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가족 여행
때로는 강렬한 한 순간이 여행의 모든 기억을 덮어버리기도 한다.
모두가 다 움직이는 여름 성수기에는 어딘가로 웬만하면 가지 않는 주의지만, 이번 여름만큼은 특별히 수인이 외가 가족들과 함께 거제도로 2박 3일 동안 여행을 다녀왔다. 곧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수인이 막내 외삼촌 때문이었다. 기왕에 2박 3일로 길게 가는 만큼 평소에 가기 힘든 먼 곳으로 가기로 했고, 그곳이 결국 거제도가 됐다. 평소에 거제도가 참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기에 그런 소문 하나 믿고 무작정 간 곳이었다.
서울에서 거제도까지는 평소에도 5시간 가까이 걸리는 먼 거리. 그래서 올 때와 갈 때 모두 진주에 잠깐 들러서 밥을 먹었다. 돌아보면 이게 참 괜찮은 생각이었던 것 같다. 오랜 운전은 워낙 지겹기에 3시간 조금 넘게 가면 도착하는 진주는 쉬어가기 좋은 곳이었다. 게다가 진주에서 먹은 냉면, 비빔밥, 육전 등도 만족스러웠다. 진주성이 산책하기 좋기에 잠깐 들러볼까 했지만 결국엔 들르지 않았는데 그런 아쉬움은 하나도 남지 않을 정도였다. 역시 일정이 여유로우면 이렇게 중간에 잠시 쉬어갈 수도 있고 좋다. 특히 장거리 여행에서는 이런 것이 더욱 필요하다. 여행도 지치면 즐기기 힘드니까. 8월 중순의 한여름 날씨엔 아무리 에어컨을 계속 틀고 가도 몇 시간이 지나면 지치게 마련이다.
오랜만에 먼 길을 떠나서 그런가 수인이도 기분이 굉장히 좋아 보였다. 아무 곳에서나 대충 찍어도 화보가 되는 우리 예쁜 딸. 어려서부터 여기저기를 많이 다녀서 그런지 몰라도 수인이는 아빠 차를 탄다면 무조건 좋아한다. 3~4시간을 가도 별로 싫어하지 않고 잘 간다. 더욱 자주 놀러 다니라는 하늘의 계시가 아닐까 싶다.
거제도는 생각보다 붐비지 않았다. 조선소들이 어려워서 그런가 몰라도 시내에도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고, 유명하다는 음식점에 가도 별 기다림 없이 바로 먹을 수 있었다. 바로 전에 들렀던 진주와는 완전히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진주에서는 음식점에 가도 꽤 기다리고, 시내에서도 주차하기 위해 여기저기를 빙빙 돌았었는데. 덕분에 우리에겐 여유로워서 좋았다. 아무래도 아이와 함께 다니다 보면 여유로운 것이 최고다.
보통 거제도에 가면 바다를 생각하지만 의외로 굉장히 좋았던 곳이 대나무 숲이다. 담양의 유명한 죽녹원과 비교하면 아무래도 뒤떨어졌지만 거제도는 섬이기에 조금만 올라가도 바다의 전경이 보여서 색다른 매력이 있었다. 한여름의 무더운 오후에 조금이나마 그늘이 있는 곳이 숲이라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입구의 대나무 숲을 지나고, 조금 더 들어가면 다른 나무들로 이루어진 숲이 나오고, 더 가서 전망대 비슷한 곳에 도착하니 섬과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역시 바다의 매력은 순간 사람을 압도하는 그런 시원함이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탁 트이며 상쾌해지는 느낌! 거제도엔 바다가 빠질 수 없지.
사실 가족끼리 함께 여행을 떠나면 장소보다도 사람들과 함께 하는 순간순간이 더 기억에 남는다. 그게 바로 가족 여행의 진짜 매력이 아닐까 싶다. 수인이를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외가 쪽 식구들과 함께 하니 수인이도 마음이 특별히 편안한지 다른 어느 때보다 잘 먹고 잘 놀았다. 펜션에서의 물놀이와 저녁 바비큐, 식당 가서 먹은 밥 한 끼. 사진으로는 남지 않는 이런 특별하지 않은 순간들이 기억 속에는 선명하게 잘 남아있다. 아마도 수인이의 기억 속 어딘가에도 남아있겠지? 곧 세 돌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말을 하지 못하는 우리 딸. 말을 하지 않으니 아빠 엄마가 알 수가 있나. 말을 알아듣고 숫자도 알고 해서 크게 걱정은 되지 않지만 언제까지 답답해야 할지...
아무튼 여행 내내 큰 문제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잘 놀았다. 적어도 둘째 날 오후 까지는. 정말 '해금강 잔혹사'라고 부를만한 그때까지는.
거제도에 간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간다는 해금강과 그 근방. 점심을 먹은 후 늦은 오후에 우리 역시 그쪽으로 향했다. 거제도의 모든 곳이 한산했는데 해금강 가는 길만큼 정말 엄청나게 막혔다. 평소 퇴근길 서울보다도 더 막혔다. 20~30분이면 갈 거리가 1시간이 넘게 걸릴 정도였다. 이때부터 기분이 조금 안 좋긴 했지만 유명 관광지니 어쩔 수 없다 하고 생각은 했었다. 어쨌든 우리의 목표는 해금강 유람선이었으니까 가야 했다.
해금강 유람선 가는 길에 유명한 '바람의 언덕'이 있기에 잠깐 들렀다. 교통 체증을 뚫고 갔는데 바람의 언덕 근처 주차장에는 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좁은 도로에까지 불법 주차된 차들로 가득해서 내려서 돌아볼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바로 차를 돌려서 나와버렸다. 뭐 특별히 기대를 했던 것이 아니라서 아쉬움도 크지는 않았다. 어쨌든 우리의 가장 큰 목표는 해금강 유람선이었으니까.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해금강 유람선 매표소에 주차를 하고 예매해뒀던 표를 찾은 후 배를 타러 선착장 쪽으로 향했다. 오전까지는 무척이나 맑고 쨍했던 날씨가 어느새 우중충해져 있었다. 곧 비가 와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날씨였다. 해금강 유람선 선착장 앞 해금강 호텔은 폐쇄된 지 오래인지 흉물스럽게 남아있었다. 국내 여행이 활발하지 않던 시절, 해금강 명성을 등에 업고 아마 굉장히 잘 됐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저 흉물스러운 건물이었다. 하얀색이라 왠지 망한 병원 같기도 하고. 그런 호텔을 지나 조금 더 가니 드디어 선착장이 나왔다. 날씨는 더 우울해진 상태였다.
바다를 본 수인이가 싫은 기색을 내기 시작했다. 바다가 눈앞에서 넘실거리니 싫었을까. 하와이에서는 바다에서 나가기 싫다며 굉장히 잘 놀았던 우리 딸인데 여기서는 소리 지르며 싫은 기색을 내고 안아달라고 했다. 말을 하지 못하니 뭐가 어떤지 알 수 있나. 일단 표를 끊었으니 수인이를 안고 달래며 탑승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수인이가 배를 타는 것이 처음은 아니다. 전에 베를린에서 유람선을 탔을 때도 큰 문제없이 잘 탔기에 이번에도 문제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다.
드디어 탑승. 수인이는 타면서 울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좋아하는 핸드폰으로 달래며 자리에 앉았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씨라 물살이 꽤 강했다. 설명해주시는 분도 창문을 닫아달라고, 선실 밖으로 나가지는 말라고 안내를 했다. 배가 출발한 뒤에 수인이는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릴 때까지 계속 울었다. 우리 딸은 목청이 무척이나 좋다. 게다가 울 때의 소리 크기는 그 어느 아기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크다. 그래서 평소에도 성악가를 시켜야 하나 생각할 정도인데 그런 아기가 온 힘을 다해 울어재끼니 그야말로 악몽이었다. 비타민 사탕으로 달래고, 핸드폰으로 달래고 해도 잠깐씩만 그쳤을 뿐 곧 다시 울었다. 일부러 맨 뒤에 앉았는데 앞에 앉은 사람들이 달래준다고 돌아보면 낯설어서 그런지 더 울었다.
해금강 유람선은 하필이면 30분을 넘게 운행을 했다. 날씨가 안 좋고 파도가 강해도 운행 못하는 상황이 아닌 이상은 코스는 다 돌아야 했겠지. 비행기를 타고 아무리 오래 가도 한 번도 울지 않던 우리 딸인데. 좁은 배, 파도가 심해서 걸어 다니지도 못하는 상황, 핸드폰의 유튜브로 달래주려고 해도 바다로 나가니 네트워크가 되지 않는 상황. 그야말로 악몽의 40분가량이었다. 아마도 우리와 함께 탄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그 사람들에게도 정말 운 나쁜 시간으로 남았겠지?
왜 그렇게 울었을까? 배가 흔들려서 멀미가 나서 더 울었을까? 그 어떤 것을 해도 달래지지 않는 건 수인이가 태어난 후 처음이었다. 결국 내려서 육지에 와서 한참이나 더 가서야 수인이는 울음을 그쳤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완전히 지쳐버렸다.
거제도 여행을 다녀온 지 한 달이 넘었지만 그때를 돌아보면 지금도 해금강 유람선에서의 악몽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수인이가 말을 하기 전까지 당분간 유람선은 안 타야겠다. 그리고 수인이가 이 일 때문에 바다에 두려움을 가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아빠 엄마는 너와 함께 가고 싶은 바다가 많단다. 부디 얼른 잊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