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뜨거운 여름의 어느 날, 제주도로 도망치듯 또 떠났다.
[꼭 방문하고 싶었던 코코메아]
미트파이로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 잡는다는 코코메아에 왔다.
한적한 마을 안에 누군가 버리고 간듯한 낡은 주택 건물이다.
안으로 들어와보니 창문 하나 하나에 주인장의 감각이 묻어나 있다. 한국적인 문양의 창에 실로 짜여진 레이스 커튼이 함께 놓여 있는데 묘하게도 참 조화롭다. 그 옆에는, 오래전 사용하던 텔레비전이 소품으로 놓여있다.
벽에 칠해진 페인트마저 붓으로 그려놓은 듯하다. 무심한 듯 세심한 주인장의 성격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 같다. 주인장의 담백한 친절이 참 좋다.
말차코코아의 말차 마저 유리잔에 아름답게 자태를 뽐내고 있다.
파이는 파이. 고기는 고기. 내 머리속에선 도저히 조화를 이룰 수 없는 두 가지가 만나 하나의 먹거리가 된다니. 파이 중에서는 단연코 애플파이가 최고라는 나의 짧은 생각을 한방에 무너뜨릴 만한 강적을 만났다. 미트파이가 이토록 맛있다니. 역시 세상은 넓고 경험할 것은 많다고 했던가. 오늘은 미트파이 세계에 처음으로 입문한 기념적인 날이다.
[최고의 호르몬]
카페 페이보리오리에서 나와 다음 장소로 이동하려는데 제주할머니 한 분이 내 차로 와서 창문 너머 말을 건넸다. 여러 짚을 모았는데 그걸 이고 가기 위해서 업는데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도통 말길을 알아들을 수 없어서 네? 라고 자꾸 반문하였다. 나중에 뜻을 알아차리고서 바로 도와드릴 수 있었다.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그게 뭐라고 마지막에 할머니가 나에게 '고맙다이' 라고 말하셨다. '할머니, 조심히 가세요.' 라고 짤막하게 인사를 건넨 후 손에 흙이 묻어 더러워지자 카페 안으로 다시 들어가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나왔다. 분명 손은 더러워졌는데 내 기분은 표현하기 힘든 감정으로 벅차올랐다. 아주 잠깐이었고 도움이라 말하기 민망할 정도의 사소한 일이었는데 그 순간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구나 느끼게 되자 기쁨이 차올랐다. 그 짧은 찰나에 몸을 바삐 움직였을 뿐인데 뭐라고 그렇게 뿌듯했을까. 신비롭다. 남에게 조그마한 관심을 가졌더니 내 몸과 마음에 활기가 돌았다.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때마다 화두가 되는 단어들이 있는데 요즘은 도파민의 시대인가 보다. 스마트폰 중독에 이어 도파민 중독이 등장했다. 현대인들이 도파민을 찾아 헤맨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시시때때로 변하는 새로운 자극이 아니라 우리 존재의 기쁨일지도 모른다. 제주도 할머니의 고맙다는 말 한마디는 그 어떤 도파민보다 강력했다.
어쩌면, 우리가 찾는 것은 생각보다 더 가까이에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인간들은 서로 도우며 살아가도록 설계되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느꼈던 그 강력한 호르몬 작용을 더 많은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 귀한 것이 공짜더라.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이미 우리 안에 있다.
[숙소로 돌아오다]
숙소로 돌아와 휴대폰으로 요즘 화제인 이상한변호사우영우 드라마 영상을 보았다. 주인공의 보스였던 정명석변호사가 위암으로 병중에 있게 되니 그의 빈자리가 컸던 것은 작중 인물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었나보다. 드라마 속 가상 이야기임에도 정명석변호사의 소중함에 대해 잘 알고 있던 어느 한 시청자가 '좋은 사람의 그늘이 이래서 중요하다' 라는 댓글을 달았다. 좋은 사람의 그늘. 오래 곱씹게 되는 말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의 그늘이 되어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