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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서의 힘든 하루

어쩔 수 없는 스트레스

by 본격감성허세남

셋째 날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옹핑 360'이라는 케이블카를 타보기로 했다. 급하게 몇 개를 좀 찾아보니 사람이 무척이나 많으니 꼭 예약을 하라고 해서 예약도 했다. 그래도 월요일이니까, 게다가 예약도 했으니까 조금은 괜찮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가는 길은 꽤 멀다. 홍콩역까지 트램을 타고 가서, 거기서 다시 지하철로 갈아타고 한참을 가서 종점에 내리면 된다. 수인이가 지하철에서 난동을 부리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폴리펜도 가지고 놀고, 태블릿도 적당히 보면서 잘 왔다. 이번 여행에서 폴리펜과 유튜브 레드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유튜브 동영상을 저장할 수 있으니 얼마나 편리한지! 물론 유튜브 동영상이 좋지 않다는 건 모두가 안다. 전에 오키나와 여행기에서도 썼었지만 스마트폰이라는 것이 딜레마다. 안 주려면 아빠 엄마도 애가 보는 곳에서 아예 안 써야 하는데 그럴 수는 없으니. 적절히 조절하는 수밖에. 여행을 다니면 아무래도 한국에서보다는 많이 보게 되기 때문에 참 고민이다.


그렇게 먼 길을 달려 도착해서 케이블카를 타러 왔는데... 사람을 본 순간 우리 모두 소리를 질렀다.


"으악. 이게 뭐야!"


분명히 예약 줄은 따로 있었는데, 그래서 그나마 현장 구입보다는 빠른 편이었는데도 1시간이 넘게 걸려서야 예약한 표를 교환할 수 있었다. 그 후에 케이블카를 타기까지는 또 줄. 결국 케이블카에 타기 까지 1시간 40분가량이 걸린 것 같다. 어린아이가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을 턱이 있나. 나는 표를 사려고 줄을 서있고, 수인이는 엄마와 근처를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핸드폰도 보고. 표를 산 후에 약 30분가량은 함께 줄 서 있어야 하는데 마지막에 가서는 케이블카를 빨리 타고 싶다고 수인이가 자꾸 소리를 질러서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케이블카를 탄 순간 힘이 쫙 빠졌다. 솔직히 왜 왔을까 하고 후회도 됐다.


사진 2017. 12. 11. 오후 1 27 58.jpg 절망적이었던 매표소 앞 풍경


그래도 다행이었던 건 수인이가 케이블카를 잘 탔다는 점이다. 전에 여수에서 해상 케이블카를 탔던 적이 있는데 그때는 뭐가 무서웠는지 타고난 후에 울어서 난감했었다. 이번에는 우리 가족끼리만 탄 것도 아니기에 걱정했는데 신기해하며 잘 탔다. 바깥 풍경도 감상하고, 폴리펜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도 듣고 하면서. 덕분에 힘든 몸과 마음을 조금 쉬며 우리도 편하게 갈 수 있었다.


기다린 시간은 너무나도 길었지만 거의 30분가량을 가는 케이블카는 타볼 만했다. 아이와 함께 여행을 가면 확실히 선택지가 좁아진다. 이런 유명 스팟에 가면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기에 자연스럽게 포기했던 적도 많다. 그래도 월요일이니까 괜찮겠지 했는데 오늘 같은 경험도 했으니 이제 다음에 여행을 갔을 때, 예를 들어 파리의 에펠탑에 갔는데 그곳을 우리는 포기할까? 꼭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고, 그렇다고 아이를 달래며 기다리자니 너무나도 힘들고. 이런 것이 여행에 따르는 어쩔 수 없는 스트레스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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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느라 지루하고 피곤했는지 도착해서 수인이는 곧 잠에 들었다. 우리 부부는 사전에 사서 온 도시락을 먹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케이블카의 혼잡함이 어디 갔냐는 듯이 위쪽은 사람이 그리 많지 않고 좋았다. 사람이 이 정도만 있어도 홍콩이 조금 더 좋을 텐데 하는 부질없는 바람도 가져보았다. 날씨도 좋고, 중국스러운 풍경도 신선하고, 더없이 평화로웠던 약 2시간. 유모차에서 자고 있는 수인이를 데리고 갈 수 없기에 우리 부부는 번갈아가며 한 곳씩을 다녀왔다. 아내는 절을 구경하고, 나는 긴 계단을 올라 거대 불상을 구경하고, 약속한 시간에 다시 만나고. 내려갈 때쯤 돼서야 수인이는 깼다. 케이블카를 타는 걸 알고 깬 건지 모르겠지만 아빠 엄마에게 평화를 선사한 수인이를 위해 우리는 빼빼로로 보답을 했다.


원래 계획은 망고 디저트도 먹고, 차도 마시고 하는 것이었지만 올라올 때 그 과정을 겪고 질려버려서 빨리 내려가기로 했다. 케이블카 운영 시간이 오후 5시까지 인데 이미 3시가 넘은 상황, 조금만 더 있으면 이 사람들이 다 내려가려고 서두를 텐데 그럼 올라올 때 같은 지옥이 다시 벌어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우리의 발걸음을 빠르게 만들었다. 좀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이런 점도 스트레스다. 사람이 많아서 생기는 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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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올 때는 기본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갈 때는 크리스탈 캐빈을 탔는데 이게 신의 한 수였다. 내려가는 케이블카 줄의 차이가 엄청났다. 크리스탈 캐빈은 금방 타고, 기본 케이블카는 딱 봐도 30분 정도 기다려야 될 것 같던데 그걸 본 순간 얼마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


크리스탈 캐빈이 확실히 재미있기는 했다. 전에 대만에서 케이블카를 탈 때도 크리스탈을 탔던 적이 있는데 그때는 크게 재미있지 않았는데 홍콩은 아래에 산과 바다가 번갈아가면서 나오고, 산길에 사람들이 걷는 모습도 보이고 하니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수인이도 신기한지 자꾸 쳐다봤다.


"빠다"

"나무"


하면서 조잘조잘 대기도 하고. 아직 명확하게 말을 하는 건 아니지만 저렇게 조잘조잘할 때 얼마나 귀여운지 모르겠다. 내려와서 케이블카 모형 앞에서 수인이 사진을 한 장 찍어줬다. 대견하다 우리 딸. 홍콩 와서 참 많은 교통수단을 타는구나. 비행기, 기차, 지하철, 배, 버스, 트램, 케이블카. 이번 홍콩 여행은 아주 교통 특집이다. 그 모든 수단을 잘 탄 우리 딸이 더욱 기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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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017. 12. 11. 오후 5 26 43.jpg "아빠, 케이블카 재미있었어요!"


케이블카를 타고 오니 지쳐서 다른 계획은 다 취소하고 곧바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길 가다가 우연히 본 <Green Common>에서 파는 'Beyond Burger'. 요금 미국에서 유행하는 대안 고기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투자하고 빌 게이츠도 투자했다 등등 소식은 들었었는데 그 걸 먹을 수 있는 곳이 홍콩에 있었다니!


처음으로 맛본 비욘드 버거의 맛은 최고! 홍콩 와서 맛있는 걸 많이 먹었지만 색다르고 손에 꼽을 정도로 맛있었던 것이 이 비욘드 버거였다. 채식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라서 더욱 그랬을지도. 수인이도 조금 떼어줬더니 잘 먹더라. 엄청 실한 재료에 패티도 고기 못지않게 맛있으니 당연한 건가. 콩고기의 부자연스러운 맛과는 완전 달랐다. 비슷한 걸로 'Impossible Burger'는 더 고기 같다고 하던데 비욘드 버거만 해도 엄청 만족스러웠고, 먹고 나서 배가 부담스러운 느낌이 없어서 더욱 좋았다. 배는 부른데 부담스럽지 않은 기분 좋은 느낌. 역시 홍콩이 이런 글로벌 트렌드는 서울보다 빨라서 좋다.


사진 2017. 12. 11. 오후 8 07 10.jpg 배는 부르고 부담스럽지 않아서 참 좋았던 음식


숙소로 가는 길에 첫 날 봐 두었던 놀이터에 들렀다. 홍콩은 다른 도시들에 비해 애들이 놀만한 곳이 별로 없다. 대만의 타이페이만 해도 애들 놀이터가 곳곳에 있어서 수인이가 참 재미있게 놀았었는데 홍콩은 여기 한 곳밖에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도 떠나기 전에 한 번 들러야 하지 않을까 해서 들렀는데 수인이는 물 만난 고기처럼 거의 30분가량을 미끄럼틀을 타고 놀았다. 평소보다 훨씬 더 활발했다. 분명히 약간 힘없어 보이던 아기가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심지어 자기 키가 안 맞아 올라가지 못하는 높은 곳은 옆에 있는 조형물을 이용해서 올라가는 재치까지 보여줬다. 잘 웃고 잘 놀았지만 본인이 즐길 수 있는 것이 많이 없어서 수인이도 스트레스가 많았나 보다. 중간에 꽃을 머리에 꽂아줬더니 그걸 어찌나 소중하게 여기며 미끄럼틀을 타던지.


미안해 수인아. 잘 지내줘서 고마워. 다음에는 네가 즐길 수 있는 것이 좀 더 많은 곳으로 여행을 가자. 재미있었지만 이런저런 스트레스가 많았던 하루, 우리가 경험한 홍콩을 대표적으로 잘 보여준 하루가 아닐까 싶다. 아이와 함께 가기에 홍콩은 좋은 곳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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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017. 12. 11. 오후 8 58 44.jpg 정신 없이 미끄럼틀을 탄 예쁜 우리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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