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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랑심 Jun 15. 2024

1-4. 천국과 지옥의 사이

어느 분만 의사의 선택

“천국과 지옥은 동전의 양면처럼 비슷하지만 지옥행 열차는 중간에 내릴 수 있는 선택권이 없다.”


다른 의료 영역도 어느 정도 그런 점이 있겠지만 특히  출산을 돕는 산부인과 의사들은 천국과 지옥을 나누는 벼랑을 걸어야 하는 순간이 많다. 지옥 언저리를 헤매야 할 때  단테처럼 베르길리우스 같은 안내자가 있다면 좋겠지만 혼자서 가야 하는 분만 의사의 길은 외롭고 두렵다.


죽음의 문 바로 앞에서 가까스로 되돌아와  중환자실로 간 산모는 가족 외에는 면회가 안되기 때문에 나는  중환자실에 들어가서 산모를 볼 수는 없었다.  내가 중환자실 앞에 있다고 해도 이 상황에서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도 왠지 이곳을 바로 떠나면 신에게 미움을 받아 좋지 않은 소식이라도 들려올까 겁나서  중환자실 앞에서 몇 시간 가슴을 졸이다가 밤늦은 시간에 함께 갔던 직원과 병원으로 돌아왔다. 불안하기 짝이 없는 이틀인가 삼일쯤 지나서 산모의 상태가 호전되어 일반 입원실에 올라갔다고 전해 들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외래 진료가 없는 일요일에 병원에 함께 갔던 직원과 함께 산모께  문병 갔다. 처음에 산모의 얼굴을 보니 끔찍한 일을 겪은 사람치고는 의외로 의연한 모습이었다. 함께 간 직원은 산모의 손을 잡고 눈물부터 흘렸다. 그래도 회복되어 가는 산모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한결 놓였다.

이번 일에 대하여 중환자실 앞에서 잠시 만났던 산모의 가족 중 한 분은 산모가 수술을 받던 다음 날 병원에 와서 산모의 진료 기록과 검사 결과지를 복사해 달라고 하여 복사해 드렸다. 차후 잘잘못은 따지겠다고도 했다. 나중에 분쟁이 발생할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산모께서 생명을 잃지 않은 것만으로도 나는 고맙다는 생각뿐이었다.


골반이 좁거나 혹은 아기가 크거나 노산이거나 하는 등 이런저런 이유로 난산이다가 자연분만하신 분들은 특히 더 그렇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도 퇴원하면서 감사의 인사를 건네는 분들이 종종 있다. 케이크이나 과일 선물을 주시는 분도 있고 손 편지를  남기시는 분도 있다. 그럴 때면 이곳이 천국이지 어디가 천국이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천국은 아니라도 최소한 소확행보다는 큰 중확행 정도는 되는 듯싶다. 그러나 이런 천국 또는 행복도 옆으로 한 발자국만 잘못 삐끗하면 그대로 지옥행이 된다. 아기의 상태가 나빠지거나 산모가 위험에 처한 경우에는 견뎌내기 쉽지 않은 비난을 듣는다.  꼭 비난이 없더라도 악결과가 발생했을 때는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으로 상당 기간 우울증에서 헤어 나오기 어렵다. 분쟁이 생겨 법정 다툼을 벌이면 수억 원 이상의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하게 될 가능성도 높다. 왜냐하면 환자가 의사의 과실을 입증하기도 어렵지만 의사가 진료 과정에서 일체의 미흡한 점이 없이 완벽했다는 것도 증명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요즘은 과실 혹은 반대로 무과실에 대한 입증 책임이 환자에서 의사에게로 넘겨지는 경향이다.  자책감,  비난,  병원 이미지 타격 등 사안마다 정도와 방식은 다르지만 악결과에 대하여는 상당히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  환자가 치른 희생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의사도 마음의 지옥에서 여러 날을 보내야 한다. 천국과 지옥이 정말 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단테의 신곡에서도 그렇고 대체로 그 둘 사이의 경계는 멀다. 중간에 연옥이라는 중간 지대가 있다고 하다. 그러나 의료 현장에 관한 한 천국과 지옥의 경계는 그야말로 종이 한 장 차이다. 의학의 관점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가 그런 것처럼.


산모는 다행히 담담한 얼굴이었다. 비록 아기도 잃고 자궁도 수술로 제거하여 더 이상 임신도 할 수 없지만 누구를 원망하는 눈빛은 아니었다. 불과 며칠 전에 지옥 같은 상황이 벌어졌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 지옥의 한가운데 떨어지진 않고 가느다란 줄을 잡고 있었다. 물론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가느다란 줄이지만. 

중환자실 앞에서 보았던 산모의 가족 중 한 분이 언제인가 병원으로 오지 않을까 했지만 결국 오지는 않았다. 그분뿐 아니라 산모의 가족 누구도 병원에 오거나 경찰에서 연락이 온 적이 없다. 아마 산모와 남편분이 의료 분쟁으로 끌고 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라고 짐작한다. 그 당시로 돌아간다고 해도 내가 별반 다르게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 내 진단과 처신이 크게 부끄러운 부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분쟁으로 끌려 들어가지 않은 점에 대하여는  정말 감사한 마음이다.  악결과가 발생하였음에도 분쟁으로 가지 않는 경우는  생각만큼 많지 않다. 어지간히 인품 좋은 분들을 만나지 않으면 분쟁을 피해 가기 어렵다. 분쟁으로 배상금이 적지 않게 나올 수도 있고 병원의 이미지 타격도 심하지만 무엇보다 의사도 사람인 이상 정신적으로 상당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때 문병 간 이후 아무래도 기억을 떠올리는 것조차 괴로우실 듯하여 전화를 드려 안부를 여쭈어 보지는 못했다. 기존에 있는 첫째 아이와 함께 세 가족이 행복하게 살고 계시길 기원할 뿐이다. 그 당시의 끔찍했던 기억은 앞날의 행복을 위한 액땜이라고 여겨 주시길 바란다. 그리고 그분은 앞으로 임신할 일은 없으니 그런 류의 위기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출산을 돕는 의사로 사는 한 앞으로도 비슷한 위기의 순간이 언제든 올 수 있다.  그래서 벼랑의 저쪽으로 떨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나는 졸린 눈과 몽롱한 정신을 고농도 카페인으로 깨우면서 오늘도 분만실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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