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와 색채, 세상과 만나는 순간

by 색감여행자

개발은 여러 목적을 가진다. 누군가는 사업을 위해, 누군가는 필요성을 느껴, 또 어떤 이는 취미로 개발을 한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1인 개발자의 시대가 열렸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개발자는 기업에 소속되어 솔루션이나 서비스를 개발하며 살아간다. 취미나 학습을 목적으로 한 개발이 기술 연마의 과정이라면, 기업의 개발은 철저하게 상업적 성공을 지향하는 여정이다.


나 역시 주니어 시절엔 모듈 단위의 기능을 개발하며 작은 단위의 테스트를 수행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며 점점 더 큰 컴포넌트를 개발하게 되었고, 외부 고객사를 위한 프로젝트에도 여러번 참여하게 되었다. 기술적 역량이 뛰어난 개발자는 단계를 뛰어넘을 수도 있겠지만, 기업에서의 개발은 단순한 기능 구현이 아니고 사업의 맥락, 고객의 요구, UX 설계와 유지보수까지 고려해야 하는 다소 복합적인 과정이다.


개발이란 단순한 코드 작성이 아니라 사고의 연속이었다. 내가 설계한 내용을 내부에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아 보완하며, 코드 리뷰를 거쳐 토대를 다지는 과정. 이 과정 속에서 기술뿐만 아니라 산업과 사용자에 대한 이해까지 확장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결국 우리가 하는 일은 ‘사용자가 쉽고 편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라는 걸.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떠오른 질문.

‘그렇다면 내가 개발이 아닌, 나의 예술을 세상에 공개한다면?’


나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고, 취미로 유화를 그려왔다. 주말이면 전시를 찾아다니고, 새로운 색감과 구도를 감상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런데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개발에서는 회사라는 이름으로 결과물이 공개되지만, 전시는 오롯이 나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었다.


평소 가던 전시 공간 중 하나인 가로수길의 작은 스튜디오에서 ‘어거스트 마켓’이라는 전시 겸 마켓을 알게 되었다.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작가들의 작업을 감상하며 내적 친밀감을 느꼈고, 어느 순간 ‘나도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다음 회차의 참가 신청을 받고 있었고, 망설임 없이 신청했다.


전시 준비는 개발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나를 성장시켰다. 작품 선정, 홍보 계획, 전시 설치, 상주 일정, 철수 일정까지, 마치 하나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과정과 같았다. 개발할 때처럼 일정과 세부 항목을 정리하고 하나씩 해결해 나갔다.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과연 누가 내 그림을 보러 와줄까? 어떤 반응을 보일까? 전시 준비가 마무리될수록 점점 실감이 났다.


전시의 첫날, 나는 내 그림이 걸린 공간에 서 있었다. 익숙한 공간이었지만, 그 안에 내 작품이 걸려 있는 풍경은 전혀 다른 감각으로 다가왔다. 누군가는 조용히 그림을 감상하고, 누군가는 다가와 대화를 걸었다.

그리고 그 순간 깨달았다.


개발과 전시, 두 세계는 닮아 있었다. 사용자가 더 나은 경험을 하도록 고민하며 서비스를 만드는 개발자와, 관람객이 그림을 통해 새로운 감정을 느끼길 바라는 예술가. 결국, 내가 하는 모든 일은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개발자이자,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또 다른 도전을 마주했다. 전시가 끝난 후에도, 나는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그리고 이 두 가지가 다르지 않다는 걸 이제는 안다.

창작은 결국, 자신을 세상과 연결하는 방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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