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시작
여행의 두 번째 도시, 프랑스 파리에 도착했다. 바르셀로나 산츠역에서 아침 7시부터 기차를 타고 거의 7시간을 달려서 파리 리옹역에 도착. 예전에 수인이와 함께 독일에 갔을 때의 경험 때문에 일부러 기차를 굉장히 이른 시간으로 예약했다. 그 때문에 만족스럽지 않은 숙소에서 1박을 해야 했지만 빠른 시간으로 예약한 건 그 숙소를 감수할 만큼 굉장히 좋은 선택이었다. 원영이는 3시간 넘게 푹 잤고, 수인이도 출발 후 곧 잠들어서 우리 역시 한숨을 돌릴 수 있었으니까. 이번엔 상당히 수월하게 잘 왔다. 원영이가 순둥이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고맙다 우리 아들.
https://brunch.co.kr/@dayemotion/121
파리에서의 이날은 완벽했다. 이보다 더 좋은 시작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완벽했던 시작이었다. 덕분에 파리에 대한 인상이 매우 좋았던 그런 날. 기분 좋은 시작이다.
완벽한 숙소
새로운 숙소에 체크인하기 전에는 사실 약간 불안했었다. 이번에도 역시나 아파트를 빌렸는데 따로 체크인 카운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을 꼭 만나서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불편했다. 그런데 들어가자마자 모든 걱정이 다 사라졌다. 숙소가 정말 너무너무 좋았다. 방 2개에 화장실도 2개고 굉장히 큰 거실과 별도의 주방이 있는 그런 숙소라 우리 가족 4명이 묵기에 딱이었다. 게다가 기대하지 않았던 원영이 아기 침대도 있네! 에어컨은 없지만 창문을 열면 얼마나 시원하지 더위 걱정도 전혀 없었다.
무엇보다도 좋았던 건 전망. 우리 방도 8층이라 그곳에서 보는 주변 전망이 좋았지만 23층 꼭대기로 올라가서 야외에서 보는 전망은 웬만한 전망대가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파리 시내에서 드물게 높은 아파트이다 보니 주변도 탁 트여있고, 몽파르나스 타워와 에펠탑부터 더 멀리는 사크레쾨르까지 유명 랜드마크들도 다 보였다. 파리에 왔구나 하고 실감하게 되는 그런 멋진 아파트. 게다가 23층에는 수영장도 있었는데 물도 따뜻했다. 이런 좋은 숙소라니. 파리에 대한 기대감이 절로 커지는 그런 곳이었다.
"수인아 저기 저거가 에펠탑이야. 보여?"
"어디? 어디?"
"저기 뾰족하게 서있는 거 있잖아."
"응. 우리 빨리 에펠탑 보러 가자."
빨리 에펠탑을 보러 가야겠다. 파리는 뭐니 뭐니 해도 에펠탑이지.
완벽한 슈퍼와 빵집
새로운 도시에 왔으니 먹을거리를 먼저 사는 것이 당연한데, 숙소 1층에 바로 큰 규모로 Monoprix 슈퍼도 있었다. 음식물부터 화장품에 물까지 원하는 모든 것을 전부 다 굉장히 편리하게 살 수 있었고, 수인이가 장난감까지 구경할 수 있는 멋진 곳. 기분 좋아서 잔뜩 샀다. 프랑스에 오니까 그래도 조금 할 줄 아는 프랑스어 덕분에 이것저것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냉동식품도 사고, 페리에 탄산수도 사고, 물도 에비앙으로 사고, 과일도 사고, 우유에 맥주에 과자에 이것저것 등등. 슈퍼 쇼핑은 언제나 재미있다. 이런 좋은 곳이 숙소 1층에 바로 있다니. 숙소가 더욱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다.
또 하나의 멋진 곳은 길만 건너면 있는 빵집이었다. 파리 어딜 가나 웬만하면 빵이 맛있긴 하지만 여긴 진짜였다. 처음에 숙소 체크인하느라 기다리면서 에클레어와 바게트를 사 먹어보고 깜짝 놀랐다. 바르셀로나에서 먹었던 맛있는 바게트는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맛, 심지어 1유로 정도밖에 안 하는 저렴함! 덕분에 이후에 날마다 가서 빵을 사 먹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날마다. 바게트, 케이크, 뺑 오 쇼콜라, 뺑 오 레쟁, 브리오슈, 크로아상 등등. 특히 이후에 아침으로 몇 번 사 먹었던 브리오슈는 잊을 수가 없다. 그리운 그 맛.
바게트 요정 수인이 역시 날마다 바게트를 먹었다. "바게트 사주세요." 이렇게 말하는데 어찌 사주지 않으랴. 그리고 거기의 친절한 점원은 수인이가 오면 작은 빵이라든지 기타 빵을 따로 주곤 했다. 맛있는데 기분까지 좋아지는 그런 빵집. 아침마다 현지인들이 줄을 서서 빵을 사는 풍경이 이해가 갔다.
완벽한 날씨와 산책
불과 지난주까지만 해도 분명히 파리는 폭염이라는 기사를 봤는데 우리가 도착했을 때의 파리 날씨는 서늘할 정도였다. 그래서 저녁을 먹고 산책을 가는데 부랴부랴 얇은 겉옷을 꺼내 입었다. 하늘은 구름도 거의 없이 파랗고 날씨 역시 선선해서 좋으니 이것 또한 완벽. 파리의 시작은 어찌나 좋은지.
숙소 주변에 괜찮은 공원이 있어서 산책을 하러 가는데 수인이가 유모차에서 잠에 들었다. 덕분에 원영이와 우리 부부만의 오붓하고 조용한 저녁 산책을 즐길 수 있었다. 여기는 바르셀로나보다 해가 더 안 진다. 바르셀로나는 최소한 10시가 되면 깜깜해지기라도 했는데 파리는 10시가 돼도 완전히 깜깜해지지 않고 10시 30분은 넘어야 깜깜해진다. 우리가 공원에 산책을 갔던 시간이 약 9시. 그런데 이렇게 밝다니. 어린아이들도 놀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언제 애들을 재우고 언제 출근을 하는 걸까. 이방인에게는 그저 신기하기만 한 풍경이었다.
원영이는 신이 났다. 오랫동안 기차를 타고 와서 오늘 제대로 돌아다니지 못해서 그런가 몰라도 표정도 밝고 방긋방긋 잘 웃었다. 깨어 있으면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말하거나 움직이는 수인이가 자니 아무래도 여유로워서 유럽 여행을 온 후 처음으로 원영이와 셋이서 오붓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신이 났으려나. 이름 모를 꽃들도 보고, 나뭇잎도 만져보고. 원영이가 잘 노니까 우리 역시 아무 근심 걱정 없이 마음껏 즐겼다.
공원에 놀이터가 하나 있는데 시설이 굉장히 좋았다. 놀이터라면 또 사죽을 못 쓰는 우리 수인이에게 알려줘야지. 아마 숙소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모든 게 완벽해서 평화로웠던 파리에서의 첫째 날. 파리에서 보낸 모든 날 중에서 가장 좋았던 그런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