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B의 주간 여행 #2
첫 번째 주간 여행을 작성해 놓고 마무리 못하고 있다고 그냥 발행해 버렸다.
이번 주간 여행은 꼭 너무 고민하지 말고 작성하고 발행한 글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지금 맡고 있는 TPM 이란 역할은 참으로 모호하다. 권한은 없으나 책임이 있는 역할이다. 성과가 나더라도 그것은 나의 것이 될 수 없다. 나를 빛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빛나게 하는 일이다. 물론 다른 TPM의 경우는 다를 수 있다. 푸념은 일단 여기까지만 하도록 한다.
경력은 오래되었으나 언제나 새로운 일을 맡게 된다. 일의 연속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매번 다른 프로젝트를 지원하게 된다. 그래서 처음 새롭게 프로젝트를 맡게 되면 새로운 지식을 익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어떤 일을 해도 처음의 이 순간은 많은 노력을 요구한다. 어린 시절에는 이 순간의 매력에 빠져서 일을 즐기곤 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점점 많은 것을 알아갈수록 시작이라는 괴로움에 쉽게 지쳐가곤 한다.
시작이라는 괴로움은 두 가지로 다가온다. 첫 번째는 시작이라는 것을 점점 감당해내지 못하는 나 자신이다.
새로운 것을 익히기 위해서는 과거의 것을 버려야 한다. 꽉 찬 그릇에 무언가를 담을 수는 없다. 어느 정도 비워야 또 새로운 것이 들어간다. 그런데 이 마저 습관이 되어버리면 기억력의 유효기간은 점점 짧아진다. 그리고 내가 가진 것을 가지고 좀 더 편히 살아갈 수 있는데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왜 이 일을 택했는지도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생각이 나를 갉아먹으려곤 한다. 그래서 이런 생각도 쉽게 사라질 나의 기억 속에 넣어 버리곤 쉽게 잊어버린다.
두 번째로는 사람들이다. 어릴 적에는 나의 에너지로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을 좋아했다. 충분히 해낼 것이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때는 그랬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하여 이해가 가고 더 많이 알게 되면서 두려움이 생겼다. 상대가 어떤 의도로 나에게 다가오는지 모른 채 나는 무방비해지는 순간이 많았다. 나의 모든 것이 노출되어 있는 것에 반해 상대는 철저히 자신을 가린 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에게 접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접근하는 이들에게 이용당하고 농락당하고 베이고 얻어 맞고 그을리기도 하곤 했다. 그래서 더 두려워졌다. 그러나 어느 순간 무뎌져 버렸다. 죽으라는 법은 없으니. 그래도 개와 늑대의 시간일지라도 늑대가 다가오는 일은 많지 않다. 하지만 개도 때로는 나를 물때가 있는 법이다.
예전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으면 일에만 몰두하곤 했다. 그럼에도 일을 다 파악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시간을 많이 쓰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일에 몰두하지 못하게 되었다. 아니 몰두하지 않는다가 맞을 것이다. 그렇게 된 것은 연륜이 생겨서 빠르고 효율적으로 일하는 것도 있고 쓸데없는 일들을 쉽게 구분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살짝 미루기를 하기도 한다. 시간을 미루거나 다른 사람에게 미루거나.
이번 주에는 올해 마무리를 하는 행사가 있었다. 기년회라고 올해는 기념하기 위한 회고와 내년의 계획을 논하는 시간을 갖었다. 아직 12월 중순인데 벌써 시작한 이유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연말연초에는 휴가가 많기 때문이다.
COVID19으로 인해 지난 3년이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잘 모르겠지만 올해는 유난히 기억할 만한 일들이 적어진 느낌이었다.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했고 이사 온 곳에서 산책과 운동을 즐긴 기억밖에 없는 듯했다. 일에서 얻은 보람이나 좋은 기억은 별로 없다. 어떻게 보면 가장 휴가를 많이 사용해서 쉬는 날이 많았던 해이기도 하다. 어느 해보다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대단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아니 힘든 순간이 있었지만 잊어버렸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회고에 대한 기법은 너무 많이 존재한다. 나만의 회고 루틴(?)이 있기는 하다. 첫 번째로는 그동안 찍어놓은 사진을 살펴보는 것이다. 생생한 기록들이 잔뜩이다. 이 루틴 때문에 일상에서 기록 사진을 많이 찍는 습관이 생겼는데 그럼에도 사진은 부족해 보인다.
사진으로 한 해 기억이 떠올랐다면 여기저기 작성한 나의 글들은 본다. Social Media 뿐만 아니라 메모장이나 일기장도 찾아본다. 사진에서 느끼지 못한 나의 생각과 감정들을 살펴본다. 이제는 이렇게 주간 여행에 대한 기록을 쓸 테니 내년 말에는 글들을 쭈욱 살펴볼 것이다.
어떤 일을 했는지도 살펴본다. 업무 기록에 대한 것들도 있지만 나는 일정표를 살펴보는 것을 좋아한다. 무슨 회의를 했고 무슨 약속을 했는지 살펴본다. 1년 동안의 나의 노력에 대하여 살펴본다.
이렇게 살펴보다 보면 키워드들을 잔뜩 모을 수 있다. 발견될 때마다 포스트에 키워드를 적어 놓고 시간의 흐름 순으로 붙여둔다. 그렇게 적어 놓은 것들을 보면 많은 감정들이 떠오른다. 그렇게 떠오르는 감정들을 느끼고 보내준다. 그렇게 회고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년 계획을 잡아 본다. 올 한 해 했던 것들에 대하여 살펴보다 보면 완성하지 못한 것과 하고 싶은 것들이 발견된다. 그리고 그것들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들로 만들어 기록하고 입으로 뱉는다. 그래야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년의 큰 계획은 그만 동굴에서 나와 활동하는 것이다. 어떤 목적을 갖고 활동하기보다 그냥 사람들을 많이 만나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나의 생각들을 조금 더 발산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세상에는 많은 똑똑한 사람들이 있고 존경받을 만한 성과를 낸 사람들이 많아서 그쪽 영역은 나의 영역은 아닌 듯하다. 나는 그저 소소한 나의 생각과 경험들을 이야기하면서 시작하는 사람들과 교류를 하고 싶다. 그들로부터 에너지를 받고 싶은 것이다.
올해는 곧 마무리가 될 것이다. 끝이 아니라 마무리. 또 한 타임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다. 시작이 괴롭다고 글을 써놨지만 한 해의 시작은 괴로움은 거의 없고 기대감과 즐거움 그리고 벅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