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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스리스 Aug 03. 2018

ㄷ. 흥부와 놀부 이야기

(2) 흥부는.

 나른히 기분이 좋을 땐 글이 잘 안 써진단 말이야. 뺨을 스치는 이 바람이 너무 좋아서. 저녁이 되면 다행히 선선해지는 바람 덕분에 무더운 여름을 기꺼이 나고 있었다. 연습장을 덮고 일어났다. 동생에게 보낸 문자에 아직 답장이 오지 않았다.

  '흥부#무슨 일이야?'

 우물 정은 노트를 봤다는 일종의 신호였다. 오랜만에 꺼낸 노트라 늦지 않았을까 걱정됐다. 무슨 좋은 일이길래 그냥 전화하지 뭘 또 신비스러운 장치를 사용했나 싶었다. 나비는 심심했는지 발치에서 어슬렁거리며 야옹거렸다. 고양이 등허리를 쓰다듬을 때의 감촉은 중독적이었다. 나비는 가만히 있는가 싶더니 다시 슬쩍 도망갔다. 

 동생은 늘 뭐든지 열심히 했다. 가만히 앉아서 뭔가에 골똘해 있으면 며칠 지나서 그 결과를 알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어디 주최 금상이라던가. 대상이라던가. 그러면서 눈물도 많았다. 세상엔 너무 가여운 것이 많았다. 한 번 본 적 없는 동물이 사막화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을까 봐 울었다. 남들이 질투할 땐 서러워서 울었지만, 나쁜 소식을 들으면 안타까워 울었다. 나 같으면 쌤통이라며 고소해했을 일을. 그래서 늘 최고를 지켰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태초에 가졌었을지도 모르는 순수에 담긴 빛에 세상이 탄복해서.

 이럴 줄 알았으면 좀 일찍 일찍 추억을 회상하는 건데. 세어보니 전화한 지 거의 2주가 되어가는데 너무 바빴다. 휴대폰을 잘 보이는 곳에 두고 TV를 틀었다. 옛날 영화는 요새 영화보다 더 느리고 더 문학적이었다. 맥주를 한 캔 땄다. 내 직업과 취미가 모두 인간 역사에서 보편적인 위치를 차지한다면, 흥부가 하는 일은 최신 테크놀로지의 고군분투로 표현 가능했다. 컴퓨터의 아날로그화 프로젝트. 이진법을 사용하는 컴퓨터는 많은 걸 해냈지만, 반대로 인간에게 쉬운 것은 접근조차 힘들어한다. 이질적인 두 단어의 합. 흥부의 프로젝트는 가장 인간다운 AI를 위한 발상이었다. 아직은 이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배고파."

  "주문을 도와드릴까요?"

 아니면 다이어트 모드.

  "야식은 체중 감량에 도움이 안 됩니다."

 물론 보편화된 것은 아니지만. 휴대폰이 울렸다. 후다닥 확인했지만 팀장이었다. 메신저를 안 깔기 잘했다. 너무 빨리 확인한 게 티가 나면 한가한 줄 알 것이다. 답장은 한 시간쯤 뒤에 보내기로 하고 일은 미리 처리하기로 했다. 그럼 조금 더 쉬면서 능력 있어 보일 수 있었다. 맥주를 마저 털어 넣었다. 흥부가 많이 바쁜 것 같았다. 방에서는 미처 꺼두지 않은 라디오가 계속 노랠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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