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호 Jan 20. 2019

뿌리로 꽃피우는 나무

.
뿌리로 꽃피우는 나무
虛墟 박 호


나무의 꿈은 꽃이다
사람의 꿈이 사랑인 것처럼
고목의 꽃을 못 본 것은
겉으로 곁가지만 바라보았기 때문이지
뿌리로 꽃을 피우는 나무도 있다
꽃은 꽃가지에만 핀다고 믿는 것은
나무의 뿌리를 눈여겨본 적이 없어서
그 상처를 모르는 까닭이지
상처도 치유될 때에는 꽃처럼 피어나고
빛 들면 꽃이 된다는 것을


엄동에 부르터서 시린 옆구리
해묵은 뿌리의 상처 때문에
봄과 여름 사이 그 어느 즈음에
나뭇가지는 꽃 피우는 일을 멈추었지
바람 탓이었다
지난겨울 스산한 바람이
갈라진 몸통 그 틈새로
뻥 뚫린 바람길 따라 아래로
속 깊은 뿌리로 스며든 까닭이다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세상에는
변하는 것은 꽃이 아니다
잠시 피었다 지는 꽃이라도
슬퍼하지 않는다
세월에 묻히고 잊어져서
꽃처럼 아름다운 화석이 된 그 꽃의 밀알
나무가 뿌리에 숨겨둔 비밀을
아직은 말할 수 없어도
먼 훗날 그때는 말하리라 이것은
뿌리로 꽃피우는 나무의 꿈이었노라고.


2019 <겨울 없는 봄은 없다> 중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옹달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