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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현준 Sep 24. 2021

엉덩이로 일하는 회사

지속 성장이 가능한 문화

*실제 강연 및 컨설팅에서 있었던 질의응답을 재구성한 글입니다.


Q. 실장을 맡았던 직원이 퇴사해서, 평소 성실했던 A를 실장으로 세웠습니다. 그랬더니 입사동기에 경력도 비슷했던 B가 자신이 일을 더 잘하는데 왜 승진에서 밀려났냐고 항의하더군요. 일을 더 잘하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냐고 물으니, 본인은 야근도 안 하는데 매출도 단골도 A보다 더 많다고 답을 합니다. 저는 성실을 리더의 최고 덕목으로 보기 때문에 평소에 야근도 자주 하고 열심히 일했던 A를 리더로 세운 거였습니다. 단기적으로는 B의 성과가 더 나을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성실하고 애사심 깊은 A가 리더가 되는 게 제 입장에서 너무나 당연합니다. 야근 안 하는 게 자랑인 것처럼 말하는 B가 너무 답답하더군요. 직원들이 이렇게 자기 입장만 내세우며 항의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참 난감합니다.


S. 문제는 직원의 항의가 아닙니다. 회사가 직원의 역량이나 성과를 측정할 능력이 없다는 것, 그리고 그게 문제인걸 모른다는 게 진짜 큰 문제입니다.


전통적인 노동은 시공간의 영향이 컸습니다. 과거에는 노동자 모두가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있어야 일할 수 있었고, 일터에 있는 시간이 곧 노동시간이었습니다. 벼농사를 생각해보세요. 간격에 맞춰 모를 심으려면 줄잡이가 논 양쪽에서 줄을 붙잡고 서야 하고, 마을 사람들이 줄을 따라 늘어서서 줄잡이의 호령에 맞춰 모를 심어야 했습니다. 나만 잠깐 쉬거나, 남들과 다른 템포로 일하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쉬려면 다 같이 쉬고, 일하려면 다 같이 일해야 했죠. 공장 역시 컨베이어 벨트 앞에 사람들이 공정별로 늘어서서 기계의 리듬에 맞춰 일을 해야 했습니다.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면 일을 하는 거였고, 나오면 일을 안 하는 거였습니다. 해서, 논이든 컨베이어 벨트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오래 나와있는 게 곧 일을 많이 하는 거였습니다.


묻겠습니다. 대표님의 사무실은 컨베이어 벨트처럼 되어있어서 앉아있으면 일이 진행되고, 일어서면 일이 멈추나요? 컨베이어 벨트처럼 그 자리에 오래 있는 게 생산성과 직결되나요? 그게 아니라면 무슨 근거로 야근과 성실성을 동일시하십니까? 야근하는 A가 칼퇴하는 B 보다 왜 매출이 떨어지는지 원인은 제대로 아십니까? A가 리더가 된다는 것은, A가 우리 회사의 인재상이라고 전 직원에게 선언하는 것과 같습니다. 대표님은 성과보다는 야근하는 사람, 야근하는 사람보다는 회사에서 자고 일어나 일하는 사람이 인정받는 회사를 만들고 싶으신 건가요?


농경사회에서는 사람이 계절에 맞추어 일했습니다. 산업사회에서는 사람이 기계에 맞추어 일했습니다. 사람이 무언가에 맞추어 일하는 경우에는, 다시 말해, 주는 대로 받아서 정해진대로 일하는 경우에는 그때에 그 장소에 얼마나 오래 있었느냐로 노동을 측정해도 무방합니다. 육체의 한계만 없다면 성과는 투입된 시간에 비례해서 나올 테니까요. 그러나 지식 기반의 창의적인 일들은 한 장소에 얼마나 오래 머물러 있었느냐로 측정해서는 안됩니다. 인간의 창의성은 한 가지에 몰입할수록 오히려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창의성은 몰입하면 오히려 떨어진다. 몰입은 창의성을 끄는 스위치와 같다.


 1990년대 중반에 미국 워싱턴 대학에서 언어와 관련된 뇌 영역이 어디인지 찾아내는 실험이 있었습니다. 연구진은 실험 도중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립니다. 피실험자가 과제를 수행할 때는 침묵하고, 쉴 때는 활발하게 활성화되는 뇌 영역이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1998년, 연구를 리드했던 마커스 라이클(Marcus Raichle) 박사는 이 결과를 학술지에 냈지만 무시당합니다. 몰입할 때 오히려 뇌가 침묵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므로 실험 자체에 오류가 있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마커스 라이클 박사의 실험에서 쉴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은 정확히 쐐기앞소엽(precuneus) 중심부, 내측 전전두피질(medical prefrontal cortex) 중심부, 후측 띠다발피질(posterior cingulate cortex)이었습니다. 쐐기앞소엽은 정보를 지속적으로 수집하는 역할을 합니다. 내측 전전두피질과 후측 띠다발피질은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타인에 공감하고, 미래를 예측하고, 실행에 필요한 동기를 얻는 기능을 합니다. 이 영역들은 인간이 무언가에 몰입하지 않고 쉬고 있을 때 일종의 회로처럼 작동합니다. 그간에 습득한 정보를 정리하고 연결하면서 일종의 분석과 자아성찰을 하고, 앞으로 무얼 하는 게 현명한 선택일지를 알게 해주는 겁니다. 마커스 라이클 박사는 이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일 때 작동하는 회로라는 의미로 내정상태회로(default mode network)라 명명하고 2001년에 다시 한번 연구 결과를 발표합니다. 그리고 그 공로로 2014년 카블리 신경과학상(Kavli Prize)을 수상합니다.


사학자, 경학자, 정치가이자, 육일시화로 시화 장르를 최초로 개척한 문장가였으며,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 하나로 꼽히는 구양수는 생각하며 배우기 좋은 장소로 말등 위, 침대, 화장실을 꼽았습니다. 이를 삼상지학(三上之學)이라 합니다. 구양수는 내정상태회로라는 개념은 몰랐겠지만, 삼상에서 내정상태회로가 작동했기에 다양한 창작들로 인류 문명에 큰 공헌을 할 수 있었습니다. 대표님도 운전하거나 샤워할 때 갑자기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 적이 있지 않으신가요? 몰입에 대한 생각을 바꾸실 필요가 있습니다. 야근으로 몰입을 강제한다고 몰입이 되는 게 아닙니다. 몰입이 먼저인 것도 아닙니다. 내정상태회로가 작동하는 게 먼저고 그다음이 몰입입니다. 몰입의 순서를 바로잡아야 평범한 성과를 넘어서 비범한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친 것도 욕조에서 내정상태회로를 작동시킨 결과였다.


얼마나 오랜 시간 일했는지를 보상의 유일한 기준으로 삼지 마시기 바랍니다. 보상은 사업의 성장을 견인해야 하는데, 오래 일하는 것만으로는 어떤 성장도 견인할 수 없습니다. 보상의 기준은 개인의 실적이 회사의 성장에 얼마나 기여했느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게 가능하려면 제일 먼저 회사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들을 측정 가능한 상태로 만드셔야 합니다. 대표님은 어떤 것도 제대로 측정하고 있지 않으십니다. 세무사무소를 무슨 통역처럼 쓰고 계시죠. 직원들이 아무런 체계 없이 즉흥적으로 비용을 지출하면 세무에 문제가 없게끔 마법을 부려주는 게 세무사무소라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대표님이 직접 세무기장을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만, 회사에서 돈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누가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비용을 썼는지, 그 비용이 어떤 가치를 만들어냈는지를 항상 잘 알고 계셔야 합니다. 그걸 관리회계라고 합니다.


우리는 성과가 주로 질을 뜻하는 직무들에 있어서는 그 작업 과정을 어떻게 분석해야 될지 잘 모르고 있다. 이런 지식 노동에 있어서는 오히려 “무엇이 효과를 발휘하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한편 성과가 질과 양 둘 다를 의미하는 직무들에 대해서는 위의 두 가지를 모두 다 해야 한다. 즉 작업 과정을 단계별로 그리고 활동별로 분석해야 하고, 또한 ‘무엇이 효과를 발휘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성과가 양으로 평가되는 생산 작업에 있어서는 질의 기준을 규정하고 그것을 생산 공정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실질적인 생산성 개선은 상당히 전통적인 산업공학, 즉 개개의 단순 과업들을 합쳐서 하나의 완전한 ‘직무’로 구성하는 과업 분석 (task analysis)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 그의 저서 프로페셔널의 조건에서)


지출할 때 대표님 허락을 받게 하라는 걸로 이해하시면 안 됩니다. 오히려 허락받을 필요가 없게 만들어야 합니다. 직원들 각자가 자신이 맡은 프로젝트에 인건비 포함 어느 정도의 자원을 투입했고, 결과적으로 얼마의 이익을 낼 수 있는지, 클라이언트와 계약을 다음 해에도 지속하려면 어느 정도의 이익을 유지하는 게 좋은지 등등을 투명하게 알게 해야 합니다. 직원들이 직접 데이터를 기반으로 프로젝트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리고, 어디에 얼마의 자원을 집중할지를 정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일해서 어떤 가치를 만들어 낼 때, 어떤 보상이 있는지 모두가 알게 해야 합니다. 누군가 보너스를 받거나 승진을 하면 받을 사람이 받았다고 수긍하는 문화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회사가 스스로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문화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회사의 문화는 누가 보상을 받느냐로 귀결됩니다.


관리 회계가 가능한 체계부터 구축하시죠, 동시에 업무를 패턴화하고 과업 단위를 분석해서 직무 단위로 재편성하는 작업도 진행되어야 합니다. 그 이후에는 회계와 과업을 연결해야 합니다. 그다음에는 과업과 비전이 연결되어야 하고요. 어떤 능력을 갖추고 얼마나 실적을 올려야 내가 성장하고 회사가 성장하는지를 모두가 알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직원들이 회사의 공정성을 신뢰할 수 있고, 그래야 모두가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문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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