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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규 Jul 01. 2024

[45일째][7월1일] 서울국제도서전을 가보고 2편

들어서자마자 바로 든 생각은 '참 환하고 넓다'였다. 이게 오픈런 하는 기분인가. 이제 곧 있으면 이곳은 사람 하나 지나가기 힘들 정도로 통로가 꽉꽉 들어찰 것이다. 나는 최대한 빠르게 움직였다. 민음사, 창비, 다산북스 같은 주요 출판사 부스에는 벌써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계산하려는 사람, 책을 펼쳐보는 사람, 지나가는 사람이 모두 뒤엉켜서 움직이기 쉽지 않았다.


대부분 온라인서점처럼 정가의 10퍼센트 할인을 하고 있었다. (도서정가제 때문에 할인을 더 할 수가 없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 서울국제도서전 특전으로 현장 구매 시 책갈피 같은 사은품을 끼워주거나, 출판사 로고가 박힌 티셔츠나 에코백 같은 한정 상품도 판매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작가를 초빙해 북토크를 하거나, 사인회도 같이 여는 곳도 있었다. 이제 출판사는 좋은 책만 파는 게 아니라, 그 책을 활용한 콘텐츠로 승부를 봐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기억에 남았던 부스가 몇 개 있었다. 단편 소설집 시리즈를 출간하는 안전가옥 부스는 어마어마한 독자들을 몰고 다녔다. 이 출판사의 책이 독특한 개성이 있어서 관심을 두고는 있었는데, 이렇게나 많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직원들의 호객 행위가 정말 남달랐다. 애플 스토어 마냥 "10권 사신 독자분이십니다!"라고 전 직원들이 축하를 하거나, 사은품으로 포스터 증정하는데 얼마 안 남았다고 소리를 지르는데, 직원들의 에너지가 대단했다.


그다음으로는 토스 부스였다.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의 그 토스가 맞다. 최근 토스가 낸 경제 실용서 <머니북>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는데 그것을 홍보, 활용한 특이한 부스였다. 독자가 직접 <머니북>에 나오는 항목을 선택한 후, 책의 실린 내용과 격언 등을 조합해서 자기만의 머니북을 만들고, 그것을 소장하게 하는 부스였다. 마치 마트에서 장을 보듯이 책의 내용을 수집하게 하는 과정을 통해서 <머니북>에 흥미를 갖게 하는 장치를 여럿 심고, 결과적으로는 <머니북> 구매까지 이어지게도 했다. 상당히 창의적인 발상과 기획력이었다.


마지막으로 독립출판물, 아트북이 모여있는 '책 마을'이었다. 작년만 해도 규모가 그리 크진 않았는데, 올해는 상당히 많은 구역을 할당받은 것 같았다. 이쪽 행사로는 언리미티드 에디션, 퍼블리셔스 테이블이 대표적인데, 그것의 미니 버전이라고 할만할 정도였다. 앞에서 봤던 대부분의 기성출판사보다도 훨씬 열정적이고 진지한 모습의 창작자와 독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지나다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작년까지는 책 마을이 서울국제도서전의 하위 브랜드였다면, 이제는 거의 대등한 위치까지 올라간 것처럼 보인다. 지금 젊은 독자들은 기성출판물 보다는 독립출판물과 아트북에 훨씬 더 매력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아침부터 분주히 돌아다녔더니 다리가 아팠다. 아침까지 비가 많이 내려 아침에 비 맞을까 봐 샌들을 신고 다녔더니, 그게 더 발에 무리를 가게 한 것이다. 책 마을까지 둘러 보고 거의 기진맥진한 상태로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며 한참을 쉬었다. 점심때가 다가오자,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오후에는 더 많아질 것이다. 역시 일찍 오길 잘한 것 같다.


몇몇 부스를 더 둘러 보고 점심을 먹으러 밖으로 나왔다. 책은 한 권도 사지 않았다. 하나 사면 멈출 수 없을 것 같아서 아예 손도 대지 않았다. 집에 읽을 것들이 쌓여서 먼지에 뒹굴고 있는 판이라 조절해야 한다. 어차피 시중에 깔릴 책들이다. 나조차도 이렇게 책을 안 사는데, 과연 남들에게 읽히고, 사게끔 하는 책을 만들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언제나 그랬지만) 출판 산업이 줄곧 하향세라고 하는데 그건 틀린 이야기였다. 지금껏 출판사들은 순전히 자기들만 좋아하는 책을 내고 있어서 안 팔리는 것이었다. 요즘 사람들이 읽고 싶고, 갖고 싶고, 사고 싶게 하는 책을 만들었어야 했다. 여기 출판사들은 지금 그러고 있었다. 그럼 나는 앞으로 책 가지고 먹고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이 깊어진다.


- 200자 원고지: 10.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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