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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시인의 사회>의 진짜 의미

지금의 삶이 견습 기간일 뿐이라면

<Dead Poets Society>를 옮긴 <죽은 시인의 사회>는 대표적인 오역의 예로 알려져 있다. 이 경우에 Society는 사회가 아니라 모임, 클럽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하지만 '고시(인) 동호회', '죽은 시(인)를 읽는(연구하는) 모임' 정도로 해석해도 어딘가 미진한 느낌이다. 영화에서는 구체적인 의미를 정확히 언급하지 않은 채 모임의 활동을 묘사하는 정도로 지나가는 데 반해 소설에서는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오해와 달리 <죽은 시인의 사회>는 오리지널 스크립트로 제작된 영화이고 영화의 성공 이후에 소설화되었다.)


"What did the name mean?" Neil asked. "Did you only read dead poets?"
"All poetry was acceptable, Mr. Perry. The name simply referred to the fact that, to join the organization, you had to be dead."
"What?" the boys said in chorus.
"The living were simply pledges. Full membership required a lifetime of apprenticeship. Alas, even I’m still a lowly initiate." he explained.
(Tom Schulman, <Dead Poets Society>)


Dead Poets Society라는 명칭은 모임의 회원들이 죽은 시인의 시를 읽었기 때문이 아니다. 모임이 가리키는 'Dead Poets'는 읽어야 할 대상으로서의 객체가 아니라 시를 짓는 주체로서의 표현이다. 즉, 회원인 그들 자신이 (죽은) 시인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 것이다. 이에 따르면 '죽은 시인들의 모임'이 의미상 맞는 번역이다. 그리고 죽은 뒤에서야 모임의 정회원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살아 있는 평생은 준회원(lowly initiate)으로서 각자의 시를 써 내려가야 하는 견습 기간(life time of apprenticeship)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생의 다음을 통해서야 정회원이 된다는 모임의 정신은 열정적으로 삶을 살고 그 뒤에 마주할 죽음을 명예롭게 받아들이자는 뜻 같다. 사실 어렸을 때는 닐의 죽음이 슬프지만 고결해서 로맨틱한 면이 있으며, 끝내 찾거나 지키지 못한 열정에 대한 확신이 아름다워 보이기도 했다. 나는 죽음으로 이상을 지켜내는 것에 쉽게 매혹당하곤 한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그밖에, 세계가 3차원으로 되어 있는가 어떤가, 이성의 범주가 아홉 가지인가 열두 가지인가 하는 문제는 그다음의 일이다. 그런 것은 장난이다. 그보다 먼저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알베르 카뮈, <시지프의 신화>, 김화영 옮김, 책세상)


카뮈의 글을 빌어, 나 자신에게 질문해본다. 왜 사는가. 뜨겁게 살지 못할 바에는 죽음이 더 좋은 선택이 아닌가. 그렇기에 닐의 죽음을 안타까워하지만 한편 동경하는 것 아닌가. 삶이 시가 되지 못한다면, 그 삶의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 키팅 선생의 가르침과 영화의 메시지를 곱씹으며 삶에 대해 던지는 의문이 그렇다.



에단 호크가 GQ style Germany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열여덟 살 때 <죽은 시인의 사회>를 찍었는데, 이 영화의 의미는 명확하다.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라. 하지만 그것을 위해 목숨을 버리면 안 된다.'

아주 어른스러운 말이라고 생각했다. 가능한 방식으로 살아보자. 살아서 내가 쓸 수 있는 시를 찾아보자. 그것이 꼭 직업일 필요는 없다. 나는 내 직업이 곧 나라는 잘못된 가정에 자주 좌절한다. 그건 사실이 아닐 것인데도….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의사, 법률가, 회사원이 되어야겠지만 삶을 '살아보기 위해서' 시인의 예민한 눈을 놓지 말아야 한다. 지금의 삶이 견습 기간일 뿐이니 가만히 정회윈의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렇기에 정회원이 되기 위해 더 성실히 견습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Dead Poets Society"라는 이름의 진짜 의미는 이별과 상처, 심지어는 죽음 다음에도 책상 위에 올라가서 살아보자는 영화의 메시지와 같다는 것을 그제야 깨닫는다.




<죽은 시인의 사회 Dead Poets Society>(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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