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만 의사의 선택
“골든 타임이 지나기 전에는 금이지만 그것이 지난 후에는 비슷한 색의 다른 것이 된다. 똥이다.”
환자를 3차 병원으로 전원해야 할지, 전원을 한다면 언제 해야 할지 결정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전원을 늦게 하였을 경우 산모나 아기의 건강과 생명에 매우 위험한 사태가 생겨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다다를 수 있다. 의료 사고로 인한 분쟁에 휘말리면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하는 경우는 적지 않다. 반대로 전원을 너무 일찍 하였을 경우 그런 위험은 없어 배상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전원을 남발하게 되면 결국 병원 경영에는 당연히 좋지 않다. 보아야 할 환자나 산모가 너무 적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세간에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 하는 말이 있다. 한식과 청명은 같은 날일 때로 있고 차이가 나도 하루나 이틀 정도일 뿐이다. 따라서 둘 다 별 차이가 없을 때를 빗댄 속담이다. 관건은 그 둘 사이에서 적절한 지점을 잘 선택하는 것이다. 분쟁을 걱정하여 안전한 환자만 보다 환자가 줄어 경영 악화로 병원 문을 닫거나 아니면 위험한 환자도 가리지 않고 보다가 분쟁에 휘말려 한방에 병원 문을 닫으나 망하기는 매 한 가지다. 어느 것이 더 빨리 망하는 길인지는 모른다. 그 둘 사이에서 병원 문을 닫지 않도록 줄타기를 잘하면서 버티는 것이 경영자로서 개업 의사의 임무다.
산모의 경우 전원 시점은 산전 진찰 하는 과정 동안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고, 진통 중에 혹은 출산하고 나서 급박하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 바람직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출산 과정에 들어가기 전에 전원 하는 것이다. 그러나 별다른 고위험 요인이 없이 정상적 진행과정을 밟을 것으로 예측되는 산모들마저 미리 전원 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전원 여부를 결정할 때는 자신의 능력과 경험치, 병원의 인력과 장비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나름대로 기준을 미리 정해 두고 시행하면 좋다. 나의 경우 산모의 전원 기준은 나이는 40세 이상, 병원에서의 거리는 한 시간, 전치태반이나 자궁 하부 근종, 임신성 고혈압, 36주 이하의 조산과 같은 산과적 고위험군 산모, 심장 질환이나 호흡기 질환 보유 산모, 척추 이상을 가지고 있거나 근육 질환을 가진 산모는 전원 한다.
당연한 말을 새삼 적는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 몰라 부연 설명드린다. 몇 년 전에 우리 병원 근처의 병원을 다니던 산모가 임신 7개월쯤 되어 출산을 위해 우리 병원으로 전원을 하고자 상담차 온 적이 있다. 산모를 진찰하여 보니 태아에게는 문제가 없었지만 산모가 중증근무력증이라는 질병을 가지고 있었다. 이 병원 루게릭병과 같은 것으로 온몸의 근육이 위축되면서 근육 수축에 지장이 있는 질병이다. 뚜렷한 치료법은 없고 여러 가지 합병증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임신을 하면 산모의 심혈관계에 끼치는 부작용 때문에 임신 출신은 금기다. 임신과 출산 과정 동안에 사망할 확률이 상당히 높다. 그럼에도 이 산모는 임신을 하였다. 이왕 임신하였으니 이제는 내과와 산부인과 의사의 협진을 받아가면서 안전하게 출산하는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3차 병원에서 산전 관리를 받고 출산을 하도록 권고한다. 그래서 나도 3차 병원을 권유하였는데 그 산모는 다니던 산부인과에서 지금까지 그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이 당연히 원래 진찰받던 곳에서 출산할 생각이었다. 간신히 설득하여 3차 병원으로 의뢰하였다. 물론 이 분처럼 고위험 요인을 가진 모든 분들이 출산 과정 동안 위험한 상황에 마주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다행히 별문제 없이 출산을 마무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일 근육 무력증이든 중증 갑상선 기능 항진증이든 출산 순간에 위험한 순간이 왔을 때 적절한 조치를 하지 못하면 그 대가는 자신과 아기의 생명과 건강의 희생이다.
다른 경우에도 그렇겠지만 의료 영역에서 위기는 위험한 상황 자체에도 달려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위험하는 것을 인식하고 위험에 대하여 대비를 해 두었는지 아닌지 하는 것이다. 정말 위험한 것은 위험에 대한 인식도 없이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는 것이다.
위험이 닥치기 전에 좀 더 준비가 되어 있는 상급 병원으로의 전원이 좋은데 문제는 진통 과정이 시작되고 출산 과정에 들어간 이후의 전원이다. 이때는 태아가 위험한 상태이거나 산모가 위험한 상태에 이를 가능성이 높은 경우다. 대부분 태아 곤란증이 있는 때 아니면 산후 출혈이다. 태아 곤란증의 경우는 아기가 신생아 중환자실에 입원할 가능성이 높을 때는 미리 전원해야 하지만 대부분 우리 병원에서도 응급 제왕절개 수술을 통하여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출산 후 출혈이 많을 때는 즉시 전원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산후에 출혈이 많을 때 사용 가능한 방법들이 몇 가지 있다. 자궁 마사지, 복부 냉찜질, 지혈제나 수축제 투여, 수액 공급이 일차적 조치이며 이런 방법으로 해결이 되면 다행이다. 그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출혈이 줄어들지 않을 경우 전원해야 한다.라고 말하면 간단하겠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출산 후에도 정상적으로 출혈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산후 출혈은 보통 산후 6 주까지 이어지는 데 흔히 오로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출산 후와 생리 중일 때 단 두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 그 외 우리 몸에서 생기는 모든 출혈은 정상이 아니다. 출산 후와 생리 중에는 출혈이 정상적으로도 있기 때문에 이것이 과연 의학적 개입이 필요한 병적인 수준인가에 대한 판단은 정말 어렵다. 혹자는 출혈의 양을 계량하여 판단하라고 하지만 사실 출산 후와 생리 중에 패드의 무게를 재서 하는 출혈량 측정은 매우 부정확할 뿐 아니라 위급한 상항에서는 여유 있게 그런 것을 측정하기도 어렵다. 혈액 검사로 혈색소 수치를 측정하는 것이나 혈압, 맥박을 측정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러나 혈색소 측정은 너무 늦게 나타나는 지표이고 혈압과 맥박도 이상 징후가 나타나면 이미 상당량의 출혈이 발생했다는 의미다. 따라서 대체로 육안으로 출혈을 확인한 출산 담당 의사의 판단에 따른다. 나의 경우 출혈량이 평균 산모들보다 조금이라도 많다고 생각되면 일단 수축제와 지혈제를 사용하고 그래도 출혈이 줄지 않아 총출혈량이 평균 출혈량 (400ml 전후)의 두 배쯤이라고 판단되면 바로 전원을 고려한다. 사실 400cc라는 출혈량은 엄청 많은 출혈이다. 헌혈할 때 한 명이라는 헌혈 팩 하나가 400cc다. 그래서 분만 의사만큼 출혈을 자주 많이 보는 의사도 없다. 외과 의사가 똥이 더럽게 느껴지면 장과 항문 수술을 그만들 때가 된 것이고 산부인과 의사가 피가 무서워지면 분만을 그만둘 때가 된 것이라는 말이 있다. 출산 과정 동안 많은 피를 보는 분만 의사의 처지는 피 한 방울에도 긴장하는 갑상선 외과 의사와 대조적이라 하겠다. 왜 갑상선 외과 의사가 한 방울의 피도 무서워하는지는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말씀드리겠다.
“오진에 대해서”
의료 현장에서는 오진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불가피하게 오진을 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는 언더 다이아그노시스 (under diagnosis—실제 가진 병보다 가벼운 상태로 오진을 하는 것) 보다 오버 다이아그노시스 (over diagnosis—실제 가진 병보다 위중한 상태로 오진을 하는 것)가 낫다는 말이 있다. 출혈과 관련한 전원에서도 조금 이르다 싶을 때 전원을 하면 즉 오버 다이아그노시를 하게 되어서 3차 병원에 가서 별 조치 없이 회복이 되면 괜한 수고로 인한 번거로움과 약간의 비용이 더 든 정도의 손해가 발생할 뿐이다. 그러나 출혈을 간과하여 늦게 전원을 하게 되면 즉 언더 다이아그노시스를 하게 되면 저혈압에 의한 쇼크가 초래되어 매우 위험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