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힘들었던 하루

고난의 몬세라트

by 본격감성허세남

정말 힘든 하루였다. 몬세라트가 이렇게 힘든 곳이었을 줄은. 예전에 아무 정보도 없이 방문했다가 매우 인상 깊어서 이번에 다시 간 건데 여러 가지가 다 겹쳐 더 힘들었던 하루였다. 시작부터 끝까지, 여행 내내 가장 힘들었던 날.


1. 만원 지하철

몬세라트에 가기 위해서는 에스파냐 광장 역으로 가야 한다. 여유롭게 챙겨서 숙소를 나와 지하철역으로 갔는데 하필이면 출근 시간에 걸렸나 보다. 평일 8시가 조금 넘은 시각. 지하철이 왔는데 초만원이었다. 심지어 역마다 못 타는 사람들도 많을 정도로 만원이라 그냥 타도 힘든데 그 속을 유모차와 6살 아이와 함께 탔으니. 모여서 서 있을 수도 없어서 조금 떨어져서 나와 아내가 각각 한 명씩 맡아서 혹시 무슨 일이 없을지 노심초사하며 20분가량을 갔다. 차라리 조금 더 일찍 나올 것을. 여행을 떠나온 길이라 시간 개념이 없었다. 한국에서는 이 시간에 절대 아이들을 데리고 지하철을 안 탔을 텐데.


2. 너무나도 뜨거운 태양

에스파냐 광장 역에서 힘들게 기차로 갈아탔다. 다행히 간이 좌석이 있긴 했지만 몬세라트 가는 기차 역시 만차. 확실히 유명 관광지긴 한가 보다. 내리면 이런 광경이 보일 정도니까. 우리는 케이블카를 탔는데 케이블카 기차역에 내려서 이 광경을 보는 순간 절로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사진 2019. 6. 27. 오후 5 39 09.jpg 노란 케이블카를 타고 위까지 올라간다


문제는 태양이었다. 바르셀로나에 온 후로 가장 더웠던 날. 온도는 30도 정도로 막 높지는 않은데 태양이 너무나도 뜨거워서 몸이 익어가는 느낌이었다. 혹시라도 산 위로 올라가면 조금 시원하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었지만 웬걸. 더 더운 느낌이었다. 게다가 바르셀로나 시내는 걷기 좋게 가로수라도 많지, 몬세라트 수도원에서는 대부분 태양을 그냥 온몸으로 맞아야 했다. 비타민 D가 마음껏 합성될 테니 긍정적이라 생각해야 했으려나.


사진 속 하늘이 마치 합성을 한 것 같다. 정말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태양이 한껏 그 강함을 뽐내고 있으니 우리 가족 모두 이 날씨 때문에 더 지쳤다. 바르셀로나에서 방문한 모든 곳에서 겨울보다 여름이 더 좋았지만, 몬세라트 이곳은 겨울에 방문하기가 더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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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래도 좋았던 점

비록 뜨거워서 조금만 걸어도 금세 지쳤지만 그래도 몬세라트 수도원에 좋았던 기억은 있다. 더위를 피해 들어갔던 시원한 성당 안, 그 안에서 잠깐 맛본 객원 합창 공연(실력은 별로였는데 일단 분위기가 다 이겼다), 그리고 엄청난 주변의 자연경관. 힘들었지만 나중에 생각했을 때 가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 이유이기도 하다.


양초를 사서 우리의 작은 소원도 빌었다. 작은 종이 한 장에 우리의 소원을 적어서 넣고 오기도 했다. 사실 이런 게 효과가 정말 있는지는 의문이긴 하지만 그냥 재미니까. 수인이는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제법 진지하게 빌던데. 물어봐도 제대로 대답을 못 하는 걸 보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를 빌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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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오아시스였던 성당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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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남기고 온 몬세라트


4. 더 큰 고난의 시작

날씨가 너무 더워서인지 수인이가 평소보다 더욱 걷기 싫어했다. 걸핏하면 원영이가 타는 유모차만 타려고 한다. 아무리 달래고 달래도 안 들어서 결국엔 이 더운 날씨에 원영이를 아기띠에 태우고 수인이를 유모차에 태울 수밖에 없었다. 아마 여기서 그쳤다면 더 큰 고난은 없었겠지만...


저 멀리 십자가가 보이는 곳에 가면 몬세라트 수도원이 주변의 산과 어우러져 정말 멋지게 보인다. 대신 20분~30분가량을 걸었던 걸로 기억이 났다. 아내에게 가볼까 하고 물어봤다.


"그래도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 좀 고생하더라도 가보는 게 낫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산책을 가기로 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길을 잘못 들어 버렸다. 분명히 전에 나 혼자 왔을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계속해서 계단이 이어지고, 심지어 오르막이 나왔다. 수인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계단을 올라갈 자신이 없어서 자꾸 일어나라고 했다가 다시 타라고 했다가 하니 더 힘들었다. 중간에 수인이가 쉬가 마렵다고 해서 주변에 화장실도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노상방뇨를 시켰는데 하필 우리 딸은 팬티와 바지를 적셔버렸다. 휴.


온갖 고난을 맛보며 10분 넘게 걸었나, 길 끝에 가니 큰 길이 나왔다. 알고 보니 우리가 간 길은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간 길을 비슷하게 해 놓은 그런 길이었다. 표지판에 나와있던 십자가는 우리의 목적지인 십자가가 있는 저 먼 곳이 아니라 그 고난의 십자가를 뜻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더위와 아기띠와 유모차를 메고 그 길을 간 셈이다. 심지어 수인이를 안고 유모차를 들다가 바지가 유모차에 끼어서 바지까지 조금 찢어지고 말았다. 알고 보니 목적지의 십자가는 따로 있더라. 처음 왔을 때도 전혀 헤매지 않았던 길인데 더워서 정신이 없었나 보다.


5. 포기

이제 계단도 없는 수월한 길에 접어들었으니 본격적으로 힘을 내서 가보려고 하는 찰나에 수인이는 유모차에서 잠에 들었다. 그러다 보니 유모차는 더 무겁고, 햇살은 점점 더 강해지고, 원영이까지 아기띠에서 잠이 들고. 중간에 가다 보니 유모차를 들어야 하는 부분이 있어서 우리는 결국 포기하고 다시 수도원으로 돌아갔다.


여기에서 포기


수도원 카페에서 잠시 쉬며 맥주를 한 캔 원샷하는데 그제야 정신이 조금 들었다. 원영이도 잠에서 깼다. 수인이는 여전히 곤히 잤다. 포기하기를 잘했지, 아마 이 시간이 없었으면 돌아갈 힘도 없었을 거다. 원영이는 시원한 곳에 와서 그런지 기분이 좋아졌다. 아빠랑 셀카도 찍고. 더위에 아빠 엄마를 따라다니느라 네가 고생이 많다. 이 날은 원영이에게 조금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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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기차를 잘못 탔다

이날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케이블카를 다시 타고 내려와서 바르셀로나로 돌아가는 기차도 잘못 탔다. 열차가 왔는데 우려와 다르게 자리가 텅텅 비어 있었다. 우와 운 좋다 하면서 앉아서 여유롭게 가고 있는데 지도 앱을 켰더니 자꾸 멀어지고 있었다. GPS가 이상한가 하던 찰나, 20분을 넘게 갔는데 열차가 정말 오랫동안 대기를 하고 있었다. 아니 큰 도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중간에 왜 이렇게 대기를 오래 하나 싶어 역을 봤는데 종점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반대 방향 기차를 탄 것을. 여행 다니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결국 바르셀로나까지 1시간 40분가량이 걸렸다. 그래도 하나 다행인 점은 에어컨 나오는 시원한 기차에서 잘 쉬었다는 점. 물론 안에서도 힘든 점은 있었다. 잠에서 깬 수인이가 5초도 안 쉬고 계속 떠들어대서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으니. 예전에 수인이는 말이 느려서 주변의 걱정을 많이 샀다. 세 돌이 될 때까지도 말을 잘 못 했다. 그런데 지금은 잠시도 쉬지 않고 종알종알 떠든다. 전에는 말 좀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말 좀 그만 하라고 하는 지경이 되었다. 물론 그 말을 들을 리는 없다.


7. 정신없는 저녁

녹초가 되어 에스파냐 광장 역에 와서 숙소로 가려다가 저녁을 먹기로 하고 주변 쇼핑몰로 들어갔다. 대충 골라서 빠에야와 타파스 몇 개를 시켰는데 그래도 음식이 괜찮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드디어 힘든 하루가 끝났다는 안도감과 함께 긴장도 풀어져서 살짝 나른해질 찰나, 잘 자던 원영이가 깼다. 그래서 나와 아내는 번갈아가며 원영이를 밀고 다녀야만 했다.


저녁을 먹고 거기 있는 슈퍼에서 장을 보고 가기로 했는데 원영이의 분유가 다 떨어져 버렸다. 비상 상황. 곧 먹여야 하는데. 할 수 없이 포기하고 숙소로 향했다. 원영이의 분유 텀이 길어지는 것만큼 괴로운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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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위로해줬던 맛있는 저녁


8. 난폭 택시

지하철을 타고 갈 힘도 없고 시간도 여의치 않아서 앱으로 택시를 불렀다. 처음에 공항에서 숙소로 갈 때는 기사님이 너무 좋았고, 구엘 공원 갈 때 기사님도 무난했다. 그런데 에스파냐 광장에서 숙소로 갈 때의 기사는 정말 최악이었다. 덕분에 마지막까지 힘든 하루, 운전이 얼마나 난폭했는지 한국의 택시 기사들은 매우 정숙한 수준일 정도였다. 엄청난 클랙션에 차선 급 변경, 급 정거는 기본. 결국 수인이는 멀미가 나는지 배가 아프다며 엉엉 울기 시작했고 그걸 본 원영이도 따라 훌쩍거리기 시작하니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집에 와서 씻기니까 수인이와 원영이 모두 금방 잠에 들었다. 드디어 길고 힘들었던 하루가 끝이다. 오늘 느낀 것. 애 둘 데리고 교외에 가려면 무조건 차 렌트를 해야 한다. 특히 더운 여름엔 더더욱. 교토에서 힘들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차 렌트 때문이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이런 날도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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