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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Dec 06. 2023

책방에서 낮잠을



새벽 5시 45분. 핸드폰 알람이 울린다. 눈을 뜨고 잠을 깨려고 일단 인스타그램에 접속한다. 잠시 그렇게 누워 있다 슬슬 일어나 아침을 준비한다. 미역국을 데우고 연근 조림과 김치를 꺼내고 계란 프라이도 하나 뚝딱. 그리고 건너편에 앉은 딸에게 이것저것 묻는다. 오늘은 시험이 있는지, 있으면 무슨 과목인지, 학교가 끝나면 재깍 올 건지, 아니면 다른 일정이 있는지. 식탁을 치우고 소파에 앉아 한숨 돌리고 있으면 새벽을 가르는 스쿨버스 소리가 들린다. 새벽부터 단지를 종횡하는 스쿨버스가 한두 대가 아닌데 멀리서 오는 소리만 들어도 아이가 탈 버스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그렇게 해도 뜨기 전에 아이가 집을 나서면 주섬주섬 운동복으로 갈아입는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핑크색 러닝 양말을 신고 무릎 양쪽에 보호대까지 단단히 두른 다음 운동화를 신는다. 예전에는 바로 용수철처럼 내달리곤 했는데 이제는 정성 들여 준비 운동을 한다. 팔다리를 흔들며 매일 바뀌는 구름도 감상한다. 어제는 분홍색 구름이 넓게 펴져 있었는데 오늘은 진한 회색 구름이 두텁다. 요즘은 우기라 해가 뜬 후에도 청명한 하늘은 꼭꼭 숨어 있는 편이다. 그래서 조금 더 오래 달릴 수 있기도 하고. 건기에는 일단 해가 떴다 하면 선크림 바르지 않은 얼굴을 땅으로 처박고 집으로 돌아오기 바쁘다. 몸 상태에 따라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보통 한 시간을 채운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때부터는 매일 조금씩 다르지만 또 비슷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설거지와 빨래 같은 것들. 운 좋게 할 일이 별로 없으면 동네 카페에서 브런치로 아침을 시작한다. 그런 아침이면 배도 든든하고 기분도 좋다.


그리고 마침내 책방으로 출근한다. 아침의 일기를 쓰거나 할 일을 정리하거나 책을 읽고 있으면 손님들이 하나둘 도착하고 가라앉아 있던 책방도 기지개를 켠다. 짧은 인사와 수다, 각자 책을 읽는 고요한 몰입, 그리고 다음을 기약하는 반가운 안녕이 차례로 지난다.


오후 3시. 책방을 닫는다. 손님들이 사용한 머그컵을 씻고 쓰레기통을 비우고 엉뚱한 자리에 꽂힌 책은 제 자리를 찾아주고 하루 종일 틀어놓았던  ‘잔잔한 인디 음악 모음’도 꺼버리고 나면 다시 온다.  


고요한 시간이. 


책방에서 가장 편한 의자에 앉는다. 등이 45도 정도로 기울고 목까지 완전히 기댈 수 있는 그 의자에 앉으면 창밖으로 우뚝 서 있는 아파트가 절반 정도 보이고 나머지는 새파란, 혹은 우중중한 하늘이다. 하늘을 보며 가만히 있다 보면 또 온다. 


잠이. 


나는 새벽에 일어났으니까, 그리고 일어나 운동까지 했으니까. 그렇게 문득 찾아오는 잠을 반갑게 맞는다. 스르르 눈을 감는다. 얼마나 지났을까. 뒤통수에서 들려오는 까톡 소리에 화들짝 깬다. 보나 마나 아주 조금. 짧지만 달콤한 낮잠이었다. 그렇다고 바로 몸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그대로 눈을 감고 있거나 하늘을 구경하다 보면 다시 말랑말랑 잠에 빠져드는데, 또다시 들려오는 ‘까톡!’


무음으로 해놓지 않은 나를 원망하며 ‘까톡!’의 간격으로 발신자를 유추해 본다. 하나만 오고 멈췄다면 유추가 힘들다. 몇 개가 짧은 간격으로 연속 울렸다면 학교에 간 딸이 뭔가 할 말이 있는 건지도 모른다. 연달아 오지만 까톡의 간격이 조금 길다면 아마 오늘치의 무언가를 인증하는 단톡방의 알림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또 잠에 빠질락 말락 하다가 한 번 더 울리는 까톡에 마침내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킨다. 


짧았던 낮잠 덕분에 그래도 개운하다. 그리고 괜히 뿌듯하다. 잠깐 자고 일어난 게 그렇게 뿌듯한 일인가 싶지만 사실 뿌듯한 건 낮잠이 아니라 내 책방인지도 모른다. 손님들이 북적하면 북적한 대로, 아무도 없이 고요하면 고요한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내 예쁜 책방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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