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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놀고, 잘 먹고, 잘 자기

주말을 이용한 충남 여행

by 본격감성허세남

매주 주말마다 수인이와 함께 무엇을 하면 좋을지 고민이 된다. 집에 있으면 너무나도 지루해하는(아빠 엄마가 그렇게 키운 거지만) 우리 딸 때문에 주말엔 항상 집에 있지 않고 밖에 나가곤 하는데, 아무리 여기저기 다닌다 하더라도 서울 근교에서는 결국 금방 한계가 왔다. 그래서 주말을 이용해 충청도로 여행을 다녀왔다.


해외여행과 국내여행은 장소의 차이뿐 아니라 여행의 패턴도 완전히 다르다. 보통 해외여행은 그 도시 또는 지역이 중심이 되고, 거기서 무엇을 새롭게 발견하고 즐길 수 있을지가 중심이 된다.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도 아이에 집중이 좀 더 될 뿐 전체적으로 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국내여행은 장소보다는 무엇을 할 것인지가 중심이 된다. 특히 충청도처럼 가까이에 있어 자주 간 곳이면 더더욱. 그렇다 보니 일단 할 것을 먼저 정하고, 그것에 맞춰 나머지 계획들을 모두 짜게 된다. 물론 할 것을 정할 때 가장 우선순위는 수인이와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본인의 의사가 굉장히 강해진 우리 딸은 당황스럽게도 어디서든 본인의 마음에 안 들 때는 소리를 지르곤 한다. 혼내봐도, 달래 봐도, 어떤 방법을 써도 소용이 없어서 고민이다. 특히 새로운 곳에 가면 낯설어서 그런지 그런 반응이 더욱 심해진다. 이번 여행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마트에서 소리를 질렀을 땐 어찌나 당황했는지.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래도 그런 몇몇 순간들을 제외하곤 참 마음 편했던 짧은 여행이었다. 당초 의도대로 잘 놀고, 잘 먹고, 잘 자고 왔다. 이런 편안함이야말로 국내여행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1. 아산 스파비스


수인이는 물을 정말 정말 좋아한다. 하와이에서는 어려울 거라 생각했던 바다 수영에까지 눈을 뜬 아이니까 오죽하랴. 이런 수인이를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정한 것이 물놀이였다. 집 근처에 있다는 이유로 영등포의 <씨랄라>에 자주 가곤 하는데 기왕에 멀리 나가는 만큼 좀 더 크고 좋은 물놀이장을 찾아보게 됐다. 익스트림 슬라이드 중심의 물놀이장은 어차피 우리가 하지 못하니 제쳐두고, 적당한 가격까지 고려해서 결정한 곳이 바로 <아산 스파비스>. 36개월이 안 된 수인이는 아직까지 무료라 성인 2인 요금만 내고 정말 신나게 놀고 왔다.


서울에서 아침 일찍 출발해서 중간에 밥을 먹은 후 아산 스파비스에 도착한 시각이 12시가 조금 안 된 시각. 이미 주차장은 만차였기 때문에 메인 주차장이 아닌 근처에 마련된 공터 주차장으로 향했다. 날씨가 굉장히 화창해서 사람이 더 많은 게 아닌가 싶어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괜히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더러운 물에서 시간과 돈만 버리는 건 아닐까 싶어서. 하지만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는 않아서 우리 가족이 놀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다행이다.


우리 딸은 역시나 물 만난 고기처럼 실내와 실외를 번갈아가며 계속해서 미끄럼틀을 탔다. 전체 탄 횟수를 치자면 50번은 넘게 탄 것 같다. 이 작은 몸에서 어떻게 그런 에너지가 나오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그렇게 놀고 나서도 씻으러 가자고 하니 가지 않겠다고 발버둥 치며 소리 지르던 걸 보면 대단하다. 엄마와 함께 씻으러 들어간 여탕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엄마 손을 끌고 이곳저곳을 얼마나 다녔는지 옷을 다 입고 나온 엄마는 완전 녹초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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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png 지칠 때까지 수도 없이 탔던 메인 미끄럼틀


출발하기 전에 아산 스파비스에 대해 찾아봤을 때는 작아서 조금 별로라는 이야기도 많았다. 하지만 수인이와 함께 놀기엔 더없이 좋은 사이즈였다. 사진 속 큰 슬라이드는 아빠나 엄마가 수인이를 안고 함께 탔는데 많이 기다리지 않고 금방 탈 수 있었으니 사람도 적당했다. 게다가 네이버에서 사전에 예약을 하면 별도의 신용카드 할인 없이도 정상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이용할 수 있으니 금상첨화. 다음에 기회 된다면 또 오고 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던 곳이다.


그러고 보면 아이들은 항상 에너지가 넘친다. 어른들은 늘 피곤하다. 이렇게 급격하게 바뀌는 그 분기점이 언제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아무튼 잘 놀았다!


2. 천안 뚜쥬루 과자점


물놀이를 하며 약 3시간가량을 보낸 후 늦은 점심 겸 간식을 먹기 위해 천안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우리 부부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뚜쥬루 과자점>. 근처에 왔는데 여기를 들르지 않는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


이번에는 불당동에 있는 뚜쥬루 거북이점에 가기로 했다. 아산에서 차로 약 30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이다. 물놀이를 워낙 열심히 한 터라 차에 타면 금방 잠에 들 것 같았던 수인이는 예상외로 천안에 도착할 때까지 초롱초롱했다. 큰일 났다 싶어 주차를 한 후 유모차를 끌고 한참이나 걸어 다닌 끝에 결국 잠에 들었다. 아이가 자면 비로소 아빠 엄마의 자유시간이 시작된다. 첫 번째 코스였던 물놀이가 수인이를 위한 곳이었다면 뚜쥬루는 빵을 좋아하는 우리를 위한 곳이다.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한 명씩 들어가서 각자 먹고 싶은 빵들을 사 왔다. 내가 두부 과자와 미니 밤 식빵, 차갑게 먹는 팥 도넛을 사 온 후에 아내가 들어가서 샐러드 빵 등 몇 가지를 더 사 왔다. 햇볕은 뜨겁지만 그늘에 있으니 선선하고 공기는 깨끗한 기가 막히게 환상적인 날씨, 쿨쿨 잘 자준 수인이 덕분에 여유로운 시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놀라운 맛의 빵.


"맛있다. 행복해."


이 말이 절로 나왔다. 역시 잘 먹으면 행복해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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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쥬루를 처음 만난 건 2007년쯤이었다. 당시에 도시철도공사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를 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답십리역과 장한평역 사이에 있는 도시철도공사 본사로 심부름을 가게 됐다. 같이 일하던 직원분이 근처에 빵집이 하나 있다며 빵 좀 사달라고 부탁을 하셔서 들른 것이 뚜쥬루와의 첫 만남이었다. 당시에도 이미 파리바게뜨와 뚜레주르로 대표되는 맛없는 프랜차이즈 빵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었다. 때문에 뚜레주르의 짝퉁 같은 이름의 작은 제과점에 큰 기대를 걸진 않았었다. 그런데 심부름을 하며 맛본 뚜쥬루의 빵은 예상외였다. 아니, 예상외 정도가 아니라 놀랍게도 맛있었다. 그 뒤로 자주는 아니지만 일부러 찾아가서 빵을 사 먹곤 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엔 똑같은 파리바게뜨가 생겼다. 굉장히 허탈했다.


그러다가 몇 년이 지난 후에 천안에 뚜쥬루 과자점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서울에 있었던 그 뚜쥬루였다. 신혼 초기 어느 주말, 빵 하나 먹겠다고 시외버스 타고 시내버스로 또 갈아타고 2시간 넘게 걸려 천안까지 갔다. 그리고 돌아올 때는 택시 타고 고속버스를 타고 역시나 2시간 넘게 걸려서 돌아왔다. 왕복 5시간을 걸려서 빵 하나 먹고 왔지만 결코 후회는 없었다. 그 뒤로도 수없이 많은 빵집을 가봤지만 우리 부부에게 넘버원은 여전히 뚜쥬루다. 서울에 계속 있었으면 아마 우리 부부의 몸무게에 상당 부분을 기여했을 것 같다. 그렇게 보면 서울에 없는 것이 다행인 건가.


잘 자던 수인이는 1시간 조금 넘게 잔 후에 깼다. 그리고 아빠 엄마와 빵을 함께 먹으며 활짝 웃었다. 입이 고급인 우리 딸은 이런 빵을 사줘야 잘 먹는다. 맛있는지 계속 달라고 보챘다. 귀여운 것. 많이 먹으렴. 빵 정도는 얼마든지 사줄 수 있으니까. 참 잘 먹었다!


사진 2017. 5. 27. 오후 4 53 33.jpg "아빠 엄마에게 자유시간을 드려야지."
사진 2017. 5. 27. 오후 5 38 00.jpg "이쯤하면 됐죠? 나도 얼른 맛있는 빵 주세요!"


3. 홍성의 아파트


1박 2일의 짧은 여행을 위해 정한 숙소는 충남 홍성의 아파트였다. 바닷가 펜션, 다음날 갈 예정인 천리포 수목원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 같은 숙소 등 여러 곳을 알아보다가 우연히 에어비앤비에서 발견한 곳이다. 가격도 굉장히 저렴한데 아파트 전체라 꽤 기대를 하고 갔다. 천안에서 홍성까지 약 1시간 정도 거리. 가는 길에 하나로마트에 들러서 장을 봤다. 홍성 한우가 유명하다니 한우도 사고, 고기를 위한 쌈 채소도 사고, 맥주와 수인이 먹을거리도 샀다. 로컬 푸드라고 되어 있는 것을 사니 모둠 쌈채소가 불과 천 원인데 엄청 싱싱했다. 역시 롯데마트같은 전국구 마트보다 하나로마트를 선택했던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드디어 숙소에 입실. 기대를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환상적인 곳이었다. 분명히 34평형인데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넓었고, 방은 3개라 우리 3명이 쓰기에 넘쳤다. 인테리어가 깔끔하고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는 것을 보면 모델하우스로 쓰였던 곳 같기도 하다. 아무튼 TV도 커브드 TV로 엄청 컸고, 냉장고도 좋고, 심지어 세탁기까지 있어서 물놀이장에서 입은 옷들을 탈수해서 말릴 수 있었다. 게다가 TV에는 올레 TV가 돼서 수인이를 위한 뽀로로/콩순이 등 키즈 비디오를 마음껏 틀 수 있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곳! 해외여행에서는 결코 누릴 수 없는 이런 한국적인 편리함을 다 갖춘 곳! 그래, 기왕에 국내여행을 갈 거면 이 정도는 돼야지. 집이 넓어서 신나는지 수인이도 엄청 신나서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놀았다.


사진 2017. 5. 27. 오후 9 02 28.jpg 넓은 거실을 제 세상처럼 뛰어다닌 수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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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워낙 좋은 덕분에 저녁도 매우 편안하게 먹었다. 잘 갖춰진 주방에서 손수 사온 고급 홍성 한우를 구워서 먹는 맛이라니, 안 좋다면 이상한 거다. 홍성 한우는 기대 이상으로 굉장히 맛있었다. 백미는 1++ 등급의 안심. 고기를 잘 먹지 않는 수인이마저 더 달라고 할 정도의 맛이었으니 얼마나 훌륭했던지. 거기에 맥주 한 잔까지 더해지니 한없이 좋았다. 역시 여행지에서 맥주 한 캔은 저녁을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일등 공신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캔이면 충분하다. 어차피 더 할 것도 없는 저녁, 우리 부부는 마음껏 먹고 취했다. 아마 아빠 엄마가 헤롱헤롱 하는 모습이 수인이가 보기엔 조금 이상했을 거다. 그럴 때도 있는 법이란다 우리 딸.


잠자리마저 편안했다. 덕분에 다음 날 일어났을 때 여행의 피로가 크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뿐했다. 사실 5성급 호텔의 푹신한 침구보다 이렇게 일상적인 침대가 마음이 더 편하다. 과할 정도로 넓은 면적에 필요한 모든 것이 다 갖춰진 시설, 편안한 잠자리, 지금까지 여행을 다니며 경험했던 그 어떤 숙소보다도 마음에 들었다. 별장처럼 하나 사놓고 싶을 정도였으니. 참 잘 잤다!


잘 놀고, 잘 먹고, 잘 잤던 멋진 하루. 아마 오래 기억에 남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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