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다음에 또 올게!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날

by 본격감성허세남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밤. 숙소를 산츠역 근처로 옮겼다. 다음날 기차를 타고 파리로 가는데 아침 7시 기차라 최소한 6시 반까지는 기차역으로 가야 하는데 아이들과 짐을 다 들고 지하철 또는 택시를 타고 그 시간에 기차역으로 올 자신이 없었다. 조금 비싸고 좁더라도 일단은 기차역까지 걸어서 갈 수 있는 숙소에 묵는 것이 최선이었다.


짐을 아무리 줄이고 줄였다 하더라도 성인 2명과 아이 2명의 짐을 다 합하면 30킬로가 넘는다. 그 캐리어와 가방을 끌고 어딘가로 이동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힘들다. 게다가 새로운 숙소 체크인까지도 3시간가량이 남은 상황. 일단 마지막으로 사그라다 파밀리아 한 번 더 보고 근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날은 더운데 무거운 짐을 끌고 가니 땀이 계속 쏟아지고, 게다가 카페에는 에어컨이 왜 이렇게 약한지. 원영이 분유를 탈 보온병을 체크아웃 한 숙소에 두고 와서 혼자서 거기까지 다시 걸어서 다녀왔다. 찾았기에 다행이긴 하지만 땀이 더욱 비 오듯이 흐르기 시작했다. 시간이 되어 산츠역까지 이동하고, 내려서 짐을 끌고 또 숙소까지 이동하고, 이 힘든 과정을 거친 끝에 드디어 새로운 숙소에 도착했다. 참으로 힘든 오전이었어.


하지만 그렇게 힘들게 온 새로운 숙소가 영 별로였다. 보기엔 멀쩡한 아파트였는데 자세히 보면 곳곳에서 문제들이 발견됐다. 보온포트는 속이 너무 더러워서 못 썼고, 주방의 장에는 누가 쏟았는지 식용유가 흥건, 에어컨은 전기 용량 문제인지 금방 꺼져버려서 주인을 불러서 한참이나 고친 끝에 가동이 됐는데 그나마도 안방 에어컨은 냉기가 나오지도 않았고 거실 에어컨 역시 일정 시간이 지나니 다시 꺼져버렸다. 화장실에서는 뭔가 꾸리꾸리 한 냄새가 나고, 잠자리는 침대 2개 중에 1개가 소파 베드여서 불편. 어제까지 7박 동안 정말 편하게 묵었던 이전 숙소가 무척이나 그리웠지만 1박만 참자는 마음으로 일단 묵을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날에 무얼 할까 하다가 캄프 누로 향했다. 비시즌이라 경기는 보지 못하지만 아내에게 FC 바르셀로나라는 세계 최고의 클럽을 조금이나마 보여주고 싶었다. 나에게 바르셀로나는 누가 뭐래도 축구의 도시다. 아빠 엄마는 힘들지만 원영이는 일단 밖에 나오니 오늘도 신났다. 다행이다, 너희들이 잘 지내서. 그거면 됐다.


사진 2019. 7. 2. 오전 1 08 40.jpg 아빠 오늘은 또 어디로 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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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프 누에는 뭔가 말로 표현 못할 아우라가 있다. 시설이 최신도 아니고 경기장이 멋있게 생긴 것도 아니지만 일단 문만 봐도 뭔가 흐뭇한 기분이 들고, 닫힌 문 너머로 살짝 보이는 초록빛 필드만 봐도 괜히 흥분됐다. 그래, 전에는 혼자 와서 여기서 몇 경기나 보고 그랬지. 수인이가 태어나기 전에 우리 부부는 거의 주말마다 축구장에 다니곤 했었다. FC 서울의 팬으로 매주 경기를 챙겨보며 가끔은 다른 도시로 원정도 가곤 할 정도였다. 스포츠를 함께 즐긴다는 건 장점이 많다. 뭘 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고, 보면서 화를 내거나 기뻐하거나 하면서 많은 기분을 체험할 수도 있고, 보고 나서도 이야기할 거리가 많이 생긴다. 하지만 육아가 시작되면서 우리 부부의 축구장 나들이는 끝났다. 1년에 1번 정도 내가 아내의 특별 허락을 받아서 혼자 간 적은 있지만 그것도 매우 드문 경우였다. 언젠가 우리 부부만 바르셀로나에 또 온다면 그때는 캄프 누에서도 꼭 함께 경기를 보고 싶다.


수인이는 뭐가 좋은지 계단에서 계속해서 풀쩍 뛰고, 원영이는 축구장에 왔다고(?) 발을 열심히 먹고, 사람도 별로 없어서 여유롭게 여기저기를 산책하듯이 돌아다니다가 FC 바르셀로나 샵에 들어갔다. 이런저런 물품들을 구경하는 도중에 수인이에게 모자를 씌워주고 가방을 줘봤더니 갑자기 이런 말을 했다.


"아빠 엄마 나 축구 천재가 됐어요."


응? 축구 천재? 어디서 그런 소리를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덕분에 우리 부부는 한참이나 웃었다. 생각하는 게 어쩜 그렇게 깜찍하고 귀엽니. 우리 예쁜 딸.


사진 2019. 7. 2. 오전 1 37 45.jpg 자칭 축구 천재가 된 수인이


마지막으로 까사 바트요와 그 주변을 다시 한번 둘러보러 갔다. 그리고 카탈루냐식 음식을 파는 식당에서의 저녁으로 바르셀로나에서의 시간을 마무리했다. 여행이 길어지니 수인이가 자꾸 안아달라고 하는 빈도가 늘어나고 원영이도 조금씩 더 보채곤 한다. 덕분에 마지막엔 살짝 힘들었지만 그래도 바르셀로나는 끝까지 아름다웠다. 건물도 멋있고, 걷기에도 좋고, 날씨도 딱 좋고. 무엇보다도 아무 탈 없이 마지막 밤까지 잘 마무리했기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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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은 전 지역이 외교부 지정 여행유의 지역이다. 특히 바르셀로나는 최근에 소매치기가 급증했다고 해서 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바르셀로나 일정을 대폭 축소하고 다른 곳에 가려고 검토도 많이 했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 인-파리 아웃의 비행기표를 구입한 상태에서 중간에 다른 곳으로 가려면 이동 시간도 너무 길고 해서 취소하고 원래 계획대로 바르셀로나에 있기로 했다. 만약에 계획을 바꿨다면 어쩔 뻔했니! 이렇게 좋은 도시를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놓칠 뻔했으니. 바르셀로나는 혼자 와도 좋았고, 가족이 함께 와도 좋았다. 공원, 놀이터, 가로수가 우거진 산책로들도 많아서 아이와 함께여도 좋았다. 덕분에 묵는 내내 기분이 좋았던 곳이다.


사람마다 다르다곤 하지만 우리가 경험한 바르셀로나는 전혀 위험하지 않았다. 딱 한 번 소매치기를 본 적은 있다. 지하철에서 유모차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앞에서 타지 않고 기다리던 여자 2명 정도가 우리 뒤에 따라서 타더라. 올라가는 도중에 기침을 콜록콜록하길래 혹시라도 아이들에게 옮을까 봐 주의하고 있었는데 아내가 메고 있던 가방의 한쪽 잠금장치가 풀렸다. 하지만 가방을 열려면 잠금장치에 이어 찍찍이까지 뜯어야 한다. 찍찍이 소리가 나자 급 당황한 소매치기들은 곧바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모른 척을 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에서 우리가 내리자 따라 내리지 않고 다시 내려갔다. 사실 그땐 몰랐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기침은 주의를 돌리기 위한 신호였고 그들은 소매치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뒤로는 소매치기 비슷한 사람도 만난 적이 없다. 어찌 됐든 충분히 조심하면 된다. 에코백처럼 오픈된 가방 대신에 조금 더 확실하게 잠가지는 가방을 가지고 다니면 된다. 그러면 이 아름답고 멋진 도시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안녕, 바르셀로나! 다음에 또 올게!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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