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여름, 제가 직장 동료와 함께 점심을 먹었을 때의 일입니다. 식사를 마친 저는 길을 걸으며 그들과 함께 방금 전에 먹은 식당의 밑반찬들을 품평하다가, 길가에 피어 있던 보라색 꽃 몇 송이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습니다. 저는 동료에게 “우리가 방금 전에 먹다 남긴 반찬이 여기에 꽃을 피웠다”고 농담을 던졌습니다. 영문을 모른 채 저를 바라보던 그들은 제가 그 반찬의 이름을 들려주자 깜짝 놀라며 반문하더군요. “도라지가 이렇게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고?”.
도라지는 초롱꽃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원산지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북아시아 지역입니다. 도라지는 해마다 7~8월이면 보라색과 흰색의 꽃을 피우는데, 그 색과 자태의 아름다움은 여름에 피는 꽃들 중에서도 손꼽을 만 하죠. 보라색 꽃이 흰색 꽃보다 흔하지만, 재배종은 흰색 꽃을 피우는 경우가 많고, 분홍색 꽃을 피우는 원예종도 가끔 화단에서 눈에 띕니다.
여러분은 “10년 넘은 도라지가 산삼보다 낫다”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이 과장된 속설은 그만큼 도라지가 우리 몸에 좋다는 사실을 방증합니다. 산삼의 대표적인 약효 성분은 사포닌(Saponin)인데, 도라지에도 이 성분이 포함돼 있다고 하니 말입니다. 도라지는 염증을 가라앉히고 열을 내리는 효과를 가지고 있어, 한방에선 길경(桔梗)이라는 이름의 약재로 쓰입니다. 속설이 그저 허풍처럼 들리지 않는 이유입니다. 또한 다들 아시다시피 껍질을 벗기고 물에 불려서 쓴 맛을 제거한 도라지 뿌리는 양념장에 살짝 무쳐 먹으면 집 나간 입맛을 돋우기에 그만이죠. 참 쓰임새가 많은 기특한 식물입니다.
도라지라는 이름을 모르는 분들은 거의 없습니다. 도라지꽃도 화단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먹는 도라지 뿌리와 도라지꽃을 같은 식물로 연결시켜 생각하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저는 도라지의 토속적인 어감으로부터 단정하면서도 청초한 꽃모양이 잘 연상되지 않기 때문에 이 같은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봤습니다. 근거는 없으니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마시고요.
아무리 흔한 꽃이어도, 이름을 알고 만나는 꽃은 각별하게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지난 2009년 여름, 서울에서 고향인 대전까지 걸어서 여행을 했던 저는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 낭패를 본 일이 있습니다. 지쳐 쓰러질 것 같았던 제게 힘을 준 것은 도라지꽃이었습니다. 강렬한 햇살 아래에서 보라색 도라지꽃이 황홀하게 느껴지더군요. 흔한 것으로 여겼던 도라지꽃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던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도라지꽃을 몰랐다면 이 같은 감동도 느낄 수 없었을 겁니다.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것들을 기억에 새기는 작업은 꽤 의미가 있습니다. 그만큼 일상이 다채로워지니 말입니다. 여러분도 올 여름에 도라지 반찬을 먹을 때 도라지꽃을 떠올려보시죠. 일상에 다채로움을 더하는데 의미 있는 일이 될 겁니다.
도라지꽃을 만나는 방법 : 도시에서 도라지꽃이 보이는 장소는 잘 가꾼 화단입니다. 제 경험상 도라지는 저절로 싹의 틔우고 꽃을 피우는 들꽃과 달리 사람 손이 많이 타는 곳에서 주로 보이더군요. 특히 도라지꽃은 여름이면 주택가 텃밭에서 흔하게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