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여행의 매력
자동차 여행은 도보 또는 대중교통 여행과 확실히 다른 매력이 있다. 이동이 자유롭다 보니 더 많은 스팟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자연히 경로보다는 특정 스팟이 중심이 된다. 후쿠오카를 도보와 대중교통으로 다녀왔을 때는 걸어간 길들이 모여 한 도시의 기억을 완성했다면 자동차로 다녀오니 방문한 지점들이 모여 도시의 기억을 완성한다는 점이 다르달까? 물론 편하기는 자동차 여행이 훨씬 더 편하다. 4박 5일 동안의 일정에서 700킬로 넘게 운전을 했으니... 운전자만 조금 힘들면 된다. 그 정도는 충분히 감내할 수 있어 즐거웠다.
가끔 드라이브 그 자체가 목적인 구간도 있다. 아소산이 바로 그랬다. 아소산 부근을 자동차로 달리면 탁 트인 느낌과 색다른 풍경 덕분에 드라이브가 굉장히 즐겁다는 말을 듣고 일부러 아소산으로 향했는데 하필 그날따라 날씨가 너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못 봤다. 심지어 바로 앞에 가는 차량도 보이지 않아 조심히 운전해야 할 정도. 당연히 좌우에는 여기가 바다인지 산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하얀 안개뿐. 이번 여행에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다. 그러고 보니 12년 전에 엄마 아빠를 모시고 처음 왔을 때도 아소산에 들렀었는데, 그때는 날씨는 좋았지만 화산 활동이 너무 강해서 분화구는 보지 못했었다. 이래저래 아소산과는 인연이 없나 보다.
북큐슈는 참 다양한 매력이 있는 곳이었다. 대중교통으로 가기 힘든 많은 곳들이 있기에 자동차 여행이 딱 어울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우리의 발이 되어준 차는 도요타의 '시엔타'. 하이브리드라 연비도 좋고, 7인승이라 좌석도 부족함이 없었으며, 뒷좌석도 높아서 수인이가 카시트에 앉아서 창문 밖을 보기도 좋았다. 참 만족스러워서 우리나라에 정식 출시된다면 바로 바꾸고 싶을 정도.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출시되지 않는 차라 그저 좋은 기억으로만 간직하게 됐다.
재미있었던 곳 1. 타카야마 원숭이 공원
벳부 떠나기 전에 울타리 없이 일본원숭이들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해서 들렀다. 도착해서 짧은 모노레일을 타면 드디어 원숭이들이 있는 곳에 도착한다. 그냥 한두 마리 있는 수준이 아니라 엄청 많다. 오죽하면 모노레일 역에는 철망이 쳐져 있을까. 그 정도로 많아서 우리 가족은 내리기 전부터 살짝 흥분 상태가 됐다.
처음엔 조금 경계했는데 사람에게 큰 해를 주지는 않는 것 같아 조금 지나고부터는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그냥 동물일 뿐인데 참 신기하다. 원숭이들이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사람처럼 아기 원숭이를 안아주기도 하고, 엄마 원숭이가 아기 원숭이를 업고 이동하기도 한다. 원숭이들끼리 털도 골라주고 싸우기도 하는 모습은 꼭 사람 같기도 했다. 나중에 아내에게 들은 건데 어떤 아줌마의 재킷 주머니에 과자가 있었는데 한 원숭이가 잽싸게 낚아채 갔다고 했다. 역시 주의를 기울이긴 해야 하나보다.
홍콩에 다녀온 후로 원숭이 공포증이 생긴 수인이는 겁먹었는지 아빠 엄마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여기저기 잘 돌아다니고 신기하게 원숭이를 보기도 했지만 손은 절대 놓지 않는, 어디 놀러 가면 손 놓고 뛰어다니기 바쁜 우리 딸의 모습이 아니었다.
"수인아 저기 원숭이 보여? 원숭이 좋아?"
"응"
"원숭이랑 같이 살래?"
"아니."
"원숭이 무서워?"
"응"
귀여운 것. 역시 원숭이가 무섭긴 한가보다. 그래도 "일본 가서 뭐 봤어?" 하면 "욘기, 원숭이" 이러는 걸 보면 온천과 함께 원숭이가 기억에는 잘 남은 모양이다.
재미있었던 곳 2. 다케오 신사
후쿠오카에서 서쪽으로 2시간 조금 못 가면 다케오라는 곳이 있다. 크게 유명하지는 않은 곳인데 무려 3천 년이나 된 녹나무가 있다고 해서 일부러 찾아갔다. 대체 생물이 3천 년을 살면 어떻게 될까 궁금했다. 혹시 토토로 같은 신이 진짜 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다케오의 신사에 주차를 하고 나무로 향하는 길은 울창한 삼림이다. 마침 비가 내린 뒤라 숲의 상쾌함이 더 커졌던 것 같다. 이런 곳은 걷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대나무 숲 앞에서 사진을 찍어드린 엄마 아빠의 표정이 다른 어느 때보다 밝아 보이는 건 우연이 아니다. 수인이 역시 신나서 뛰어다녔다. 누굴 닮아서 저렇게 활발한지 늘 신기하다.
드디어 3천 년 된 녹나무 등장. 중간에 엄청나게 큰 구멍이 뚫려있고, 군데군데 죽은 가지 위로 새로운 가지들이 돋아나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산전수전을 다 겪으면 매끈할 수 없다. 불과 1백 년도 못 사는 사람 역시 그런데 나무는 오죽하랴. 오랜 세월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나무를 보니 절로 숭고해졌다. 나무 하나 보겠다고 1시간 넘게 운전을 해서 온 과정이 전혀 아쉽지 않았다. 내 눈으로 보지 못한다 해도 이런 나무에는 신령이 산다고 해도 믿겠다. 우연이었을까. 신사에서 나오다가 돌멩이 하나를 주운 수인이는 차에서도 내내 그 돌멩이를 소중하게 쥐고 놓지 않았다. 누가 줬냐고 물어보니 "나무 하찌찌"가 줬다고 했다. 하찌찌는 할아버지다. 갑자기 하찌찌라니, 아이에게는 나무에 사는 할아버지가 말을 걸었을까? 아마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재미있는 아이, 수인이
서울과 광양을 수없이 오가며 어릴 때부터 장거리 자동차 여행에 완전히 익숙해진 수인이는 일본에서도 의연하게 잘 다녔다. 이동할 때는 카시트에 앉아 <로보카 폴리> 음악을 듣거나 잠을 자며 휴식을 취하고, 내려서는 신나게 뛰어다닌다. 기차 여행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고 잠시 생각해봤는데 끔찍했다. 어렸을 때도 기차 여행은 힘들었다. 독일에서는 아이를 안고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국내에서 가끔 기차를 탈 때가 있는데 짧은 거리도 힘들다. 버스에서는 그나마 창밖을 잘 보고 있는데 기차는 재미가 없나 보다. 여기저기 다니고, 도저히 안될 때는 태블릿을 보기도 하면서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린다. 역시 아이와 함께 여행 하기에는 자동차만 한 것이 없다. 이런 아빠의 고생을 알까? 만약에 말을 할 줄 안다면 아마도 "그럼 누가 데리고 다니래?"라고 할 것 같다.
수인이는 갑자기 일본에 와서 자판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어딜 가나 자판기가 있으면 거기 매달려서 이것저것 눌러보면서 도통 자리를 뜨려고 하지 않는다. 정말 종잡을 수 없는 아기다. 그래도 예쁘게 잘 다니니 얼마나 다행인지. 우리 부부와 엄마 아빠 모두 즐겁게 웃으며 여행했던 건 수인이 덕분이었다.
가장 맛있었던 것, 장어 덮밥
히타라는 곳에 유명한 장어 덮밥집이 있다고 들었다. 일본 왔으니 거기를 갈까 하다가 우리 숙소가 있었던 우키하라는 곳에도 유명한 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히타의 음식점이 방문하는 모두에게 유명한 곳이라면 여기는 지역민들에게만 유명한 정도가 차이랄까. 대신 가격은 어떤 건 거의 1,000엔가량 저렴했다. 평을 믿고 가까운 곳에 한 번 가보기로 했다.
평일 오전, 오픈 시각인 11시에 조금 못 미쳐서 도착했는데 벌써부터 대기팀이 2팀 있었다. 그리고 11시가 되니 한 팀씩 안내를 해줬다. 관광객이 아예 오지 않는 곳이다 보니 온통 일본어뿐이라 부족한 실력으로 검색을 해가며 2가지를 시켰다. 주차장이 금방 차들로 가득 차고 사람이 계속해서 들어왔다. 역시 유명한 곳은 다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깔끔하고 맛있는 일본 녹차가 먼저 나오고, 이윽고 장어 요리가 등장했다. 아래 왼쪽 사진이 세이로무시, 오른쪽 사진이 우나기동이다. 둘 다 장어 덮밥인데 조리법이 조금 달랐다. 나중에 주방을 살짝 보니 우나기동은 잘 지은 밥에 별도로 양념해서 구운 장어를 올린 것이고, 세이로무시는 찬합 같은 곳에 밥과 장어를 함께 찐 요리였다. 우나기동도 맛있었지만 세이로무시가 더 맛있었다. 양념이 잘 벤 밥에 달콤 쫄깃 부드러운 장어가 곁들여지니 계속해서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 세이로무시의 가격이 조금 더 비쌌지만 그래 봤자 2천엔 초반이라 매우 저렴하다. 아침에 밥을 든든하게 먹었어도 엄청 만족스러웠던 한 끼. 일본에서 돌아온 후 다시 먹고 싶은 음식을 하나만 꼽으라면 주저 없이 저 세이로무시를 꼽겠다.
うなぎの千年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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