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을 고민하는 약대생을 위한 첨언
약사들의 진로는 대부분 약국/병원/제약회사/공직 정도를 꼽는다. 그 이외의 진로가 좀 있기는 하지만 그 비율이 다 합쳐도 1%가 되기 힘든 수준이라 항상 논외로 하니 그냥 넘어가는 편이다.
최근 약대생들 중 나이가 어린 축에 속하는 학생들은 제약회사 취업에 상당한 관심을 가진다. 그도 그럴 것이 졸업 후 약국을 개설하는 데에는 들어가는 비용이 상당히 크다. 그 때문에 상대적으로 비용 부담이 적은 제약회사로 눈을 돌린다. 특히 서울 소재 대학에 다니는 약대생들은 더더욱 그런 경향이 강한 사람이 많은 듯 하다.
잠깐! 삼성전자, LG전자 다니다가 그만두고
약대에 온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약사가 되기 위해 약학대학에 온 사람들 중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유수 기업들에 근무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제약회사와 비교해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종종 있는데, 이들이 회사를 그만두고 약대에 온 이유로 꼽는 가장 큰 이유는...
든든한 직장이 있으면 뭐해?
노후가 보장되지 않아!
언제 짤릴지 모르는 끄나풀 같은 존재야!
여러가지 이유로 차장, 부장 급이 되어버리면 언제 회사를 그만둬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어서 약대에 온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약사가 되면 적어도 정년은 없으니, 노후까지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는 듯 했다. (그렇게 하기에 기회 비용이 너무 큰 건 아닐까 생각도 하는데, 이건 개인마다 생각의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어찌되었든 삼성전자, LG전자 등에 근무한 경험이 있는 약대생들이 국내 제약회사 인턴이나 근무를 하면서 상당히 괴리를 느끼는 경우가 많은 듯 하다. 국내 제약회사 시스템이 생각보다 뒤쳐져 있다는 이야기도 많이 듣는다. 그렇다면 이런 차이가 어디서 올지 생각을 해 봐야 할 것 같았다.
삼성이나 LG를 다녔던 사람들이 국내 제약회사에서 가장 먼저 놀라는 부분은 매출 규모다. 제약업계의 매출 규모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연매출 1조 넘는 회사가 유한양행, GC녹십자, 광동제약, 동아(ST+제약) 정도로 손에 꼽는다.
반면 삼성전자는 2018년 1분기 매출만 해도 60조원을 넘었고, LG전자 역시 1분기 매출이 15조원을 넘었다. 유한양행은 2018년 1분기 매출이 3천억대이며, GC녹십자는 3천억원이 채 되지 않았다. 사실상 규모의 게임에서 제약업계는 상대도 되지 못한다. 삼성전자에서 볼 때 제약회사는 보따리상 정도의 매출 수준이라 생각할 것 같다.
그래서 다국적 제약회사의 매출 규모는 어찌될지 Pfizer의 글로벌 매출을 다시 보았다. 2018년 1분기의 Pfizer의 글로벌 매출은 12.9 billion dollars 라고 나와 있었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14.4조 정도 되는 규모다. 즉 Pfizer 정도 되어야 LG전자 정도 매출이 나온다는 이야기다.
현재 LG 더블로거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LG전자에서 신상품 나오는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된다. LG전자에서 나오는 신상품은 그야말로 정신없을 정도로 빠르게 나온다. 스마트폰만 해도 올해 초 V30SThinQ가 나왔는데, 5월에는 G7ThinQ, 6월에는 X5, Q7이 나왔고, 얼마 전에는 V35가 출시되었다. 수십만원에서 백만원대에 이르는 스마트폰이 몇 달이면 신상품 몇 개씩 쏟아진다.
그런데 제약회사에서는 절대 이런 속도로 제품이 출시되지 못한다. 기본적으로 신약 하나가 나오기까지 물질 탐색단계, 전임상(preclinical trials), 임상(clinical trial)을 거쳐야 하는데, 걸리는 기간은 짧으면 10년이라 본다. 그마저도 최근에는 안전성 문제로 더 많은 데이터를 요구하기 때문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리는 형편이다.
전자회사와 제약회사는 신제품 하나를 내는데 걸리는 시간이 하늘과 땅 차이로 크다. 전자회사는 마음만 먹으면 빠르게 기술을 개발해서 신상품을 내놓을 수 있다. 하지만 제약회사는 10년 이상의 시간을 요구하는 즉, 개발 시간의 차이가 그 속도를 가르는 것 같다.
삼성전자나 LG전자의 최종 제품들은 불특정 다수에게 판매가 가능하다. 스마트폰을 사는데 나이, 연령, 성별 등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7살 짜리 아이도 돈만 있다면 스마트폰 구매를 할 수 있다. TV를 사는데 돈 이외의 다른 조건이 필요하지 않다. 또한 재고가 쌓이면 전자회사들은 할인을 통해 빠르게 재고 처리가 가능하다.
제약회사는 떨이 판매라는 개념이 없다. 건강보험 적용이 되는 의약품은 그 가격을 정하는 곳이 건강보험공단 즉, 정부의 주도로 의약품 판매가격이 결정된다. 당뇨병 치료제를 당뇨병이 아닌 사람에게 팔지 못한다. 특히 전문의약품은 의사의 처방에 의해서만 판매가 가능하다. 환자가 돈이 있다고 하여 약을 살 수 있는 구조가 근본적으로 되지 못한다. 심지어 당뇨병 치료제 재고가 쌓여 있다고, 가격을 떨이로 팔 수 있지 않다. 환자마다 적합한 당뇨병 치료제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가격이 싸다고 그 약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1. 특정 질환 환자층에게만 판매 가능
2. 의사 혹은 약사를 통해서만 판매 가능
3. 가격 조정을 통한 수요 조절 한계
즉, 의약품 판매는 특성상 전자제품처럼 무한히 판매량을 늘릴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일부 특수 의약품의 경우에는 전세계에서 그 약을 쓸 수 있는 환자가 단 몇 명에 지나지 않는 것도 있다. 삼성이나 LG전자에서 이런 특수 의약품 판매에 대한 이해를 하기란 결코 쉽지 않을 거다. 하지만 제약회사는 제한된 환자군에 대한 의약품 판매에 익숙하다.
제약회사에서 매출을 늘리는 방법 중 하나로 꼽는 것은 적응증 확대다. 적응증 확대란 하나의 약을 가지고 다양한 질환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문제는 적응증 확대는 국내에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 미국에서는 FDA, 유럽에서는 EMA와 같은 기간에서 허가를 해 줄 때만 가능하다.
고혈압 치료제인 디오반의 경우 처음에는 본태고혈압에만 적응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매출 확대를 이해 심부전에도 허가를 받았고, 그 이후 심근경색 후의 사망 위험성 감소라는 적응증도 추가로 허가를 받았다. 이런 적응증을 추가하는 데도 당연히 수년 간의 임상시험은 필수로 진행해야 한다.
즉, 심부전이 있는 환자와 심근경색 경험이 있는 환자들까지 디오반 처방을 가능하도록 적응증을 확대한 셈이다. 이렇게 하면 처방 환자가 늘어나기 때문에 매출의 증가도 기대할 수 있다. 때문에 제약회사의 매출은 규제기관이라고 하는 식약처, FDA, EMA 등에 상당한 영향을 받게 된다.
이에 반해 전자회사는 이런 규제기관의 영향은 제약회사에 비하면 애들 장난 수준이라 이야기하는 분이 많다.
근무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관건은 회사 규모나 일하는 여건 등도 있지만, 지속적으로 언제까지 근무하면서 경제활동을 영위할 수 있는가다. 그런데 전자회사나 제약회사나 이에 대해서는 자유롭지 못한 듯 하다. 전자회사나 제약회사 모두 희망퇴직, 정리해고 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많은 약대생들이 입사를 희망하는 아스트라제네카, 화이자, GSK, 사노피, 바이엘, 베링거인겔하임, 한국얀센 등 다국적 제약회사들도 희망퇴직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점점 사람을 뽑는데 인색해지는 제약업계의 분위기가 결코 제약회사 시장성 역시 그리 밝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삼성전자나 LG전자에 대해서는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희망퇴직을 수시로 받고 있으니, 이미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된다. 즉, 전자회사든 제약회사든 다니면서 정년을 보장 받는 것을 기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약대를 졸업하고 약사가 된다고 하면, 제약회사 퇴사 이후에도 할 수 있는 면허증이 존재한다는 것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솔직히 평균연봉과 복리후생 측면에서 보면, 삼성전자나 LG전자가 갑이다. 제약회사는 굴리는 돈의 규모 자체가 작기 때문에 자녀의 학자금 지급 문제에 있어서도 회사마다 편차가 큰 편이다. 많은 회사에서 고등학교까지 학자금 지원은 해 주는 편이지만, 대학 학자금 지원은 안 해 주는 제약회사가 많다. 유명 제약회사 몇 곳만 자녀 대학 학자금 지원이 가능하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경우 자녀 대학 학자금까지 지원이 되고 있다. 그 이외에도 어린이집이나 의료비 지원 등에 있어서도 대체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지원을 제약회사들이 따라가기 어렵다. 주거비 지원 역시 유명 제약사 일부와 다국적 제약회사 일부에서만 저리 대출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반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기숙사 입사 지원부터 저리 대출(혹은 무이자 대출)을 하는데, 기본 대출 가능 금액부터 규모가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신입사원 연봉 관련 기사>
http://www.enews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14494
4년제 대졸 직원의 초봉 연봉을 살펴보면 삼성이나 LG전자 모두 4-5천만원 수준을 보이고 있다. 최근 국내 제약회사에서 약사에게 제시한 연봉을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4천만원 초반대를 제시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 약사의 경력이 이미 10년 정도 쌓인 상태였다는 거...
현재 국내 제약회사의 초봉은 연 3~4천만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2018년 GC녹십자의 대졸 초봉은 3,448만원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주임 및 대리는 3천 후반, 과장은 5천 초반, 차장은 5천 후반, 부장은 6,800만 원 정도라고 한다. 외국계 제약사는 대기업 수준의 복리후생과 연봉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약사들이 다국적 제약회사 입사를 선호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녹십자 초봉은 얼마?> http://www.news2day.co.kr/100227
제약회사 다니는 약사들의 급여는 생각보다 높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기 때문에 많은 약사들이 제약회사 근무하다 차라리 근무약사나 개국을 선택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근무약사를 하면 적어도 대기업 연봉 정도는 받을 수 있거나 혹은 시간제로 근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급여나 복리후생을 생각한다면 약사들이 굳이 제약회사에 근무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약사를 하겠다고 들인 시간과 비용이 아까운 경우가 많아, 비용효율 측면에서만 보면 최악일 수도 있다.
약대생들과 제약회사 근무에 대해 이야기할 때, 돈을 보고 제약회사에서 가지 말라고 한다. 워라밸이나 하고 싶은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제약회사에서 갈 필요가 있겠냐는 의문을 띄운다. 어쩌면 공대 나와서 전자회사나 자동차회사에 들어가는 것이 연봉이나 복리후생 측면에서 더 나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결국은 무엇에 만족하고 살 수 있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약사로 전자회사에 입사가 가능하다면, 한번쯤은 경험해 보고 싶기도 하다. (그게 가능한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분명 시스템의 차이가 존재한다. 그런데 그 차이 속에서 배우는 것은 분명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