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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주 Feb 10. 2024

할아버지의 편지

 지난 해 8월, 64년을 함께한 부부 사이라는 제목으로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관한 글을 썼다. 2023년이 벌써 지난 해가 된 것도 새삼스러운데, 당시만 해도 말기암 투병을 하셨던 할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신 사실이 아직 믿기지 않는다. 


 3년 동안 암 투병을 하시며 고통스러워 하셨던 할아버지는 나름 준비의 시간을 가지셨을 것이다. 고통에 잠 못 이루며 밤을 지새우는 날이면 지난날의 인생에 대한 회환, 기쁨 등등 많은 생각이 오가셨을 터. 와중에 못난 손녀 딸 생각도 한 줌, 나에게 몇 장의 손 편지를 써주시기까지. 나는 성스러운 무언가를 받은 것 마냥 서랍에 넣어둔 채 하루일을 다 끝낸 고요한 새벽이 되어서야 편지를 읽어보았다. 




OO에게 몇 자 전한다.

차분하고 점잖게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우리 OO 만난지도 오래되었구나. 그래 잘하리라 생각한다.

이미 오래전에 OO에게 잠시 전한 말 다소나마 기억하리라 믿는다. 어미에게 OO 안부 물어면 알아서 잘한다고 하니 부모 앞에 고맙게 생각하며. 할아버지 이 생을 떠나기 전 수다스러운 마음이나마, 이제는 몸도 고달프고 밤은 자정을 넘어 새벽이 다가 오고 아름다운 자연은 사계절을 반복하면서. 해가 지고 뜨며. 푸른 하늘을 상징하며 덧 없이 흐르는 무정한 세월은 자신도 모르게 흘러 인생의 삶을 재촉하느니 할아버지의 인생 아름다운 저녁 놓을 서산 머리 한 자욱 남겨 놓고 몇 자 전하며 잘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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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사람은 살다보면 그러하느니 살아생전 잘하여도 부모 없는 세상이 오면 누구나 후회할 것이니, 마음가짐을 갖고 달래가면서 떠나기 전 잘 부탁하는 것이 할아버지의 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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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OO도 머지 않아 언제인지 결혼을 하면 양부모에 눈물을 남기고 떠날 것이니, 몸은 떨어져도 결혼 후에는 더더욱 부모님의 마음가짐을 달래가며 잘 보살펴주리라 거듭 부탁하며 복잡하고 어지러운 사회에 평소와 같이 차분한 마음으로 만사를 조심하고 조용한 마음으로, 생각과 생각을 더듬어가며 생활에 만전을 기하기 바라며. 건강만은 잊지 말고 항상 품위를 갖추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잘 살아 갈 것이라 할아버지는 생각하면서. 

 한편 촌에 할매는 15년간을 눈물로 기다리듯 이제는 아쉬움을 남겨놓고 마음 편히 살아가는 것 같다. OO 엄마의 남동생 큰 외삼촌 여자도 힘든 아들 하나 키우겠다고 금으로도 살 수 없는 아까운 청춘을 뒤로하고 추억을 나누는 친구 간에 술 한잔 나누지 못하고, 애 닳은 삶을 남몰래 자욱마다 묻어가며 옆 돌아볼 사이 없이 참고 견디며 아이가 잠자는 밤에도 두 세번씩 잠자리를 확인하며 아들하나 감싸 안고 키우겠다고. OO 외삼촌 한 많은 인생살이 15년. 태산 같은 한을 남겨가며, 세월이 가는 지 오는지, 남들은 가지기 힘든 살림살이, 사나이의 심정 남 몰래 눈물도 많이 흘렀거늘, 참고 힘든 인생, 이제는 다소나마 한이 풀리지 않았나 생각이 들며…

 삼촌 더불어 친지간에 나눔의 정을 부탁하면서… 고달픔과 싸우는 2월 2일 새벽 4시 20분, 외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장례식날, 모두가 예견했던 일임에도 죽음과 헤어짐 앞에선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나는 엄마, 이모, 삼촌들의 그림자와 상처가 보였다. 할아버지 영정사진을 두고 절을 하는 그들의 뒷모습에 배여 있는 눈물들이. 이 모든 것을 할아버지께서는 알고 계셨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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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께.

 할아버지, 저 OO예요. 정성스럽게 써 주신 편지는 너무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엄마한테서 할아버지께서 편지를 써주셨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밤이 될 때까지 시간을 기다렸어요. 조용히 할 일을 다 끝내놓고 천천히 읽어봐야 될 것 같았어요.

 침대에 엎드려 몇 번이나 할아버지의 편지를 다시 읽고 곱씹고 눈물을 흘렸어요.

 편지를 읽은 밤은 저에게도 길었고 많은 생각을 하게 했고 또 편지를 쓰신 할아버지의 마음을 제 입장에서 조금이나마 헤아려봤답니다.

 할아버지께서 써주신 편지는 마치 본인에게 해주고 싶은 어떤 인생의 회고와도 같이 느껴졌고 고되지만 후회없이 걸어오신 할아버지 인생에 대한 소감같이 숭고하고 아름답고, 또 눈물 흘리게 만드는 어떤 것이엇습니다. 저에게 당신의 자식을 다시 한번 간곡히 부탁하는 할아버지의 말씀에서 아버지의 마음을 보았고 고단한 세월을 버텨낸 자식 앞에 흘리는 아버지의 눈물도 보았습니다. 저는 아직 혼자라 부모님의 마음을 전부 다 알 수는 없지만 언젠가 그런 날이 오면 할아버지께서 편지에 써주신 말씀을, 마음을 더 잘 알 수 있겠죠? 해가 지고 달이 뜬 밤이 너무 고달프고 길게만 느껴져도 할아버지께서 간직하신 소중한 기억들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면 좋겠습니다. 해 드릴 수 있는 게 이런 말 뿐이라 죄송하지만, 할아버지의 편지는 매일 한 번씩 꺼내 읽고플만큼 저에게 큰 힘과 의미를 지닌다는 걸 알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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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기둥이 사라진 느낌이다. 간곡히 부탁하신 할아버지의 마음을 애써 간직하고 지켜야 한다. 그렇게 해야 만 비극적인 슬픔만이 자리하지 않을 것이다. 할아버지께서도 받으신 마지막 편지를 애써 간직하고 지키고 계실까. 절을 올리기 위해 움직이는 무릎과 숙이는 고개짓에는 슬픔을 상쇄하는 결연, 희망같은 것들이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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