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여행 마무리
3박 4일간의 홍콩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떠나온 홍콩은 20도가 조금 넘었었는데, 돌아온 한국은 올 겨울 최고의 강추위로 초저녁인데 영하 10도 가까이 되는 추운 날씨였다. 이번 홍콩이 날씨 하나는 참 좋았는데. 2013년에 갔던 첫 홍콩 여행보다 이번 홍콩 여행이 훨씬 더 좋았는데 거기에는 날씨가 큰 몫을 했다. 수인이와 함께 다니면 날씨 운이 확실히 좋은 것 같다.
홍콩 여행을 다녀와서 우리 부부 둘 다 같은 말을 했다.
"홍콩에 다녀오니 서울이 참 좋다. 그치?"
"홍콩 참 재미있었는데. 그런데 굳이 다시 가지는 않을 것 같아."
재미있는 3박 4일이었지만, 주변에 다른 좋은 여행지들이 정말 많은 관계로 홍콩에 우리 돈을 주고 다시 가지는 않을 것 같다는 게 우리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특히 어린아이를 데리고는 더더욱. 너무나도 높은 인구 밀도와 서울 못지않은 물가를 체험하러 굳이 세 번째로 갈 필요는 없겠지. 물론 나중에 수인이가 돈을 많이 벌어서 Peninsula Hotel에 묵게 해준다면 가겠지만.
그래도 이번 홍콩 여행이 특별히 의미 있었던 이유가 2가지가 있었다. 먼저 처음으로 수인이와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됐다. 좋은 것을 보면 감탄도 더 잘 하고, 그것을 기억하고 나중에 되새기기도 하고, 말을 걸면 간단한 단어로라도 대답을 하는 수인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야말로 상전벽해가 이런 건가 싶었다. 게다가 원숭이라는 좋은 수단도 생기지 않았나. 다른 아이들보다 많이 느리지만 확실히 많이 컸다! 다음 여행에서는 또 어떤 모습을 보일까? 여행에 새로운 기대가 생겼다. 다른 한 가지는 바로 맛이다. 이번에는 돈을 아끼지 않고 먹고 싶은 것들은 모두 다 즐겼다. 덕분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맛있는 것들이 특히 많았다. 홍콩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우리가 맛본 것들이나 정리해 보려고 한다. 나중에 수인이가 홍콩에 가게 된다면 이걸 보고 그때의 흐릿한, 머리 속 저 너머 어딘가에 숨어있는 기억을 되새기며 다시 한 번씩 맛을 봐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날씨가 좋아서 고맙고, 맛있어서 더 고마웠던 홍콩 여행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1. 커핑룸 셩완 브랜치 (The Cupping Room - Sheung Wan)
https://goo.gl/maps/y4xmnYmR6ns
지인의 추천을 받아서 간 곳이다. 대표 브런치를 시키고 커피는 Flat White를 시켰다. 홍콩에 도착해서 숙소로 이동한 후 커피가 고플 때긴 했지만 그런 걸 제쳐두더라도 커피가 매우 훌륭했다. Flat White를 하는 곳이 우리나라에 아직 많지 않을뿐더러 먹어봐도 특별히 맛있다고 느끼는 곳이 한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여기는 맛있었다. 거의 탑 레벨 정도라고 할까. 부드럽고 과하지 않은 우유 거품에 진한 에스프레소가 잘 어우러진 고급진 맛! 브런치도 재료 하나하나가 맛있고 좋았다. '브런치'라는 말에 딱 어울리는 과하지 않은 메뉴여서 더 좋았다.
단점은 가격. 조금 비싸다. 브런치가 1만 원 중반대, 그리고 커피는 5천 원 초반 정도. 그래도 기분 좋게 나와서 돈이 아깝지는 않았던 곳이다.
2. La Brata
https://goo.gl/maps/G4RU93q1pp42
저녁으로 찾아갔던 곳. Trip Advisor에서 레스토랑 전체 1위길래 대체 어떤 곳일까 하고 일부러 찾아갔다. 유명한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와 가까운 곳에 있는데 길도 매우 좁고 경사도 심하고 계단까지 있어서 유모차를 끌고 가기에 상당히 힘들었다. 그래도 꿋꿋하게 갔다! 맥주는 추천을 받았고, 매콤한 피자와 브로콜리 소스가 추가된 오일 파스타 주문.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다 먹던 햄과 부라타(Burrata) 치즈 주문.
사실 세계 어딜 가나 맛있는 이탈리안 집들은 있다. 게다가 여기는 이렇게 시키니 10만 원이 나올 정도로 비싸서 맛이 없으면 안 되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수준을 넘어 엄청나게 맛있었다. 특히 파스타. 홍콩에서 먹은 것 중에서 가장 맛있었던 것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이 파스타를 꼽겠다. 그냥 파스타인데, 어쩜 이렇게 부드럽고 고소하면서 느끼하지도 않고 풍부한 맛이 나지? 이탈리아에서 파스타를 여러 번 먹어도 이 정도 맛은 없었는데. 맥주도 조금 강했지만 위스키 비슷한 맛도 나서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피자도 맛있었고, 부라타 치즈도 처음 먹어 봤는데 굉장히 신선하고 상큼하면서 우유 같은 맛. 다만 저 햄은 좀 느끼해서 먹다가 남겼다. 다들 먹던데 내 취향은 아니었다.
이탈리안에 대한 편견을 깨준 곳. 우리나라의 가격은 비싼데 맛은 무난하게 맛있는 많은 집들과 다른 곳. Trip Advisor 리뷰 중에 "Pasta! Pasta! Pasta!"가 있었는데 괜한 말이 아니었다.
3. 五行 (GOGYO)
https://goo.gl/maps/MZUU6tSib792
IFC몰 위층 식당가에 있는 곳이다. 원래 다른 곳을 가려고 했지만 급 국수(?) 땡겨서 찾아갔던 곳이다. 왼쪽이 미소라멘, 오른쪽이 딴딴멘이다. 둘 중에 딴딴멘이 더 맛있었다. 전에 <크리스탈 제이드>에서 먹었던 딴딴멘보다 한 수 위? 땅콩과 각종 고명들이 어우러지고, 내가 좋아하는 고수도 잘 버무려져서 매콤하면서 맛있었다. 같이 먹은 삿뽀로 생맥주와 완벽하게 어우러져서 금상첨화. 미소라멘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그런 맛이랄까.
여기도 단점은 조금 비싸다는 점. 1개당 만원이 훌쩍 넘고, 딴딴멘 세트는 1만 원 후반대... IFC몰의 음식점들은 다 비싸다. 그렇지만 비싼 거 알고 먹는 곳이기도 하다.
4. 원딤섬
https://goo.gl/maps/GuVtmnPHdYG2
미슐랭 원스타를 받은 딤섬집으로 유명한 곳. 구룡반도로 넘어가서 침사추이에서 지하철로 2~3정거장 더 올라가야 있다. 오후 4시 정도에 갔는데도 사람이 많아서 한참을 기다린 곳이기도 하다. 처음에 사람을 보고 포기하고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 근처에 다른 먹을 것도 없어서 결국 기다려서 먹었는데 의외로 한 20분 정도만에 자리가 빨리 나서 좋았다.
들어가면 일단 차를 주고(인당 요금을 받는다), 종이에 체크해서 주문을 하면 된다. 메뉴판에 사진이 잘 나와있어서 고르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우리는 수인이를 먹이기 위해 덮밥 하나와 우리가 먹을 딤섬 4종류를 시켰다. 고기 샤오마이 하나, 튀긴 딤섬 하나, 새우 야채 딤섬 하나, 새우 딤섬 하나. 조금 기다리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딤섬들이 하나씩 나온다. 맛을 본 순간 놀랐다. 아, 이래서 사람이 많구나. 딤섬 하나하나가 속도 풍부하고 만두피라고 해야 하나 겉도 맛있었다. 특히 새우 야채 딤섬은 너무나도 맛있어서 한 판을 더 시켜서 먹었다. 딘타이펑의 딤섬도 좋아하고, 홍콩에서 다른 딤섬 집들도 가보고, 광저우에서도 딤섬집에 가보고 그랬지만 여기 딤섬이 가장 맛있었다.
이렇게 해서 덮밥 하나에 딤섬 총 5개를 시켰는데도 가격은 2만 원 정도. 말도 안 되는 엄청난 가격으로 굉장히 맛있는 딤섬을 먹을 수 있는 곳. 센트럴을 벗어나면 홍콩의 물가는 확실히 행복해진다.
5. Green Common Nan Fung Place
https://goo.gl/maps/LNDbVM6XWcL2
친환경 마트 같은 곳인데 그 안에 깔끔한 카페테리아가 있고 거기서 비욘드 버거를 판다. 여기는 길 가다가 발견한 후 오로지 비욘드 버거를 먹으러 간 곳이고, 전에도 적었듯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음료부터 종이 빨대, 그 외 각종 판매하는 상품들까지 모두 채식/친환경을 강조한 곳. 그중에서도 비욘드 버거가 압권이 아닐까 싶다.
함께 시킨 채식 치킨(이건 그냥 보통) 볶음 누들도 괜찮지만 비욘드 버거에 밀려서 큰 기억은 나지 않는다. 비욘드 버거는 3종류가 있었는데 그중에서 우리가 시킨 건 버섯이 들어간 버거. 아보카도가 들어간 것도 먹어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있었다면 한 번 더 갔을 곳이다. 그래서 아쉽다. 패티만 판매도 하던데 그걸 가지고 와서 집에서 해 먹고 싶지만 홍콩이라는 점이 함정. 서울에는 안 들어오려나.
가격은 서울의 일반 수제 버거와 비슷한 8,000원 내외 정도. 서울에도 생겼으면 좋겠다. 왜 서울에 좀 괜찮다는 채식은 샌드위치 같은 것도 다들 1만 원 중반대 내외냐. 너무 비싸다.
6. 호흥키 홍콩 공항점 (何洪記粥面)
https://goo.gl/maps/ZLwNMhavnpS2
홍콩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공항에서 완탕면과 소고기 누들을 먹었다. 보통 세계 어딜 가나 공항의 맛집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가격도 비싸고 맛은 별로. 그런데 홍콩의 공항은 시내에 있는 집들이 그대로 들어와 있어서 적어도 평균 이상은 해서 좋았다. 가격도 크게 비싸지 않았고.
호흥키는 유명하다던데 맛은 평균 이상 정도? 완탕면 깔끔하고 맛있었고, 소고기 누들도 괜찮았다. 다시 생각나거나 하는 맛은 아니지만 그래도 공항에서 이 정도 즐겁고 저렴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게 어딘가 싶다. <크리스탈 제이드>도 있던데. 거기도 시내 정도로 괜찮으려나. 홍콩 국제공항이 이 점 하나만큼은 참 마음에 들었다.
수인이를 위해 공기밥 하나까지 시켜서 가격은 2만 6천 원 정도. 다시 공항에 간다면(그럴 일이 있을까?) 다시 들릴 의향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