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범위에 대해 생각해보기
굉장한 비효율이긴한데 기업에는 사전 정리 작업이 있어야만 시작할 수 있는 상황들이 아주 많다. 솔직히 하려고 한 일을 바로, 아무 제약이나 걸림돌 없이 시작할 수 있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은게 일반적이다. 누군가의 업무소홀 때문일 수도 있고, 리소스의 부족으로 인한 미해결 상황일 수도 있고, 이해관계의 충돌이나 전략의 변화로 인한 방치일 수도 있지만 분명 존재한다.
예를 들어 고객관리시스템 구축을 해야 하는데 데이터가 불균질하거나 소실 혹은 산재하거나 하는 상황이다. 이 경우 시스템 구축이라는 프로젝트 안에 데이터 취합 및 클렌징 통합이 포함되게 되고, 당연히 프로젝트 범위, 기간, 참여인원과 관련 조직의 확대, 변화가 따른다. 그리고 누군가는 데이터 클렌징을 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현명한 주니어들은 재빨리 일을 하기 위한 준비까지가 일이다라는 교훈을 얻는다. 문제는 함께 일을 해야 하는 주니어가 본래 하기로 한 일을 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하는 사전 정리 업무를 이해하지 못하고,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하거나, 그 시간을 낭비라고 생각하는 태도를 보이는 상황이다.
왜 제가요? 라고 이의제기를 하거나, 그래도 해야한다면 어쩔 수 없이 하면서도 대충, 자기가 꽂힌 쪽으로 포커스해서 빨리 끝내고 “본업”을 하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본업을 못하고 주변부만 맴도는게 불만이란 얘기를 많이들 한다.
집을 지으려면 땅을 파야한다. 그런데 그 땅이 파기 좋은 상태로 준비되어 있는 경우란 없다. 쓰레기를 치워야 할 수도 있고, 나무를 베어야 할 수도 있고, 빈 집을 부숴야 할 수도 있다. 그렇게 정리할 도구나 인원도 필요하다. 라면을 먹으려면 라면이 집에 있어야 하고 조리도구도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집에 물도 나와야 한다.
이 세상 어디에도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는 상황에 몸만 쏙 들어가 필요한 일만 최적 수준으로 하고 나오는 경우는 없다. 물론 그렇게 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에이전시들이다. 모든 것이 정비되고 준비된 바탕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도 엄밀히 말하면 아닌 경우가 많다. 퍼포먼스 마케팅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픽셀이 설치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것마저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럴 경우 고객사에서 픽셀 설치를 잘 해 놓으면 환상적인 퍼포먼스 마케팅을 보여주겠다고 하는 에이전시는 계약을 못따낸다. 그거 우리가 해드릴게요 라고 하고 계약을 해야 한다. 그럼 픽셀 설치는 사전 정비업무라고 할 수 있다. 돈을 받든 안받든 하려는 일을 위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일이다.
이 인식에는 동의하면서 기업 내에 널려있는 선행되어야 하는 정리/정비 업무를 내가 할 일이 아닌데라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기업 내부의 일이란 업무분장을 아무리 잘 해놓아도 필연적으로 조직 R&R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것들이 생기고, 조직이 복잡할 수록 그런 상황은 자주 발생하며, 유형과 종류, 상태가 상당히 다양한 것이 일반적이다. 어느 선까지 포함시켜 본업을 수행하는데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할 것인가는 범위 결정의 문제지 해야하는 일이냐를 따져야 할 것이 아니다.
불합리하게 관련도 없는 일을 다 맡아서 하게 된다면 이의제기를 하는 것이 맞지만, 본업을 위한 사전작업이라면 효율적으로 해결할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런데 아는 만큼 보인다고, 주니어 때는 관련성이 잘 안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