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비다보 놀이공원

예상 밖의 큰 즐거움

by 본격감성허세남

오늘은 빨래하는 날. 적당히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집에서 적당히 놀다가, 집 근처 빨래방을 찾아서 빨래와 건조를 돌렸다. 빨래방이 지금까지 가본 곳 중에 가장 최신식이다. 중앙 제어하는 기기에 결제를 하고 건조 시간과 온도 등까지 선택하면 거기에 맞춰 금액이 나오고 결제하면 끝. 세제 어떻게 넣나 그런 거 고민할 필요도 없이 알아서 들어간다. 우와. 쉽고 편리하다.


여행이 길어지다 보니 이런 평범한 일상이 바르셀로나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수인이와 원영이도 이제 완전히 적응해서 한국에서처럼 지내고 있다. 아니, 더 잘 지낸다. 정말 여행 체질일지도 모르겠다. 컨디션도 더 좋아 보이고, 강한 햇빛으로 비타민 D를 마음껏 합성해서 그런지 아픈 곳도 없다. 원영이는 어디서든 분유 역시 남기지 않고 삑삑 공기 소리가 날 때까지 다 먹는다. 참 신기한 녀석. 태어났을 때 바로 다른 병원으로 옮겨서 신생아 중환자실에 한참 있었기 때문에 이후에 혹시 건강에 문제는 없을지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이제 그런 걱정은 모두 사라졌다. 이렇게 먼 곳까지 여행 와서도 잘 지내는데 무슨 문제가 있으랴. 이번 여행 덕분에 원영이의 건강에 대한 확신이 더 생겼다.


빨래가 진행되는 동안 근처의 산트 파우 병원을 가봤다. 역시나 가우디가 설계했다는 곳. 한 사람의 영향력이 이렇게 도시 전체에 퍼져있는 사례가 바르셀로나와 가우디 말고 또 있을까. 게다가 작은 도시도 아니고. 대단한 사람이다 정말. 그 근처에 무심코 들어간 커피숍도 굉장히 좋았다. 커피와 케이크가 최고로 맛있어서 깜짝 놀란 곳. 눈도 즐겁고, 입도 즐겁고, 여유롭고, 참 즐거운 오전 시간.


수인이는 어딜 가나 안내 책자를 다 챙긴다. 그리고 그곳의 책들도 좋아한다. 산트 파우 병원에 있는 서점에서 바르셀로나의 곳곳을 자세하게 알려주는 책을 샀더니 그걸 소중하게 꼭 껴안고 이후로도 수시로 펴보면서 놀았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바다! 여기서 원영이 맘마 먹었지."

"구엘 공원!"


이제 여행이라는 개념도 완전히 섰고, 어디 갔는지 기억도 다 하고, 이야기도 할 줄 알고. 기특하다.


빨래하는 동안 주변 산책이 이런 곳


빨래는 매우 잘 됐다. 뽀송뽀송. 빨래를 챙기고, 집에 오는 길에 슈퍼에 들러서 이런저런 먹거리도 사고, 집에 돌아온 후에는 점심을 간단히 먹고 낮잠을 푹 잤다. 어차피 해는 기니까 더울 때는 이렇게 잠을 자줘야지. 아이들과 함께 다니면서 이렇게 여유 있게 일정을 잡다 보니 이제는 전처럼 바쁘게 못 다닐 것 같다.


푹 자고 일어나서 원래는 케이블카를 타고 몬주익 성에 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곧 돌아오는 일요일에 몬주익 성이 무료입장이라는 정보를 얻어서 계획을 급 변경하고 고른 곳이 티비다보 놀이동산이었다. 기왕에 이렇게 된 거 수인이나 즐겁게 해 주자는 생각으로 잡은 곳이었는데 돌아보면 굉장히 좋은 선택이었네!


집에서 5시가 다 돼서 나왔다. 티비다보 놀이공원에 가기 위해 카탈루냐 광장까지 가서 셔틀버스로 환승. 푹 자고 일어나서 우리 모두 기분이 좋다. 원영이가 특히 신났다. 그렇게 30~40분 정도 갔나. 드디어 놀이공원에 도착했다.



우와! 무슨 놀이공원이 산 위에 있니! 날씨가 그야말로 눈이 부신데 이런 날씨에 산 위에 있는 놀이동산에서 바르셀로나 시 전체를 살펴보니 정말 장관이었다. 놀이공원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져 있었다. 놀이기구를 타는 곳은 자유이용권 같은 걸 끊어야 됐고, 파노라마 지역은 입장료 없이 그냥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러다가 파노라마 지역에 있는 놀이기구를 타고 싶으면 1인당 2유로만 내면 됐다. 이렇게 영업을 해도 유지가 되나 싶을 정도로 저렴했지만 그건 어차피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고, 일단 너무너무 좋았다.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


놀이공원 입구에 사크레쾨르라는,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에 있는 성당과 동일한 이름의 성당이 이곳에도 있었다. 그 성당도 참 멋있더라. 보기 드물게 여러 가지로 눈이 호강하는 놀이공원이다.


티비다보에서 바라본 바르셀로나 시가지


놀이공원에 왔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놀 시간. 원영이는 아직 탈 수 있는 게 없어서 보기만 했으니 그게 좀 미안하네. 누나가 이렇게나 신나 했으니 좀 봐주렴.


대관람차

알록달록 예뻐서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놀이기구. 엄청 큰 규모는 아닌데 심지어 뚫려 있어서 더 아찔했다.


회전목마

어디서나 재미있는 회전목마


비행기

2차 세계대전에 쓰였을 것 같은 옛날 비행기(실내도 그렇게 꾸며져 있다)를 타고 주변을 몇 바퀴 돈다. 물론 비행기는 놀이기구에 고정된 상태. 신선한 재미를 줬던 곳


수직으로 높게 솟는데 창문 없이 역시나 뚫려있어서 아찔했던 놀이기구가 있는데 그것만 빼고 수인이는 나머지를 다 탔다. 얼마나 신났는지 얼굴에서 웃음이 끊이질 않더라. 규모로 보면 에버랜드나 롯데월드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눈부신 날씨와 엄청난 경관, 그리고 수인이가 타기에 딱 좋은 놀이기구로 더없이 즐거웠던 곳.



9시가 넘어서 집으로 향했다. 멀리 산 너머로 해가 지고 있었다. 스페인에 와서 처음으로 제대로 일몰을 봤다. 아름다워서 버스 기다리면서 한참을 보고 있었다.


"저건 몇 살 때 탈 수 있어요?"

"응 저건 10살 때 탈 수 있어."

"10살 때? 그럼 나 다시 와서 탈래."


혹시 다음번에 오면 파노라마 영역 말고 놀이기구까지 태워줄게. 바르셀로나에 다시 온다면 여기는 꼭 다시 오자 수인아.


산 너머로 해가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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