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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빛 얼굴의 친구

초단편 소설집 #10

by JU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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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얼굴은 회색이었다.

회색빛 기미 같은 것이 아니라,

정말 석고로 본을 뜬 듯한 회색이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대학교 신입생 때였다.

우리 반에서 유일하게 차가 있었던 그는,

같은 통학생이라는 이유로 나를 가끔 태워주곤 했다.


공강 시간에는 그의 차를 타고 시내에 나가

밥을 먹기도 했다.


그날도 맛있는 집을 발견했다며 나를 차에 태웠다.

오전 강의로 너무 졸렸지만

배는 고팠기 때문에 그의 차에 올라탔다.


“넌 연애가 좀 필요해.” 그가 빨간 신호앞에서 브레이크를 밟으며 말했다.

“난 운명의 상대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야.” 난 말했다.

“그런 자세로는 할아버지까지 연애를 못할게 될거야.”

“출발이나 해”

그때 신호가 바뀌었다.

“내 얼굴이 회색인 게 궁금하지 않아?” 그가 차를 다시 출발 시키며 말했다.

“모두 궁금해하는 눈치더라. 물론 나도 궁금하지만.”


“대학에 와서는 아무도 물어보는 사람이 없더라.

물어보면 대충 말해줄텐데.”

“이유가 있는거야?”

“너에게만 진짜 이유를 알려줄까?” 그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의 웃음은 어딘가 어색하다.

생각하는 동상이 웃고 있는것 같다.

평소 잘 웃지 않는 탓도 있을것이다.


“오~ 영광이네.” 나는 말했다.

“누군가 물어보면 태어날 때부터 회색이었다고 말해.

그러면 간편하거든. 더이상 질문도 하지 않고.

근데 사실은 어릴 때 갑자기 얼굴 빛이 바뀌어 버렸어.”

“갑자기 마법에 걸린것처럼?”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어릴 때 누나가 하나 있었어.

나는 늦둥이라서 유치원 때 이미 누나는 고등학생이었지.

부모님은 늘 바쁘셔서 누나를 더 많이 따랐어.


이상하게 누나는 학교에 잘 가지 않고 나를 잘 돌봐줬어.

커서 생각해보니 누나는 학교에서 왕따였던 것 같아.

지독히 학교에 가기 싫어했어.


누나는 내게 줄곧 그림도 가르쳐주었지.

내 기억에 그림을 정말 잘 그렸어.

전국대회에 나가서도 상도 많이 탔어.

그리고 그 상을 나에게 보여주곤 했어.


누나는 내 눈에는 늘 반짝반짝 빛났어.

하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간 누나는 하루하루 빛을 잃어갔어.

그리고 어느 날 학교 미술실에서 자살했어.


부모님은 그저 누나가 사라졌다고

내게 말해주고 이해시려고 했지.

누나의 물건들은 모두 버렸는데 딱 하나,

석고상 하나만을 남겨져 있었어.


그 석고상을 내가 갖고 싶다고 말했거든.

부모님은 석고상쯤은 괜찮을 거로 생각했는지도 몰라.”

그는 자연스럽게 핸들을 우측으로 돌렸다.


“하지만 그 석고상이 문제였어.

어느 날 밤, 누나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귓가에 울리더라고.

눈을 뜨니, 석고상 얼굴이 나를 보고 웃고 있더라고."


“나는 그때 초등학생이었는데,

너무 무서워서 이불 속에서 숨어서 울었어.

부모님을 부르려고 소리를 내려고 하는데

소리가 안 나오더라고.


그저 어둠 속으로 내 목소리가 사라지는 느낌이었어.

나는 우주 어딘가에서 이불을 쓰고 울고만 있는 거야.

그러다 용기를 내서 불을 켜고 석고상을 바닥에 내던졌어.

석고상이 유리컵이 깨지듯 와장창 깨졌지.


그 소리에 부모님이 내 방으로 왔어.

부모님은 깨진 석고상 말고 내 얼굴을 보고 놀라고 계셨어.

그 석고상을 깬 뒤로 얼굴이 이렇게 되어있더라고.”


그의 말에 나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죽는 날을 알고 있는 노인처럼.


“지금 한 말 진짜야?” 나는 물어보았다.

“믿거나 말거나. 저기야 내가 말한 곳.”


어느새 우리는 식당 앞에 도착해 있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그곳을 가르켰다.

가정집 느낌의 순두부가게였다.


우리는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늘 그렇듯 그의 회색 얼굴을 올려다보았다가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고개를 숙였다.

우리는 구석 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그 학기가 끝나고 그는,

입대 이유로 학교를 휴학했다.

나도 이듬해 휴학을 하고 군대에 갔다.


2년뒤, 복학을 했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졸업을 할 때까지도 그는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다.

학교생활 도중 그가 종종 생각났지만, 연락은 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어디선가

단단한 시멘트 같은 마음을 안고

살아가고 있을 거라고.

그저 그렇게만 상상뿐이었다.



- 매주 월, 목요일 저녁 8:30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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