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다다닥- 소리를 내는
'내일은 일요일이니깐, '이라며 하루종일 여유로운 늦장을 부릴 수 있는 토요일이었다. 그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는데, 춘천 명동엘 들렸다 오늘 길에 유난히도 날이 좋았다. 이대로 집에 들어가기가 너무 아쉽고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친구에게 물었다. '자전거 탈래?' 친구는 망설였지만, 나는 마음을 굳혔다. 왜냐하면 미세먼지가 [상당히 나쁨]에서 [좋음]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친구는 상당히 나빴겠지만, 난 좋았다.
자전거를 탈 때 내 몸하나 이끌고 나가는 것도 고역인데, 이젠 미세먼지까지 고려해야한다. 참 너무하다. 근데 바꿔 생각하면 되려 출발 신호가 되기도 한다. 마치 신호등이 빨간불에서 초록불로 바뀌는 것처럼, 미세먼지가 [좋음]이면 바로 반사적으로 몸이 튀어나가게 된다. 다른 것을 고려하지 않는다. 신호등 건널 때 초록불에 자동적으로 나가는 내 오른발처럼 말이다. 때마침 [좋음]을 나타내는 배경색도 초록색이란다.
여하튼 그렇게 자전거를 끌고 만났다. 어디까지 가겠냐는 질문에, 항상 건너가보고 싶은 다리가 있었다고 답했다. 그렇게 첫 행선지가 정해졌고 페달을 밟았다. 안장의 높이가 적당해, 페달을 밟고 다시 올리는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역시 안장은 허리춤 정도로 조정하는게 적당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몸은 무겁지만 자전거는 가벼웠다. 슝- 튀어나가다보니 어느새 다리를 건넜다.
건너가고 싶던 다리를 건너니, 두 가지 선택지가 나왔다. 강의 상류로 올라가는 것과 하류로 내려가 댐을 찍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나는 내 옆에 강을 끼고 달리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지만, 내심 오늘같이 좋은 날 좀 더 길게 그 감정을 느끼고 싶었다. 속마음을 감추고 가위바위보를 했다. 상류로 올라가자는 내 주먹이, 가위를 이겼다. 하지만 '답은 이미 정해져 있어. 넌 대답만!' 주먹을 무시한 채, 우리는 강의 하류로 발을 굴렀다.
좋았다. 정말 좋았다. 강을 끼고 달린다는 것이 이렇게나 새로운 느낌을 주는 지 알지 못했다. 서울과는 달랐다. 어릴 적, 그러니깐 더 활동적이었을 때, 에는 보통 탄천에서 자전거를 타곤 했다. 좀 더 페달을 밟으면 한강까지 나갈 수 있었지만 그러면 돌아오는 길이 한 없이 멀게만 느껴져, 겁먹고 도중에 돌아오곤 했다. 그 때의 라이딩은 좋다는 느낌이 없었다. 그냥. 그냥 운동한다고만 느꼈지 좋진 않았다.
춘천에서의 라이딩을 이렇다 저렇다 할 정도까지 해보질 못 했다. 그래서 라이딩 그 자체에 대해서는 더 이상 글을 쓰고 싶진 않다. 어디 코스가 좋았고, 여기엔 이런게 있으니 이런 루트를 밟길 추천한다 따위의 글말이다. 그저 우연히 날이 좋았고, 미세먼지가 [좋음]이었다. 그래서 자전거를 탔고, 그게 너무나도 좋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왼 쪽에는 한 없이 흐르는 소양강이, 오른 쪽엔 높디 높은 푸른 산들의 풍경이 너무 좋았다. 그 중에서도 나무로 된 자전거 도로를 달릴 때의 이미지가 머릿 속에 남았다. 아니 내가 남겼다고 하는게 맞다.
그래서 색연필로나마 투박하게 그렸다. 나무로 된 자전거 도로의 투다다닥- 하는 소리가, 게임에서의 타격감 처럼 라이딩감을 살려주었다. 왼 쪽의 소양강과 오른쪽 언덕에 위치한 울창한 소나무들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당장 페달을 멈추고 사진을 찍고 싶게 만들어주었다. 그렇지만 멈출 수 없다. 거창한 신념이 아니라 뒤에 친구가 따라오고 있었으니깐, 내가 원하는 순간은 이미 지나쳤으니깐 그냥 앞으로 나갈 수 밖에 없다. 그 순간을 곱씹으면서, 기억하면서, 그림을 그리겠노라 다짐하면서 집으로 향했다.
내가 그 순간을 곱씹었고, 기억했고, 그림을 그리겠노라 다짐을 했다. 그리고 그렸고 또 글을 썼다. 이제 그 순간은 나의 기록이 되었고 나는 이것을 잊을 수 없는 추억 조각으로 만들었다. 사는 순간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살아가는 삶은 멈출 수 없다. 누워있는 방 안, 정면으로 마주한 LED 시계가 무섭도록 분침을 바꾸는 것 처럼 말이다. 도중에 멈출 수 없고, 다시 돌아갈 수 없다. 그저 지나가면서 짧은 후회를 남기면서, 잊지 않겠다고 기억하겠다고 다짐해야한다. 그래야지 남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