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여행 마무리
감기 증상이 많이 좋아진 우리 딸은 마지막 밤에 매우 잘 잤고, 덕분에 우리는 별 탈 없이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왔다. 대만에 오는 비행기에서 거의 내내 잠을 자는 효도를 했던 수인이는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서도 이륙 후 곧 잠에 드는 효도를 했다. 물론 공항에서 엄청 우는 만행(?)을 보이기도 했다. 소파가 뭐 그리 좋은지 한참 오르락내리락하며 놀더니 비행기 탈 시간이 되어 아무리 가자고 해도 싫다고 했고, 결국 억지로 안고 가는 내내 울었다. 목청이 어찌나 큰지, 아마 거기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다 놀랐을 거다. 어쨌든 비행기에서 잘 잤으니 결과적으로는 다행이다.
한국에 온 다음날 병원에 가서 가벼운 감기라는 판정을 받고 약을 꾸준히 먹으니 수인이의 감기는 금방 사라졌다. 역시 별것 아닌 증상이었다. 이런 감기에 그렇게 노심초사했다니 살짝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래도 외국에서 아팠던 것이 처음이었고, 사소한 증상이라도 부모 마음은 그렇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여행에는 꼭 코감기 약을 챙겨가기로 마음먹었다. 이로써 해열제, 체온계 이외에 코감기약까지 챙길 것이 조금은 늘어난 셈이다.
이번 대만 여행 역시 겉모습은 지금까지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공원에 가고, 산책을 하고, 맛있는 것을 먹는 등 여행지에서의 일상은 어디든 비슷하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내가 느끼는 바는 매우 달랐다. 수인이와 함께 했던 이전 여행과도 달랐고, 이전에 대만에 왔을 때 느낀 대만과 수인이와 함께 와서 느낀 대만 역시 매우 달랐다.
1. 도시보다는 자연
저렴한 물가와 맛있는 음식과 편리한 대중교통. 이전에 대만, 특히 타이페이에 자주 왔던 이유이다. 수인이와 함께 와서도 그런 점은 변함이 없었다. 이례적으로 음식에 대한 글만 따로 남겼을 정도로 음식은 여전히 맛있었다. 수인이와 함께 다니기에 대중교통도 편리했다. 덕분에 4박 5일 동안 이동에 큰 어려움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 대만 여행을 계기로 당분간 수인이와 함께 하는 여행은 이런 도시보다는 자연이 좋은 곳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우리 딸은 대만에서 역시 잘 따라다녔지만 그 안에서 수인이가 즐길 거리는 크게 없었다. 그러다 보니 즐거워하는 아빠 엄마와 달리 수인이는 지루해하며 자꾸 핸드폰을 보채는 상황이 이어졌다. 반면에 이전에 갔던 오키나와와 하와이에서는 자연 풍경을 즐기고 물놀이를 하며 수인이 역시 이번보다 훨씬 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우리가 억지로 말려서 데리고 나올 정도로 적극적이었던 수인이의 모습이 이번 여행에서는 드물었다.
수인이는 2돌이 지났지만 아직도 말을 못 한다. 또래와 달리 말이 늦어서 도시의 많은 것들을 알려줘도 잘 알아듣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유모차에 태워서도 내내 이것저것 알려주며 끊임없이 말을 걸긴 했지만 가끔 감탄만 내지를 뿐 내내 묵묵부답이었던 우리 딸. 이렇다면 서울에 있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싶었다. 물론 수인이와 함께 하는 여행이 아이보다는 아빠 엄마의 욕심 때문인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수인이도 많이 느끼고 즐거웠으면 좋겠다. 자연은 설명이 필요 없다. 어른이든 아이든 그 자체로 놀랍고 자연스레 감탄이 나온다. 실제로 이번 대만 여행에서도 수인이가 가장 즐거워했던 곳은 우라이의 폭포였다. 수인이에게 아직까지 도시는 조금 무리인 것 같다.
2. 여행의 파트너가 되어가는 우리 딸
사실 도시가 처음은 아니다. 독일에서는 내내 도시에 있었고 우리 모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렇지만 새삼스레 자연을 생각하게 된 이유는 어느새 훌쩍 자란 우리 딸 때문이었다. 제주도부터 독일, 후쿠오카 등을 거치며 여러 곳을 다닌 우리 가족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전에는 아빠 엄마를 수인이가 따라다닌 정도였다. 우리 부부 역시 여행 내내 수인이를 보살피느라 온 힘을 쏟았고, 그것만 잘 해주면 아무 문제없이 수인이도 잘 따라왔다. 그런데 벌써 2돌이 지나 어느새 훌쩍 커버린 우리 딸은 이제 본인의 의사가 확실하게 생겼다. 2돌이 지나고 부터는 비행 요금 역시 성인과 거의 비슷하게 내는데 그런 만큼 생각 역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본인이 하고 싶은 것에는 적극적이고, 싫은 것 역시 적극적으로 거부한다. 아빠와 엄마에게만 좋은 것을 한다면 어떻게든지 수인이를 잘 설득해야 했다. 다른 한편으로 수인이가 좋아하는 것을 잘 맞춰주면 이후에 아빠와 엄마에게 좀 더 잘 해주는 노련한 모습도 종종 보였다. 확실히 "많이 컸네 우리 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여행에서 수인이가 가장 즐거워했던 곳은 놀이터였다. 숙소가 있는 동네에서도, 아니면 관광지에서도 놀이터가 보이면 한을 풀듯이 적극적으로 놀았다. 그냥 지나칠라 치면 격렬하게 거부하며 끈질기게 아빠 엄마에게 함께 놀 것을 요구했다. 덕분에 혼자나 부부끼리 왔을 때는 전혀 몰랐던 타이페이의 다양한 놀이터를 경험하기도 했다.
음식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른들이 먹는 것을 대부분 함께 먹게 되면서 본인이 먹기 싫은 것을 주면 거부했다. 그러면 계속 굶길 수도 없기에 다른 곳에 가서라도 추가로 끼니를 해결해야 했고, 자연스에 어디를 가도 수인이도 함께 먹을 수 있을지부터 걱정하게 됐다. <딘타이펑>에서 잘 지은 밥은 잘 먹으면서 푸드코트에서 대충 때우려고 산 밥은 잘 먹지 않는 까다로운 우리 딸. 이제 정말 여행의 파트너가 되었다. 비록 말은 못 하지만.
다음에는 어디로 갈까?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예전에는 나와 아내가 함께 하고자 하는 것을 떠올렸고, 그 상상 속에서 수인이는 옆에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와 아내와 수인이까지 셋이서 함께 하는 것을 떠올리게 된다. 지난 2년 동안에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이것이다. 한없이 어리게만 보였던 수인이는 어느새 불쑥 커버렸다. 매일 함께 있었음에도 이 변화는 새롭다.
아마 앞으로의 여행은 지금까지와 완전히 다르지 않을까?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이 새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