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기물개 Mar 05. 2024

02. 강아지는 처음이라

룽지 알아가기

 새끼 강아지를 처음 본 건 아니었지만 새끼 강아지를 내가 직접 키우는 건 처음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것저것 알아가며 애를 키워야 했다. 다행인 건 룽지를 만난 시점이 내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시간이 많은 시기였다는 점. 짬짬이 강아지에 대해 알아가면서 하루의 대부분을 놀아주고 먹여주고 재워주며 지냈었다. 룽지랑 같이 산 지 2년 정도 되어가는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룽지를 처음 만난 2022년 4월은 기쁨이 가득했던 순간이었다. 

 어린 녀석이 갑자기 새로운 환경에서 지내느라 무서웠을 텐데도 처음 데리고 들어왔던 날부터 나를 좋아해 주는 게 느껴졌다. 첫날밤에 새집을 탐색하느라 폴짝폴짝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도 내가 부르면 부리나케 달려오던 모습이 신기해서 영상으로 찍어두기도 했다. 생판 처음 보는 나를 몇 시간 만에 가깝게 여긴다는 게 신기해서. 심지어 그땐 룽지라는 이름도 없었던 시절이라 그냥 손짓으로 불렀는데도 달려왔었다. 

 룽지는 우리 집에 적응을 꽤 잘했었다. 대견한 녀석. 처음 만난 나랑도 반나절만에 친해졌을뿐더러 배변도 이틀 만에 끝났고, 사료도 잘 먹었고, 폴짝폴짝 뛰어다니면서 잘 놀았고. 장난감으로도 잘 놀았지만 특히 내 손가락을 물면서 노는 걸 제일 좋아했다. 룽지 입장에선 말랑말랑한 것들이 꼬물꼬물 움직이니까 제일 재미있는 장난감이었나 보다. 


 룽지를 만난 지 3주쯤 되었을 무렵 고맙게도 여자친구가 육아를 도와주러 며칠간 우리 집에서 지냈었는데, 룽지가 초반에는 경계를 하나 싶더니 얼마 되지도 않아 둘 사이는 거리낌 없는 놀이친구가 되어 있었다.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란 걸 어떻게 알았을까? 어느 순간부터 마음을 열어준 걸까? 

 할머니를 만날 때면 꼬리를 엄청 흔들면서 바닥에 납작 엎드리는 게 무서워하는 건지 좋아하는 건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할머니가 안으려고 다가가면 엎드린 상태로 오줌을 지리곤 했다. 다 큰 지금은 할머니를 만나도 더 이상 오줌을 지리진 않지만 흥분하며 피하려고 하는 걸 보면 어린 시절의 룽지는 할머니가 많이 무서웠던 것 같다.

 룽지뿐만 아니라 그동안 만났던 강아지들을 떠올려 보면 그들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는 것 같다. 처음 만난 강아지들은 대부분 나를 좋아해 줬는데, 그들이 먼저 내 냄새를 충분히 맡고 나랑 친해질 의향이 보이면 그때부터 조금씩 다가가서 그랬던 게 아닐까. 룽지가 할머니와 여자친구를 대하는 태도의 차이도 거기에서 생겼으리라.


멍 때리는 걸 좋아하던 룽지


 룽지는 앉는 자세도 신기했다. 멍 때리기 대회라도 나온 빙구처럼 엉덩이를 깔고 앉아 있었다. 뭔가 어설픈 강아지 인형 같아 보이기도 하고. 내 머릿속에 그려지는 강아지들이 앉아 있는 일반적인 모습은 엉덩이를 깔고 앉는다기보단 뒷다리로 몸을 받치고 앉아 있는 느낌이었는데 영 딴판이었다. 한편으론 뼈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했었다.

 하지만 크게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이시절의 룽지는 신나서 뛰어다니는 모습이 뒤뚱뒤뚱거리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어렸기 때문이다. 아직 걸음마도 완벽하게 떼지 못해서 몇 번은 토끼처럼 뛰어다니다가 자기 혼자 고꾸라지기도 했다. 그런 모습들이 얼마나 귀여웠던지. 

 잘 때도 아기처럼 내 옆에 꼭 붙어서 자곤 했다. 내가 앉아 있으면 다리 위에 올라와서 자고 내가 누워 있으면 내 몸에 기대어 자거나 얼굴만 내 몸에 올려놓고 자는 식이었다. 물론 항상 나한테 붙어서 자기만 한 건 아니고 소파나 바닥에 혼자 퍼질러 자기도 했다. 

 애기가 잘 땐 분홍빛 발바닥을 요리조리 들여다보곤 했다. 선명한 분홍색에 촉감은 꼭 젤리처럼 말랑탱탱한 게 만지고 싶은 욕구를 계속 자극했다. 그러다 몰래 만지기라도 하면 기분이 어찌나 몽글몽글 해지던지. 

 사실 자는 모습은 언제 봐도 귀엽긴 했지만 가장 귀여운 모먼트를 꼽으라면 내가 샤워를 하러 갔을 때가 아닐까 싶다. 내가 샤워를 하고 나오면 룽지는 항상 내가 벗어놓고 간 옷들 위에서 자고 있었다. 내가 없는 동안 내 체취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라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

 내가 밥을 먹을 때면 소파에 푹 엎드려서 나를 빤히 쳐다보던 모습도 기억이 난다. 마치 '나도 맛있는 거 먹고 싶다'하는 듯한 눈빛으로. 가끔 할머니가 군고구마를 주시면 룽지한테도 조금씩 줬었는데 어찌나 잘 먹던지. 어릴 때부터 고구마의 맛을 알아버려서일까. 룽지는 여전히 고구마를 제일 좋아한다. 심지어 '고구마'라는 말을 알아듣는다. 우리 똑똑이.


가방에 담겨 병원에 가는 룽지 / 동물병원에서 받은 수첩


 룽지랑 같이 살게 되고 한동안은 예방접종을 맞아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었다. 이전까지 같이 살았던 강아지들은 예방접종을 맞지 않았음에도 건강하게 잘 살았었기 때문에 애한테 괜한 고통과 공포만 주는 게 아닌가 싶었다. 며칠간 여자친구랑 이래저래 얘기도 해보고 검색도 이래저래 하다가 어차피 반려동물등록도 해야 하니까 예방접종을 시작하러 동물병원에 방문했다. 

 룽지의 이름, 나이, 견종, 그리고 보호자의 이름, 연락처, 주소 같은 것들을 등록해야 했다. 그런데 난 룽지의 나이를 몰랐다. 사실 아는 게 전혀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내가 데리고 온 애도 아닐뿐더러, 룽지를 우리 집으로 데려온 할머니조차 몰랐으니까. 그래도 혹시 수의사님이라면 이빨의 상태나 이런 것들로 어느 정도 유추가 되지 않을까 싶어 여쭤봤는데 음낭이 아직 형성 중이라 2개월에서 3개월 정도 된 것 같다고 하셨다. 아하 생식기의 발달단계로 나이를 유추하시는구나. 어쨌거나 갑자기 -짠- 하고 나타난 아이라 아는 게 하나도 없었는데 처음으로 룽지에 대해 알게 되어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견종도 참 동물병원에 가기 전까지 알쏭달쏭한 부분이었다. 전체적으로 뚱뚱해 보이는데 특히 엉덩이가 도드라지게 도톰한 게 코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어느 날은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견종을 알려주는 그런 걸 해봤었는데 거기서는 바센지라는 생판 처음 들어보는 견종이 나오기도 했다. 근데 웬걸, 거기서 알려주는 바센지의 특징이 룽지랑 꽤 맞아떨어졌었다. 털은 갈색인데 발에서부터 배와 목 아래쪽으로는 흰색인 게 딱 룽지였고, 무엇보다 꼬리가 돌돌 말려 있는 게 '얘 진짜 바센지 맞나 봐' 싶은 포인트였다. 아직은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워서 일단은 믹스견으로 등록은 했지만 속으론 바센지에 가까울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인식표라는 것도 해야 하는데 룽지의 몸속에 칩으로 심느냐 아니면 목줄에 달고 다니는 이름표 같은 걸로 하느냐 둘 중에 골라야 했다. 사실 동물병원에 가기 전까진 몸속에 칩을 심는다는 게 애한테 못할 짓을 하는 것 같아서 외장인식표로 굳어있었지만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에 내장인식칩으로 마음이 휙 기울었다. 혹시라도 룽지를 잃어버리게 됐을 경우를 상상해 보니 그렇게 하는 편이 더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무슨 약도 먹고 주사도 맞았는데 애가 주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맞는 게 너무 신기했다. 깽깽거리면서 발버둥 치다가 주삿바늘에 다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했었는데 바늘이 들어가도 그냥 가만히 있더라. 괜히 나만 호들갑이었다.  

 그리고 그날 집에 돌아와서였는지 아니면 다음날이었는지 룽지의 대변에 '애기 몸에서 어떻게 이런 게 나왔지' 싶을 정도로 큰 콩나물 같은 게 있었다... 할머니한테 말씀드렸더니 회충이라 그러셨다. 검색해 보니 기생충이었다. 룽지가 시골에서 나고 자라서 감염이 된 상태로 왔던 것 같다. 별일은 아니었는데 강아지 육아가 처음인 내겐 그 비주얼이 가히 충격적이었다. 정말로 큰 콩나물이 애기 대변에...

 그것 말고는 첫 접종 이후 애기의 컨디션도 평소랑 다를 것 없이 정상이었다. 그래도 조금은 애가 힘이 빠지지 않으려나 싶었는데 주사 맞은 당일에도 그다음 날에도 잘만 뛰어놀더라. 그렇게 무사히 첫 접종이 끝났고, 나는 정식으로 룽지의 보호자가 됐다. 앞으로 룽지와의 생활에 한 발짝 내디딘 뜻깊은 순간이었다. 










빨래더미에 코박고 자는 룽지 / 배변패드에 응가하는 룽지
그냥 귀여워서 넣은 애기룽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