, 복사본, 퇴적층이 등장한다. 혹자에게 기억은 영원히 바래지 않는 사진과도 같다. 나에겐 시간이 지나도 선명한 사진처럼 잊혀지지 않는 잔상들이, 기억들이 있다. 기억속에 내가 아닌 타인도 동일하게 그 장면을 기억할지는 미지수다. 그렇다 한들 그것이 없었던 일은 아닐터, 각자가 경험을 기억하는 것 그리고 어떤 부분을 발췌해 저장하는 선택이 다를 뿐이다. 극 중 치매를 앓는 마조리가 젊은 시절의 월터를 구현해낸 것도 그녀의 기억 속에 그 시절의 월터를 추억하고 싶은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억을 잃어가는 그녀임에도 잊고 싶은 기억이, 바꾸고 싶은 과거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을 프라임 월터에게 전달한다. 마지막 챕터에서 프라임 월터는 인간 마조리가 바꾸고 싶어했던 기억을 수용하여 전달한다, 즉 거짓말을 한다. 이미 정보로서 일방적인 기억을 받아들인 프라임에게 이것이 거짓이라고, 추억을 꾸며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프라임 월터가 인간 마조리를 기억하는, 추억하는 그것(혹은 그)만의 회답일지도 모른다. 4개의 대화 챕터가 진행되는 동안 영화에선 수십년의 세월이 흘렀다. 프라임들만 존재하여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보면 더 억겹의 시간이 흘렀을거란 짐작이 가능하다. 시간의 흐름을 체화할 수 없는 연출을 통해 과거 기억의 우물 속에서 유영하는 인간을 영화는 보여준다. 가족을 잃은 슬픔과 상실은 억겹의 시간 앞에서도 극복되지 못하는 상처이기 때문이다. 프라임이란 존재로 위로 받고자 했던 시도도 결국 거울과 대화하는 듯한 한계로 귀결되고 만다. 옅어지는 추억과 기억앞에 외로워하더라도 결국은 잊지 않고 싶기 때문에.


 ‘그 행복했던 몇 분 사이에 팔 개월 남짓 우리에게 존재했던 온기가 부엉이를 따라 눈부시도록 푸른 저녁 하늘을 가로질러 우주 저편으로 날아갔다는 사실을 나는 한 달쯤 뒤에야 깨닫게 됐다. 그나마 그녀와 나 사이에 존재했던 온기가 아주 없어진 게 아니라 우주 어딘가로 나아갔다고 생각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김연수 작가의 소설 ’세계의 끝 여자친구‘ 중 한 구절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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