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듯 매우 다른 모습

하루 종일 쇼핑몰

by 본격감성허세남

아이들이 시차 적응이 완전히 된 모양이다. 한국에서처럼 아침에 7시가 넘어서야 일어났고, 저녁에는 9시가 넘어서 잠이 들었다. 약 3일 정도 걸린 셈이다. 기특한 것들. 특히 원영이가 이렇게 잘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얼마나 다행이며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여행 체질인 우리 아이들. 그만큼 앞으로도 더 열심히 여행 다녀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했다.


어제 몬세라트에 다녀오느라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아침에는 한층 더 늑장을 부렸다. 아침을 해 먹고 나서도 한참 놀다가 오전 11시가 다 돼서야 집을 나섰다. 마침 사놓은 먹거리가 다 떨어져서 이번에는 처음에 갔던 Condis보다 더 큰 Carrefour에 가보기로 했다. 다행히 숙소에서 운동 삼아 15~20분 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거리다. 이번에 여행 와서도 주로 숙소에서 많이 해 먹고 있다. 수인이가 밥을 먹긴 해야 하니 한국 슈퍼에 가서 햇반이랑 가끔 먹을 간단한 인스턴트 미역국만 사 오고, 나머지는 현지 슈퍼에서 이것저것 사서 해 먹고 있다. 하루에 보통 한 끼 정도 바깥에서 사 먹는 정도다. 다행히 바르셀로나 슈퍼는 식재료도 정말 많고 냉동식품 같은 것들의 가격도 서울보다 살짝 저렴해서 슈퍼에 가는 재미가 있다. 특히 좋은 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스페인의 과일! 수박도 정말 싸고 복숭아도 맛있어서 과일을 좋아하는 나에겐 너무너무 좋다.


숙소 앞에 100년 조금 넘은 빵집이 있다고 해서 바게트를 사봤다. 수인이는 놀랍게도 바게트를 정말 좋아한다. "바게트 사주세요."라고 먼저 말할 정도다. 달콤한 빵들은 잘 먹지도 않으면서 바게트는 하루에 한 개씩 사서 먹고 있다. 신기한 아이야. 바게트야 어디든 팔고 각각 맛도 다르니 다양하게 맛보는 재미도 있고, 가격도 1유로 정도로 매우 저렴하니까 부담도 없다. 수인이의 이런 식성이 고마울 따름이다. 100년이 넘었다니 기대했는데 그냥 평이해서 좀 실망하긴 했지만 그래도 바게트는 바게트다. 담백하고 맛있다. 무엇이든 잘 먹는 원영이는 옆에서 자꾸 보채길래 부드러운 부분 매우 조금 잘라서 줘봤더니 이것조차 잘 먹는다. 음... 이유식 먹는 아이에게 바게트 줘도 되려나 싶지만 뭐 잘 먹고 이후에 큰 탈도 없었으니 괜찮겠지. 여행 내내 누나 덕분에 원영이도 바게트를 많이 먹었다.


바게트 매니아 수인과 먹는 걸 주면 그저 좋은 원영


숙소에서 까르푸까지 가는 길은 상당히 재미있고 좋다. 나무가 우거지고 걷기 좋아서 우리가 사랑하는 길을 지나면 로컬 시장이 나온다. 람블라 거리에 있는 보께리아 시장이 관광객들을 위한 시장이라면 여기는 철저하게 현지인을 위한 시장이다. 건물도 상당히 특이하고 팔고 있는 것들도 보께리아 시장 못지않게 다양한데 사람이 많이 없으니 구경하는 맛도 있는 그런 시장이다. 수인이가 좋아하는 탈 것 놀이기구도 있고.


시장을 지나서 조금 걸어가면 가로수가 오렌지 나무다. 우와. 역시 햇살이 뜨거운 곳!


"수인아 저기 봐봐. 나무에 오렌지가 달려있어!"

"어디? 어디? 우와. 한 번 먹어볼까?"

"아니, 저건 먹는 게 아니야. 봐봐 곳곳에 떨어져 있잖아."


그런데 진짜 가로수의 오렌지는 버리려나. 문득 궁금해졌지만 물어볼 곳이 없으니 알 길은 없다.


더 걸어가면 공원이 나오는데 여기는 나무가 정말 특이하다. 마치 소실점과 원근법을 배울 때 나온 것 같은 그런 나무다. 한국에서 볼 수 없는 나무다 보니 보는 재미가 있는 그런 길. 그리고 여기를 지나면 이윽고 까르푸가 있는 Glòries 쇼핑몰이 나온다. 바로 옆에는 바르셀로나의 또 다른 랜드마크인 아그바 타워도 보인다.



원래는 쇼핑을 금방 하고 곧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예상외로 쇼핑몰이 너무너무 좋았다. 그래서 그냥 하루 종일 있어 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까르푸에서 예정대로 장을 본 것 빼고는 특별히 산 것도 없다. 우리에게 쇼핑몰은 쇼핑이 아닌 시간을 보내기 위한 곳. 여기엔 수인이가 즐길 거리들이 굉장히 많았다. 뜨거운 햇살을 피해 실내에 있는데 즐길거리까지 많으니 수인이는 아주 신이 났다. 아이들을 위한 공간에서 놀기도 하고,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 열심히 뛰어다니기도 했다.


특히나 좋았던 곳이 장난감 매장이었다. 세계 어디를 가나 장난감 매장은 꼭 가야 한다. 그런데 여기엔 심지어 관람차까지 있었다. 처음에 관람차를 보고 깜짝 놀라서 어떻게 타는지, 그리고 가격이 얼마인지 궁금했는데 가격까지 무료란다! 그럼 타야지. 원영이와 나는 아래에서 기다리고 수인이와 아내만 신나게 탔다. 이후에 장난감 코너들도 여기저기 다 둘러봤다. 몬세라트에서는 그렇게 칭얼대던 수인이가 엄청 힘이 넘치면서 표정까지 세상 즐거우니 보는 우리 역시 절로 흐뭇해졌다. 그래, 이런 날은 그냥 여기에 있는 거지. 마침 원영이도 더울 일 없고 얼마나 좋니.


쇼핑몰에서 먹은 살짝 늦은 점심 역시 굉장했다. 채식 레스토랑인데 런치 메뉴다 보니 가격도 저렴하고 먹고 나서 부담도 없으면서 맛도 있었다! 외국엔 이런 채식 레스토랑이 꽤 많아서 좋단 말이야. 서울에도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좀 저렴하게.


장난감 가게에서의 즐거운 시간


여기서 찍은 사진 중에 수인이가 정말 좋아했던 사진이 있다. 레고 매장 근처에서 내가 수인이랑 셀카를 한 장 찍었는데 그 사진 뒤에 절묘하게 도둑이 나와 있었다. 물론 레고 도둑 모형이다. 그 사진이 어찌나 재미있는지 수인이는 여행 끝날 때까지 수시로 보여달라고 독촉을 했다. 그리고는 꼭 이렇게 말을 해야 했다.


수인: "아빠랑 같이 사진을 찍는데, 도둑이!"

나: "너 이 녀석들!! 내 집에 오다니!"

수인: "아하하하하하하"


심지어 어린이집에 가서 주말 지낸 이야기를 할 때 이렇게 말하겠다고 했다.


"수인이는 주말에 바르셀로나에 가서 아빠랑 사진을 찍었는데 도둑이 보고 있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바르셀로나 과연 돌아다녀도 괜찮은가 생각할 듯한 그런 말. 별것 아닌 사진 한 장으로도 이렇게나 즐겁다니. 웬만한 명소보다도 이 쇼핑몰에서의 시간이 더 좋았다. 아마 혼자 왔으면 절대 느끼지 못할, 가족 여행만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어디를 갔느냐보다 가서 어떻게 시간을 보냈느냐에 더 집중하게 되니까 거기서 색다른 즐거움이 생기는 것 같다.


아빠랑 사진 찍는데 뒤에 도둑이!


쇼핑몰에서 5시간을 넘게 보내고,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와서 저녁을 해 먹고, 애들은 9시가 넘어서 잠에 들었다. 그 후론 여유로운 우리만의 시간이다. 이 시간이 정말 매력적이고 소중하다. 비록 바깥은 너무 밝아서 여전히 적응이 안 되지만.


한국에서도 특별히 할 일이 없으면 영등포 타임스퀘어에 자주 간다. 가서 마트에서 장만 보고 나머지는 장난감 구경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낸다. 크게 보면 이 날 하루는 한국에서의 많은 날들과 똑같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중간에 마주하게 되는 풍경들, 쇼핑몰에서 파는 것들, 먹는 것과 사람들까지. 하나하나가 완전히 달랐다. 그리고 그런 새로움 덕분에 더 즐거웠다. 아이와 함께 여행을 오면 랜드마크를 자세히 보거나 안에 들어가거나 하기는 어렵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역시 실내에 들어가는 건 과감하게 포기를 했다. 대신 한국에서와 비슷하게 육아를 한다. 그래도 새로운 환경에서 하는 육아는 우리 부부와 아이들 모두에게 신선한 자극을 준다. 힘들고 포기하는 것도 많고 아이들이 기억도 못 하는데 왜 가냐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하지만 포기하는 대신에 전혀 새로운 즐거움이 생기니까, 매일 하는 육아가 지겨우면 장소를 바꿔서 육아를 해보라고 다른 부모들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처음이 어렵지 한 번만 해보면 곧 또 새로운 여행을 꿈꾸게 된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