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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란 Sep 28. 2020

미안하지만, 육아휴직은 넣어둬.

워킹맘의 치밀한 전략

"회사에 계속 다닐 생각이라면, 미안하지만... 육아휴직은 넣어둬."


육아휴직을 포기하라는 Y선배의 말에 감동받았다고 하면 매우 어색하게 느껴지겠지만, 감동받았다. 진심으로 걱정해줘서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욱 그랬다. 육아휴직을 생각하고 있다고 하면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말거나 유난스럽게 맞장구 치면서 훈수를 늘어놓는다.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전자가 훨씬 낫다. 후자는 본인이 얼마나 여성 인력에 대해 우호적인지를 과시하고 싶은 부류가 대부분이다. 대게 '그래도 우리 회사는 여자가 일하기 좋잖아?'라고 단정적인 투로 말하면 내 쪽에서 대꾸조차 하고 싶지 않아져서 대화가 끊긴다.


나의 육아휴직을 극구 말린 사람은 Y선배가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회사 연수원에서 우연히 방을 같이 쓰게 된 모 차장님이었다. 처음 만난 사이에 우연히 같은 방을 쓰게 된 것인데, 서로 통성명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에 무심코 '일이 힘들어서 육아휴직을 쓰고 싶다'고 말했던가. 푸념으로 던진 말에 모 차장님은 진지하게 '절대 쓰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순간 매우 무례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연을 들어보니 차장님은 육아휴직으로 커리어가 곤두박질치는 경험을 했고 저런 푸념조의 말에 질색했다.


90년대 후반 입사. 몇 백명이 넘는 동기 중에 여자는 겨우 10명 안팎이던 시절이었고, 때려치고 싶은 순간들은 셀 수 없었다. 으레 결혼하면 직장을 그만두고, 결혼하지 않은 여자는 안줏거리가 되던 시절이었다. 요긴한 귀동냥을 들으려면 면전에 뿜어내는 담배연기를 견뎌야 했고, 커피는 여자가 타줘야 맛있다는 시덥잖은 놈들은 지천에 널려 있었다. 그걸 견뎌내며 어렵사리 과장으로 진급했고 때마침 육아휴직이라는 제도가 생겼다.


괜찮을거라고 생각하셨단다. 업무적으로 인정을 받고, 승진도 했으니 잠시 쉬어가는 것쯤은 회사에서 이해해주리라. 공백이 무색할 정도로 화려하게 복귀하리라. 그런데 회사는 냉정했다. 본사에서 일하던 사람을 직무연관성이 없는 현장 부서로 발령을 내버렸고, 하루 아침에 낙동갈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회사에서 매년 수립하라고 재촉하는 조직원의 CDP(경력개발계획)가 무색하게.


동기들은 임원, 팀장이 되어 회사를 이끌어 가고 있는데 본인은 여전히 '호칭 차장'이고, '걔가 참 일을 잘했었는데, 몸이 약해서 경쟁에서 밀려났다'는 식의 이야기를 듣는다고 했다. 나는 직장에서 선후배들이 겪는 이런 상황을 두고, '억울하다'고 표현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억울하다'는 말 말고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Y선배는 '회사에 계속 다닐 생각이라면'이라는 전제를 두었다. 그리고 덧붙여 이렇게 말했다.


"쉴 때는 좋아. 1년 후에는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것만 같지. 그런데 그 1년 때문에 이 회사에 있는 동안 피가 거꾸로 솟는 경험을 여러번 해야 할거야. 휴직 후에 그만 둘 생각이 아니라면 다시 생각해. 나도 그랬어"


'나도 그랬어'라는 말의 무게에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사실 나도 그랬다. 출산휴가만 쓰고 복직했던 것은 대리 진급에서 누락하지 않기 위한 나름 치밀한 전략이었다. 반기 단위로 진행되는 평가에서 출근일수가 50% 미안일 경우 N/A평가를 받게 되는데, 이 N/A평가를 받지 않으려고 출산예정일보다 한 달이나 먼저 출산휴가에 들어갔다. 아이가 6월생이어서 가능했던 것이지 이런 전략도 모두에게 가능한 선택지가 아니다.


N/A평가에 대한 소문은 무성하다. 사실상 A평가와 동일해서 승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 인사 담당 부서의 공식적인 입장이나, 승진사정기간 내 N/A평가를 받고도 승진한 사례는 없다. 그러니까 휴직 후에 승진을 하려면 +3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되고, 그 영향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대리, 과장, 차장, 부장까지 계속 누락된다. 그러다보면 '쟨 무슨 문제가 있어서 승진이 이렇게 늦었어?'하는 시선이 생겨 뒷목 잡게 하기도.


1년으로 손해보는 기간이 몇 년이 될지 헤아릴 수 없다. 그것이 Y선배의 말의 취지였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 치밀한 전략 하에 태어난 아이가 만 8세가 되려면 2년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2년 안에 육아휴직을 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한다. 입에 모레를 잔뜩 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이번에는 내가 과장 진급을 위한 승진사정기간 내에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결국 직급만 바뀌었을 뿐, 그 때와 똑같은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나도 가끔 '승진을 하고 임신을 하라'는 주제 넘는 말을 한다. 구구절절 내가 왜 출산휴가만 쓰고 복직했는지를 설명해주면서. 모 차장님이 처음 보는 나에게 정색을 하고 '육아휴직은 절대 하지 말라'고 말했던 것 처럼.



워킹맘의 심정이란, 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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