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때 국어과 언어치료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 학생이었던 나와 달리 이미 언어치료사로 일하고 있는 친구가 있었다. 그게 바로, S.
그때 S의 직장에 방문해 언어치료 센터에서는 어떤 일을 하는지 견학했다. 그곳에서 S는 특유의 밝은 성격과 따뜻한 시선으로 아이들의 재활 활동을 돕고 있었다. 약 8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곳에서 여전히 아이들의 안내자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언어치료사로 일하고 있죠?
옛날에는 ‘언어치료사’였는데, 국가고시가 되면서 정식 명칭이 ‘언어재활사’가 되었어요. 언어재활사는 말을 잘 못하는 사람들에게 언어를 가르치는 일을 해요. 아이부터 성인까지 다양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있어요. 제가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리를 못 듣는 고도난청인 분들이에요. 이분들은 보청기를 끼거나 귀가 잘 들릴 수 있게 인공와우수술을 받는데, 수술은 태어날 때부터 소리를 못 듣는 아이들이 주로 받아요. 수술한 아이들은 그전부터 재활 과정을 밟아야 하거든요. 인공와우수술을 하면 한 달 있다가 ‘맵핑(인공와우이식기의 조율)’이란 것을 해요. 수술하고 상처가 아물고 나서야 소리가 들리거든요. 그때 갑자기 소리를 들으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등을 수술 받은 아이와 부모한테 알려주는 일을 하는 거예요.
인공와우수술, 맵핑에 대해 자세히 어떤 건가요?
소리가 잘 들리게 하는 방법에는 보청기를 착용하는 법과 인공와우수술이 있어요. 보청기는 귀에 기기를 착용하여 소리를 증폭시켜 주는 거고, 인공와우수술은 귀 뒷 부분을 째어 내부 기계를 심고, 전극(전기선)을 와우(달팽이관)에 넣어 소리를 전달하는 거예요. 와우에 넣는 전극이 두 바퀴 반 길이인데, 한 바퀴 반을 넣어요. 소리가 들리면 정기적인 신호로 바꿔서 내부 기계에 쏘는데, 뇌에서는 이 전극이 주는 자극을 소리라고 인식해서 받아들이는 거예요. 요즘에는 일체형도 나와서 하나만 자석 붙이듯이 붙이는 것도 있어요. 맵핑은 이 장치를 켜고 각 개인마다 소리를 찾아주는 프로그램을 조절하는 거예요. 소리를 스위치 온(switch-on)해서 오면 소리를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치고, 가이드 라인을 제시해주죠. 아이들이 소리를 감지하고, 있는지 없는지 먼저 알려주고, 짧은 소리인지, 긴 소리인지, 큰 소린지 작은 소리인지 알려줘요.
인공와우수술은 전기 신호라서 일반 소리와 다르기 때문에 아이가 처음 들을 때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어요. 옆에서 얼마나 부모님이 잘 돕는지가 중요해요. 그래서 부모님도 같이 수업을 받죠. 보청기를 착용해야 하는 분들한테도 피팅(조율)을 하는데, 그 분들에게 맞는 소리를 찾아주는 일도 하고 있어요.
보청기와 인공와우수술을 결정하는 기준이 있나요?
인공와우수술에는 조건이 있어요. 고도난청이어야 하고, 청력이 어느 정도 이하여야 해요. 요즘에는 아이가 태어나면 바로 청력 테스트를 하게 되어서 그때 확인할 수 있어요. 보청기를 낄 수준이여도 끼다가 귀가 더 나빠지면 수술을 받을 수 있어요. 제가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인공와우수술이 귀 한 쪽만 의료보험이 되었는데, 요새는 두 쪽 모두 의료보험이 돼요. 다행이죠.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와 달라진 점이 또 있나요?
네, 언어치료가 국가고시가 되었다는 점이에요. 물리치료 쪽은 일찌감치 국가고시가 되었는데, 인지치료, 미술치료 쪽은 아직도 국가고시가 아니에요. 언어치료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러다 언어치료는 단일화된 학과, 단일화된 하나의 협회가 있어서 얼마 전에 국가고시가 되었어요.
이제 일한 지 10년차인가요?
아직 9년차이고, 내년 2월이 되면 딱 10년이 되네요. 어머, 세월이 이렇게...
10년도 금방이네요. 지금까지 했던 사람들 중에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나요?
많죠. 여섯 살부터 열네 살까지 8년 정도 같이 한 친구가 있는데, 거의 제가 일하던 초기부터 같이 일한 친구네요. 그리고 다른 친구들도 보통 평균 한 4년 정도를 같이 하는 것 같아요.
8년이나 치료를 받아야 하나요?
엄마들이 정말 많이 하는 질문이 “선생님 치료 언제까지 해야 해요?”예요. 그런데 언어라는 게 나이마다 목표가 있어요. 학령기, 중고등학교 시기에 맞는 언어 목표가 필요하니까요.
그리고 듣기는 훈련이에요. 일상생활에서 듣는 것은 물론이고, 중학교 학습과정에서 필요로 하는 언어 목표는 다르기 때문에 훈련이 필요해요. 어릴 때부터 인공와우수술을 한 환자들은 꾸준히 재활해야 하고, 익히고 배워야 해요.
아이들이 중학교에 들어가면 제가 언어재활사인지, 국어 선생님인지 모를 정도예요. 학교 시험을 볼 때 필요한 언어 목록을 업데이트를 시켜야 하니까요. 8년 동안 같이한 친구는 중간에 우리 센터에서 잠깐 다른 센터로 간 적이 있어요. 1년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8개월 정도 지나서 병원 진단을 받았더니, 평가가 1년 뒤로 낮게 나왔더래요. 그래서 다시 저희 센터로 돌아왔죠. 언어라는게 놓치지 않고 꾸준히 가르쳐야 하는 거라 그래요.
그럼 언제까지인지 대략적으로 말해주신다면요?
대략적인 수치로 말하자면 언어 검사를 했을 때, 자기 나이보다 평균 2년이 높게 나오면 어느 정도 좋아졌다고 말할 수 있어요.
이렇게 길고 체계적인 재활활동이 필요하군요. 학령기부터는 국어 선생님으로서 역할까지 해야 하네요. 그래서 국어과 전공 수업에도 있는 거였나봐요.
네, 언어의 전반적인 어휘, 구문, 상위 언어 기술들을 가르쳐요. 예를 들어 예측을 한다든지, 토론을 한다든지 등을 같이 말하는 거죠. 소리에 집중하게 해서, 능동적으로 듣고 말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켜줘요.
잘 못 들으면 사회성에 문제가 생기거든요. 학습도 마찬가지지만. 원칙은 이거예요. ‘수술을 한 아이들은 듣기를 통해서 언어 발달을 한다.’ 어떠한 수단이든 듣기가 우선이에요. 뇌라는 게 쓰면 쓸수록 가소성이 있잖아요. 청력이 약한 친구들은 시각적인 피질이 발달해요. 소리를 박탈당함으로써 눈으로 보는 게 빨라지고 시야가 넓어지죠. 시각피질이 뇌에 엄청 많이 차지하기 때문에, 청각피질을 발달시켜 주는 것도 목표예요. 입 모양을 자꾸 보면 시각으로 인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순수하게 듣기를 잘 할 수 있도록 돕는 거예요. 간혹 입 모양으로 말을 읽으려고 하는데, 소리에 집중하도록 일부러 입을 가리고 훈련해요.
입 모양을 가리고요?
학교생활이라는 게 시끄럽고 산만한 상황에서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들리지 않아요. 특히 우연듣기가 안 되죠. 우리는 옆에서 누가 얘기하면 우연히 들어서 우연히 인지할 수 능력이 있어요. 그런데 난청인 친구들은 그게 안 되죠. 스스로 단어나 말을 정의할 수 있게 이끌어야 해요. 듣기를 잘해도 쓰기가 잘 안 되는 친구들도 많거든요. 어투를 어색하게 문어체로 한다든지 아주 쉬운 조사를 빠트린다든지. 영어로 따지면 리스닝을 계속 시키고 프리토킹을 시키는 것처럼 하고 있어요.
소리뿐 아니라 한국어를 배우는 거네요.
그렇죠. 수술 후 재활을 돕는 과정을 거쳐 오래도록 언어를 가르치는 과정까지 하는 거예요. 중학교 수준에 맞는 어휘를 뽑아서 아는지 모르는지 확인시키고 스스로 정의하도록 해요. 모르면 뜻도 외우고 문장 만들기도 하죠. 센터에 일주일에 한 번씩 오니까 어머니한테 과제를 주어서 집에서 이야기, 구문 같은 것을 들을 수 있게 교육도 하죠.
성인들은 듣고 받아쓰기를 해요. 최소대립상, 비슷한 단어들 구분하는 것 등을 해요. 예를 들어 보리, 보림 등의 구분할 수 있는지 확인하죠. 지금 하고 있는 성인 분은 필담(글씨를 써서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을 잘하는데 이건 문장력이 좋다는 것으로 다른 대화를 할 때도 긍정적으로 반응해요.
일상생활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과 학습과정을 같이 하려면 꼭 필요한 과정이겠어요.
결국, 제가 하는 일은 각 개인에게 맞춰서 수술을 한 지 얼마나 되었는지에 따라 단계를 두고 치료, 재활, 교육하는 게 제가 하는 일이에요. 각 목표들이 어느 정도 도달되면, 뉴스 보기, 라디오 듣기를 하고, 안 되는 단어 등을 잡아서 가르쳐 주죠. 각 개인마다 언어 목표,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 일대일 과외처럼 집중해야 해야 해요.
그렇게 집중해야 하는 사람들은 몇 명이나 되요?
주마다 평균 수업이 35명 정도 돼요. 한 달 평균 100케이스 정도 접하면 많이 하는 거죠. 어떤 날은 주말에는 바쁘니까 9시부터 6시까지 화장실도 가기 힘들게 일할 때도 있어요. 밥도 못 먹고, 중간에 잠깐 빵 정도를 먹으면서 일할 때도 있어요.
시간이 없는 것도 어렵겠네요. 그 외에 힘든 점이 있나요?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건 그 사람이 듣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니까 얼마나 답답할 지 충분히 이해가 가요. 일할 때는 당연히 두 번, 세 번 말하는 것이 당연히 습관화 되었죠. 그런데, 친구나 가족이 반복해서 계속 물어보면 좀 버럭할 때가 있어요. (웃음) 그리고 뭔가를 물어보면 반복해서 확인시키고 가르치려고 해요.
또 ‘ㄹ’발음을 쉽게 발음하려고 ‘ㄴ’으로 할 때 민감해요. 예를 들어 주변 사람들이 ‘라면’을 ‘나면’이라고 발음하고, ‘래미안’을 ‘내미안’이라고 발음하면 꼭 다시 발음하게 해요. 잘못된 발음으로 강화되면 평소에도 잘못된 발음으로 습관처럼 뱉게 되거든요.
화가 나면 말이 버벅되면서 말 더듬 현상이 생기는데... 화가 나지 않아도 평소에 말을 더듬는 사람이 있잖아요. 말 더듬은 어떻게 치료해요?
그건 생각하는 것과 입으로 나오는 것이 일치하지 않을 때 일어나요. 누구나 화가 나면 그렇죠.
말더듬 같은 현상은 언어재활사도 다루는데 저는 말더듬 환자를 만나본 적이 없어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듣고 생각하고 말하는 프로그래밍화가 원활하지 않는 거예요. 평범한 사람들은 이러한 과정이 아주 빠르게 일어나지만, 기질적으로 한 곳에 문제가 생기면 유창하지 않을 수 있어요. 어릴 때 잠깐 말더듬는 과정이 있을 수도 있는데, 이때 잘 극복하지 못하면 비유창성이 발달해서 말더듬이 되는 거죠. 이때 억압하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 막히고 회피하고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면 극복하기 어려워져요.
저도 말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낄 때가 있는데, 특히 여러 사람들 앞에서 말할 때 어려움을 느껴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이 직업만 아니면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데 아직도 두려움을 느꼈을 거예요. 하지만 말은 하면 할수록 늘어요. 어떤 속도로, 어떤 단어로 눈을 마주치며 여러 번 반복하면 늘 거예요.
말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낄 때, 단어를 다른 단어로 대치해서 읽는다든지 같은 현상은 치료 받고 있는 친구들한테 쉽게 일어나는 현상이에요. 읽기는 읽는데 내용 파악이 안 되는 거죠. 그때 그 단어 뜻을 잘 설명해주고 다양한 예시를 제시해주면 대부분 이해하고 수정해요.
일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나요?
초보였던 시절에 있었던 일인데, 잠깐 이직을 생각하고 면접을 본 적이 있어요. 그때 면접 가서 울고 왔어요.
왜요?
면접 질문 중에 지금 한 질문과 비슷하게 ‘치료하면서 어떤 아이들이 인상적이었고, 기억에 남는 치료가 있냐?’라고 하는데, 그때 함께 치료하던 친구들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난 거예요. ‘지금 내가 집에서 회사 거리가 멀다고 맡고 있는 아이들을 책임지지 못하는데 어떻게 이직을 하겠다는 건가?’ 싶었어요. 그 회사에서 오라고 했지만, 가지 않았죠.
하시는 일 자체가 사람들에게 재활을 지원하는 일이라 많은 신뢰가 필요할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잘 따라와주면 보람될 것 같기도 하고요. 어떠세요?
보람되죠. 이끄는 사람으로서 따라와주는 사람이 성장할 때 희열을 느끼기도 하고요. 네다섯 살에 옹알이 수준으로 말하다가 그 이후에 대화가 될 때, 집에서도 못하는 말을 센터에 와서 해낼 때,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기뻐요. 대화가 되고 생각을 나눌 때 너무 행복해요. 이 과정이 재미있고, 보람되죠. 중고등학생들과 한 주 한 주 변화하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같이 견디면서 버티고, 이 친구들이 어쩔 땐 저를 위로해주는 말을 하거나 제 안부를 물어요. 그럴 때 정말 행복해요.
앞으로 언어재활사로서 어떻게 살고 싶으신가요?
한때, 동료한테 우리 직업은 없어져야 하는 직업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우리가 없어지면 그만큼 잘 듣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니까요. 그래도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기도 하니까 보람을 가지고 일하려고요. 작년까지는 10년 채우면 다른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봤는데, 할 수 있을 때까지는 해야겠다고 마음을 바꾸었어요.
인터뷰 날짜: 2017.3.13
장소: 왕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