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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샘 Aug 05. 2024

공립유치원 교사가 생각하는 한글 조기교육 -2

만 5세의 한글 떼기



21년 당시 7세 반을 맡았는데 우리 반에 한글을 정말 모르는 친구가 있었다

어머님은 보기 드물게 '애가 싫어하는데 뭐 어쩌겠어요.나중되면 쓸 수 있겠죠'라는 마인드를 가지신 분이었다

6살 아이들도 학기 초에서 여름방학 전까지는 늦어도 자기 이름은 스스로 쓸 수 있는데

이 친구는 7세 후반까지도 자기 이름을 잘 못썼다.

왼손잡이인데 가정에서 오른손잡이를 강요하기 때문에 글을 잘 쓰지 못함이 첫째 이유였고

잘 쓰지 못하니 '나는 못해'라는 생각에 쓰기를 거부하고 흥미를 갖지 못함이 둘째 이유였던 것 같다


그 친구를 돕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작은 성취에 기뻐할 수 있게 노력에 대한 칭찬과 결과물에 대한 가시화를 참 많이도 해줬다

쓰기에 대한 흥미를 안고 졸업시키기는 어려웠지만 자기 이름을 쓰고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을 편지로 조금씩 표현해 보려는 노력까지는 일궈내었다




다른 친구들의 경우 유치원에서도 많은 문해 환경에 노출되어 있고 가정에서도 한글 교육에 많은 노력들을 기울이시니

완벽하지 않지만 읽기와 쓰기가 재밌는 형태로 나타나곤 했다

아이들의 이러한 창안적 글자, 읽기 들은 놀이의 과정이 되기도 하고 새로운 놀이를 낳기도 하는데

그 과정에서 소외되니 이 친구 입장에서 참 마음이 위축되었을 것 같다


그전까지는 7살 때 재미있는 동시 쓰기, 친구에게 편지 쓰기, 친구들 사진 찍고 웃긴 책 만들기 등 다양한 재밌는 방법으로

한글에 대한 노출과 쓰기 경험을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친구를 만나고 나니 한글이 아이이 자존감에 영향을 미친다면 교육과정이 그렇지 않더라도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언어교육에 뛰어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결국 초등학교 가기 전에 어느 정도 읽고 쓸 수는 있어야겠다.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물론 내가 그를 달성하기 위해 활용할 방안들은 절대 학습지와 같은 형태는 아닐 것이고

아이들의 틀린 획순과 글자의 방향, 띄어쓰기는 고쳐주지 않을 요량이지만



그 친구처럼 이름만 간신히 쓰는 수준은 아니 되겠다 이거다.


그래서 앞으로 맡을 만 3세부터 만 5세까지. 한국나이 5살부터 7살까지

적극적으로 언어교육에 뛰어들고자 한다



이것은 유치원 때 한글 떼고 학교 가야 된다.라는 명제에 대한 확신이라기보다는

한글로 인해 자신감을 잃을 나의 반 아이들의 부정적 영향을 막기 위함에 가깝다




그래서 올해 만 4세 6살 담임을 맡은 나는

3월부터 우리 반에서 메시지센터를 운영하고 그림책을 자주 읽어준다


메시지 센터로 편지를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교실 문화를 만들며

내  이름뿐 아니라 친구의 이름을 '편지를 쓰고 싶은 마음'에서 우러러 나와 쓰기를 도구로 활용할 수 있게 돕는다

쓰기 자체가 목적이 되면 재미없다


쓰기가 도구가 되어야 놀이가 되고 배움이 된다



지금 7월까지도 우리 반 아이들은 항상 교사 책상 옆 우체통에 친구의 이름과 내 이름,

고마워, 사랑해, 감기 걸리지 마, 친하게 지내자 등 간단한 문장을 담은 편지를 넣는다



그리고 교사는 이야기 나누기를 자주 하며 아이들이 하는 말을 하나하나 천천히 말로 해주며 글로 적는다

말이 이야기가 됨을 경험한 어린이들은 자유놀이 시간에 그림을 그리고 교사에게 와 조잘조잘 그림을 설명해 주며

"선생님 이거 써주세요!"라고 요청한다


그럼 나는 '어, 티라노가 배가 고팠어요? 티.라.노.가.배.가.고.팠.어.요' 하며 한 글자 한 글자 말이 글이 됨을 보여준다

이런 과정은 아이들이 긴 이야기를 담은 책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과 함께 책 만들기 놀이로 번지게 되었고

우리 반에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 50권이 넘는다.


이 이야기들은 아침 독서 시간에 아이들 사이에서 읽게 되는 그림책의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그냥 그림책이 아닌

내 곁의 친구가  만든 재미있는 특별한 책!



이렇게 한글 조기교육을 한다 해도 방식이 다양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결론적으로 초등학교 가기 전에, 한글을 어느 정도 읽고 쓰러 가는 것이 아이에게 유리한 것 같다

유치원 교육과정은 전문가들이 만들어낸 궁극의 바이블이기 때문에 교육과정에서 추구하는 바를

무리하게 상회할 생각은 없다

철자 하나 틀리지 않게끔 아이들을 교육하고 띄어쓰기, 맞춤법 검사를 할 필요는 전혀 없다는 이야기다

그냥 아이들이 읽고 싶은 책의 제목을 읽고, 그 책에서 아는 글자를 만나 반가워하는 것

놀잇감을 지키기 위한 표지판을 만드는 것


그 과정들이 가능하게끔 도와주고 싶다는 이야기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선 사실 가정에서의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유치원에서 나와 아이들이 만나는 시간은 9시부터 1시 30분 짧은 시간이고 1:1이 아닌 1:14로 만나기 때문




21년도 7살 같은 반 담임일 때 읽고 쓰는 게 빠르고 유독 자기 생각을 예쁘게 표현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의 어머님은 저녁밥 먹고 씻고 난 다음 10분 동안 항상 하루에 있었던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아들과 함께 그림으로 글로 그려보고 써본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림으로 그리다가 글로 쓰기 위해 자연스럽게 한글 공부시간이 되었다고 한다

10분은 엄마와 아들의 일종의 약속된 시간이지만 그 이후 시간은 유아의 의지에 맞게 마쳐진다

10분이 되기도 20분이 되기도 한 그 매일의 시간들은

'쓰고 싶다!'는 마음에서 생긴 것들이었다



필요에 의해 한글을 꼭 배워야 할 시기가 있지만

유아기에는 놀이를 위한 도구로 활용할 수 있도록 조력해 주는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놀이중심 유아교육과정의 중심에 서있는 교사로서

한글을 놀이로 가르쳐 볼 계획이다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재미있는 이야기들 글자들  모양들을 모아봐야지

그 경험들이 가지는 잠재력과 의미를 부모님들께 공유해 드려야지!

값지고 예쁜 경험은 교사만 알기 아까우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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