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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스리스 Sep 03. 2016

ㄴ.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

(2) 이, 이, 이, 이이...!

 해는 슬렁슬렁 구렁이 담 넘어가듯 잘만 넘어가고 약속된 날은 금방 왔다. 보름달이 온 동산을 감싸 안은 날, 토끼는 잠을 아주 잘 잤더랬다. 너럭바위 앞에는 거북이만 있는 게 아니었다. 도대체 다들 언제 알고 온 것인지, 모여 있는 동물들 종류도 머릿수도 모두 우글우글했다. 토끼는 한편으로는 내가 이렇게 유명했던가, 하는 자부심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누가 나불대었던 것일까, 하고 궁금해했다. 몇을 붙들고 물어보았지마는 다들 모르쇠로 일관하던 것이었다. 허탕을 친 토끼는 그래 그런 건 중요하지 않지,라고 위안하며 너구리를 찾으러 갔다. 어찌 되었든 간에 녀석을 찾아야 얘기를 들을 것이 아닌가. 너구리를 간신히 찾아냈을 때, 그 녀석은 다른 동물들과 어울려 내기를 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동물들이었다. 뭔가 불량하게 생겨 주위 다른 동물들을 슬슬 물러나는데 턱, 하고 끼어있으니 어찌 어이가 턱을 차올리지 아니할 게냐.

  “너구리야, 너 뭐하냐?”

 신경 쓰지 말라는 듯 귀찮은 티를 팍팍 내며 귀를 후비는 꼴을 보니 한 대 팡 차고 싶었다. 원체 맹한 놈이긴 했어도 이리 버르장머리 안드로메다로 던져버린 놈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이리 와 봐라, 하고 데려와서는 거북이가 어떤 놈인지, 나 좀 알려다오 했다. 그랬더니 까마귀한테 자기도 전해 들었다지 뭔가. 그러곤 도로 가버렸다. 까마귀를 애써 찾았더니 여우에게, 곰에게, 그들을 비롯해 온통 전해 들은 놈들 투성이었다. 심지어 거북이가 경기하자고 청한 게 아니라 해서 이기겠다고 호언장담 했다더라. 슬슬 기분이 나빠지려는 찰나에 누가 뒤에서 헛기침을 했다.

  “어흠, 큼, 큼.”

 아, 돌아다보니 그렇게 찾고 찾던 번쩍번쩍한 대머리에 번뜩이는 등딱지와 누런 이빨을 가진 거북이었다.

  “아, 거......”

  “토 선생, 이렇게 만나게 되니 좋군요. 준비는 다 했나요. 출발은 여기서 하고, 도착 지점은 호랑이님 굴 앞에 있는 샘까지로 하겠습니다. 괜찮지요?”

 토끼의 말을 잽싸게 끊더니 자기 할 말을 다 해버린 거북이는 호의적인 태도로 대답을 요구했다. 토끼는 멍청히 고갤 끄덕이려다가 말았다. 호랑이라니! 호랑이는 꼬리 얼리기, 뜨거운 돌덩이 먹이기 등 저지른 일이 많아 잘못 걸리면 작살 날 것이었다. 게다가 거북이가 호랑이‘님’이라고 하는 것도 꺼림칙했다.

  “아니요.”

 전광석과 같이 생각을 한 토끼는 마찬가지로 빠르게 대답했다.

  “그럼 그 앞에 여우굴이나 늑대 굴로 할까요?”

 거북이는 미친 게 틀림없었다. 아니면 자기를 위험에 빠뜨린다거나 겁먹게 해서 도착점까지 못 가게 한다거나 하는 오만가지 안 좋은 결과가 떠올랐다.

  “그냥 돌부처 앞으로 합시다.”

 거북이는 뭔가 탐탁지 않아 보였으나 이내 활짝 웃으며 그렇게 하겠노라 했고, 드디어, 복잡한 머리를 안고 토끼는 해가 중천에 떠서야 출발할 수 있게 되었다.

  “준비, 하시고, 출발!”

 거북이는 느릿느릿 기어갔고, 토끼는 잽싸게 깡충깡충 뛰어갔다. 당연히 토끼가 한참을 앞질러갔다. 출발하면서도 거북이가 무슨 자신감으로 그랬던 것일까 무슨 일을 꾸민 것일까 고민했던 토끼는 뛰는 와중에 죄다 잊어버렸다. 기분은 좋았다. 털이 휘날리는 이 느낌을 좋아했다. 점점 좁아지는 길을 따라 중간쯤 와서 보니, 계곡을 건너는 다리가 없었다. 어허, 이걸 어떻게 한담? 머리를 쥐어뜯던 토끼는 배도 고프고 해서 거북이가 준 떡을 꺼냈다.

  “길이 좀 멀고 하니, 중간에 먹을 만한 풀을 뜯기도 좀 그렇고, 풀이 무슨 큰 힘이 나겠습니까요. 간단한 떡을 준비했는데 가시는 길에 출출할 때 드시면 맛도 있고 힘도 날 터이니, 가지고 가십지요. 정 싫으시다 하시면 넣어두셨다가 가는 길에 버리시고.”

 떡을 누가 버린단 말인가. 아무 때나 먹을 수 없는 별미였다. 조금 찝찝한 건 사실이었지만 굳이 맘에 들지 않으면 버리라는 말을 보니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토끼는 목에 걸리지 않게 떡을 잘 삼켰다. 그리고 다시 건널만한 데가 어디 없나, 하던 중에 하품이 나왔다.

  “아휴 음-”

 잠깐 자는 건 괜찮겠지. 토끼는 길가에 누워 잠을 청했다.

 그때쯤 거북이는 느릿느릿 기어 오고 있었다. 서두르지 않았다. 토끼가 떡을 버릴 리는 만무했고, 그럼 어디쯤에선 꿈속을 헤매고 있을 것이었다. 충분히 이길 수 있었다. 한참을 가다 보니 길 한가운데 걸쳐 누운 토끼가 보였다. 아니, 안쪽으로 들어가 잘 것이지! 하필 길도 좁은데! 턱을 앙다물은 거북이는 조심스럽게 반대쪽 옆으로 바짝 붙어 갔다. 하지만 어쩔 수 없게도 토끼를 건드려버리고 말았다. 토끼는 동그란 눈을 번뜩 뜨고는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아니, 벌써 왔어요?”

 거북이 능청스럽게 말을 받았다. 

  “벌써라니요, 벌써 해가 이렇게 넘어갔는데. 주무시고 계시길래 깨웠지요.”

 거북이가 깨워 줄 이유는 전혀 없었다. 시합 중이지 않은가. 먼저 갔어도 아무 문제없는 것이었을 텐데. 토끼는 거북이가 사실은 좋은 동물이고 무슨 일을 꾸몄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동안 오해했다는 것을 알았다.

  “아, 고맙습니다. 앞에 다리가 없어졌더군요. 그래서 지체되는 바람에......”

  “이런, 그렇군요. 저어기 밑에 어디쯤에 징검다리가 있긴 할 텐데 돌아가셔야 하니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에 다시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거북이는 다음엔 준비를 좀 더 제대로 하리라고 마음먹고 제안을 했고, 콩깍지가 단단히 씐 토끼는 자신을 걱정해 주는 거북이에게 감동받았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여기서부터 다시 하지요. 그럼 먼저 갈게요. 이따 봬요.”

 그러고는 깡충깡충 저 밑으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토끼는 아무리 내려가도 징검다리 비슷한 게 나오지 않아 의아했다. 그래서 거북이가 아까 그 길과 윗길을 헷갈린 건 아닐까 싶어 방향을 틀어 위로 올라갔다. 부실해 보이지만 징검다리가 있긴 있었다. 조심스럽게 깡충깡충 뛰어 건넌 뒤 토끼는 배도 고프고 힘도 없었지만 시간을 너무 뺏겨 얼른 도착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돌부처 앞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밤이었다. 눈에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이지러진 달이 환했다. 거북이는 없었다.

  “부처님, 안녕하세요. 덕분에 제가 먼저......”

 그때 돌부처 아랫부분에 있던 둥그런 바위가 움직였다. 거북이었다. 그럼 내가 진 거야? 눈을 크게 뜨고 거북이를 살폈다. 반짝반짝한 대머리에 번뜩이는 등딱지- 아, 등딱지에 둥그런 점이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토끼는 심판이 분명한 거북이에게 다가갔다.

  “내가 먼저 왔지요?”

 그 거북이 대답이 이상했다. 

  “아니, 내가 저기 앉아있던 것 못 보셨습니까?”

 토끼는 기분이 팍 상했다.

  “자네는 뭔데 다른 거북이인 척을 하나?”

 실랑이를 좀 벌이다 그놈은 사실 형제 거북이라는 게 밝혀졌다. 그리고 드디어 진짜 경기하는 거북이가 왔다. 거북이는 땅을 두어 번 쿵쿵 굴렀고 여기저기서 동물들이 졸린 눈을 비비며 나타났다.

  “뭐야, 끝났어?”

  “누가 먼저 들어온 건데?”

 금방 누가 떡을 땄네 못 땄네 하면서 소란스러워졌다. 토끼는 큰 목소리로 외쳤다.

  “제가 먼저 도착했습니다!”

  “아, 그래? 그래 그럴 수밖에. 저 거북이 형제들 많이 잃었겠구먼.”

  “당연한 결과지, 우리 이제 집 가자.”

 그때 거북이가 갑자기 생뚱맞은 소리를 했다.

  “토 선생, 왜 이리 비겁하십니까?”

 당황한 토끼는 안 그래도 둥그런 눈을 더 크게 뜨고 거북이를 쳐다보았다.

  “아까 계곡에서도 그렇고 전 정말 토 선생이 그런 분인 줄 몰랐습니다.”

 의미심장한 말에 주위에서 자꾸 말해보라고 재촉이었다. 얘기를 들어본 즉, 자기가 자는 토끼를 깨우고 다리가 없길래 징검다리 있는 곳을 알려주었더니 먼저 가 버리질 않나, 어찌어찌해서 돌부처 앞에 먼저 오게 되어 쉬고 있었더니 자기보고 왜 거짓말하냐고 그러질 않나, 토끼는 이 시점에서 아까 그 다른 거북이를 찾았으나 어디로 간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그래 놓고는 제가 먼저 왔다고 주장한다는 것이었다. 더 어이가 없었던 것은 토끼가 힘들어 보이고 해서 경기를 다음에 상태가 좋을 때 다시 하자했더니 뭔 흰소리냐고, 톡 쏘아붙였단 것이었다. 그럴듯하게 손짓 발짓 섞어가며 하는 말에 토끼는 당혹스러워 차마 말을 하지 못했다. 주변 분위기를 보니 다들 험악해져서 얘기를 들어줄 것 같지도 않았다. 토끼는 많은 질타를 받고서는 충격으로 비틀비틀 자기 굴로 되돌아왔다. 귀가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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