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으로 가족 여행

어딜 가나 똑같지만 그래도 즐거워

by 본격감성허세남

수인이 태어난 지 약 8개월, 아빠 쪽 온 가족이 함께 1박 2일로 충북 제천에 다녀왔다. 엄마와 아빠, 누나 셋과 그 가족들, 그리고 우리까지 총 10명이 넘는 대가족이 큰 맘먹고 멋들어진 독채를 하나 빌려서 다녀왔다. 사람이 많다 보니 한 번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미리 약속을 잡고 움직이지 않으면 어려우니 기회가 있을 때 무조건 잡아야 한다.


청풍호반으로 유명한 제천이고, 원래 숙소에서 호수가 멋지게 보여야 하지만... 현지의 가뭄 피해는 생각보다 훨씬 더 심했다. 숙소까지 오는 길에 말라버린 호수들도 엄청 많이 봤고, 숙소에서 보이는 큰 호수도 절반 이상 말라서 기슭에 흙 부분이 드러나 있었다. 수상 스포츠는 당연히 어려웠고, 말라버린 호수에 배가 있는 모습들도 곳곳에 보였다. 도시에서는 가뭄이 심하다는 말만 들었지 잘 체감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교외로 나오니까 절실하게 체감이 된다. 그러고 보면 서울 같은 대도시의 삶은 얼마나 현실과 유리된 삶인 것인지. 가뭄은 TV 속에만 있는 현상이었는데 막상 나에게 닥치니 그 피해는 내 피해가 된다. 수상 스포츠를 즐기거나 할 건 아니지만 기대했던 경치의 매력이 반감이 되니 상당히 아쉬웠다. 괜찮은 건가 걱정이 되기도 하고.


사진 2015. 7. 4. 오후 4 59 37.jpg 비가 워낙 오지 않아서 점점 말라가는 큰 호수

사실 아직 돌도 안 된 어린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이라면 그 장소가 국외처럼 엄청 새로운 곳이 아닌 이상 거의 똑같다. 어차피 산책뿐. 얼마 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유식을 먹이고, 수인이 재우고, 깨면 같이 놀아주고, 이런 패턴의 연속. 집을 빌린 덕분에 지난 제주도에서처럼 야외에서 경황이 없는 상태에서 각종 돌발상황을 맞게 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수월했다. 수인이도 굉장히 평화롭게 잘 놀았다. 이유식도 잘 받아먹고, 할머니나 할아버지에게도 한 번씩 안겨보고, 고모들에게도 안겨보고. 처음으로 수영복도 입어보았다. 수영복을 입고 유아풀에 물 살짝 첨벙첨벙할 수 있는 정도로 받아놓고 놀게 했는데 처음엔 조금 무서워하더니 금방 적응하더라. 몸이 살짝 젖는 정도인데도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고 있는 아빠와 엄마는 또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조금 큰 애들과 어른들은 의림지 산책도 하고, 청풍문화재단지에 가서 높은 곳에서 올라가 보고 이것저것 했지만 우리 가족은 수인이와 함께 그저 산책이다. 아직 걷지 못하기에 유모차에 앉아서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거리는 수인이에게 말 걸어주는 게 전부다.


"수인아 저기 호수 봐봐. 엄청 크지?"

"수인아 언니 오빠들이 기다란 거 잘 던지네."

"멍멍 멍멍. 멍멍이가 수인이 보고 있네."


당연히 돌아오는 응답은 없지만 그래도 열심히 말 걸어주는 우리 부부의 모습을 보면서 어느새 아빠가 된 나 자신의 모습을 새삼스럽게 실감했다. 아이로 인해 생긴 변화가 벌써 8개월이나 됐지만 아직도 순간순간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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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할머니도 같이 살았고, 4남매에 엄마와 아빠까지 하면 총 7명 인터라 가족 여행은 꿈도 못 꿨었다. 환경이 유복하기라도 했으면 달랐겠지만 힘들게 살아온 터라 대학 입학한 후까지도 온 가족이 함께 여행을 간 경우는 없었다. 그러던 것이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자식들이 점점 경제적 기반을 갖추고 하니까 기회가 생기기 시작했다. 여행이라고 엄청 대단한 것은 아니고, 그냥 경치 구경하고 가족끼리 야외에서 자면서 맛있는 것 먹는 정도인데 그것이 전에는 왜 그렇게 어려웠던 것인지. 좀 더 어렸을 때부터 여행도 자주 하고 하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우리 수인이는 그런 후회가 남지 않도록(정확히는 아빠의 후회인가) 어렸을 때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열심히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한다.


아무래도 서울과 광양, 여수라는 물리적인 거리가 있다 보니 생각만큼 수인이와 할아버지, 할머니가 자주 만나기가 쉽지 않다. 가능하면 한 달에 한 번은 만나게 해드리려고 노력을 하지만 그것을 어쩔 수 없이 건너뛰게 되는 경우도 생기곤 했다. 그래도 수인이가 우리 셋 뿐 아니라 다른 친척들과도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많은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아빠 쪽과 엄마 쪽 가족들 모두에게서 두루두루 많은 시간을 보내며 많은 사랑을 받는 아이로 컸으면 좋겠다. 그러기엔 역시 가족 여행이 최고. 여행을 가면 서로에게 좀 더 집중하게 되고, 좀 더 너그러워지게 마련이니까.


아이를 데리고 국내 곳곳을 다니는 것이 가끔 힘들 때도 있다. 카시트에서 수인이가 잘 자지 않는 경우라든지, 잠 리듬이 깨져버려서 늦게까지 깨어있다던지, 힘들었는지 유난히 칭얼거리는 날도 분명히 있고 그럴 때면 아빠와 엄마는 더 힘들다. 그래도 수인이가 먼 거리 이동과 사람들에 조금씩 익숙해지는 것을 보면 보람도 생긴다. 신기하게도 아이가 조금씩 성장해가는 걸 보면 계속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 같다.


결론: 제천 여행도 오직 산책뿐이었지만 무척이나 즐거웠다!


사진 2015. 7. 4. 오후 1 00 25.jpg 무려 15명의 대가족 (+ 누나 배 속에 1명)
사진 2015. 7. 4. 오후 12 47 29.jpg 아이를 낳고 보니 더욱 대단해 보이는 우리 엄마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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