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 의외의 것, 새로운 것
우리가 갔을 때 서유럽 쪽은 한참 폭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프랑스는 40도를 넘고, 스페인도 곳곳이 덥다고 난리였는데 다행히도 바르셀로나는 30도 전후 정도라 한국의 여름이랑 비슷한 수준이었다. 태양은 더 뜨겁지만 한국과 다르게 건조하기 때문에 그늘을 잘 고른다면 쾌적하게 다닐 수도 있었다. 그래도 여름은 여름인지라 더 게으름을 피웠다. 덕분에 오전엔 거의 숙소에 있는 편이었다. 사놓은 걸 이것저것 먹으며 티비로 유튜브도 보고, 원영이 기어 다니게 하며 놀기도 하고. 호텔 대신 레지던스형 숙소를 잡았을 때의 장점이 딱 이런 것이다. 호텔은 더 편리하지만 레지던스는 내 집처럼 더 편안하다.
마음이 편안하고 당장 내일 할 것이 없으니 별것 아닌 집에서의 이 시간도 더없이 행복했다. 아이들과 온전히 함께 할 수 있기에 더 소중하기도 하고. 나이를 조금씩 더 먹어갈수록 회사에서의 역할도 더 많아지니 아무래도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기가 어려워지는 것이 사실이다. 장기 여행이 아니라면 이런 여유를 언제 또 느껴볼 수 있을까. 바르셀로나에서 8박이나 했는데 그 기간 동안 가장 좋았던 점은 그 어떤 멋진 장소보다도 집안에서 보낸 많은 시간들이었다는 점이 아이러니이긴 하다. 뭐 그것이 가족여행이 가지는 진짜 가치가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오전에 늑장을 부리다가 살짝 늦은 점심을 먹을 겸 우리가 즐겨 가는 쇼핑몰로 향했다. 여기에 오면 꼭 장난감 매장을 들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인이가 용납을 하지 않는다. 전에 아빠랑 사진 찍었을 때 도둑이 있는 게 너무 재미있었는지 이번에는 엄마랑도 일부러 도둑 앞에서 사진 찍었다. 그러는 동안 원영이도 아기 용품 코너들을 열심히 구경했다. 시원한 쇼핑몰에서는 뭘 해도 좋다. 게다가 오늘의 목적지인 구시가지 쪽으로 가는 트램도 마침 있었다. 트램이 있다면 타 줘야지. 럭키!
산책하기 좋은 길, 멋진 바다, 놀이동산 등 많은 곳들에 다녀왔지만, 바르셀로나가 참 다채롭고 매력적인 도시라는 걸 오늘 하루 동안 다시 한번 느꼈다. 확실히 그래서 더 즐거운 곳이다.
1. 익숙한 것
바르셀로나의 고딕 지구는 유럽의 많은 오래된 곳들처럼 익숙하다. 좁은 골목길을 걷고 있으면 오래된 시간을 거슬러 온 것 같고, 높은 첨탑의 바르셀로나 대성당은 감탄하며 바라보게 된다. 우리 같은 외국인은 언제 보아도 놀랍고 질리지 않는 그런 모습이다.
바르셀로나 대성당 근처의 골목을 지나다 보니 버스킹을 하고 있었다. 전문 뮤지션들인지 CD도 팔고 있고 실력도 굉장히 뛰어나서 자연스레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마치 우리나라의 <비긴 어게인>을 보는 듯한 그런? 한참 감명 깊게 들었기에 남아 있는 동전도 다 털어서 줬다. 이런 멋진 공연을 들었으면 당연히 보답을 해야지. 덕분에 우리가 보낸 그 시간이 더 낭만적이었다.
고딕 지구 골목에서 걷기 싫어하는 수인이를 달래고자 한참 달리기 놀이를 했다. 걷게 하려면 그렇게라도 할 수밖에 없다.
"준비 땅!"
"아빠 엉덩이 쳐야지. 거기 서!"
그렇게 한참을 달리고 했더니 피곤했는지 수인이는 원영이 유모차에 누워 잠에 들었다. 대신 원영이는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기분이 좋았다. 대성당 앞에서 마음껏 즐거워하던 원영이. 이번 여행을 통틀어서 가장 흐뭇하고 아름다운 사진이다.
2. 의외의 것
고딕 지구로 가기 전에 숙소 사무실에 잠깐 들러야 했다. 중복 결제 문제 때문에 직접 가서 해결해야 했는데 가는 길에 바르셀로나의 개선문이 있다고 지도에 나왔다. 개선문은 파리에 가서 보면 되지 무슨 여기서까지 개선문이야 하는 생각에 원래 제쳐놨던 곳인데 어차피 가는 길이니 잠깐 들리자 하고 갔는데 예상외로 엄청 멋졌다. 크기도 상당하고, 주변도 탁 트인 것이 굉장했다. 붉은 벽돌로 지은 건물도 상당히 색다르고. 아니 이런 곳이 왜 덜 알려졌을까. 상당히 의외였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바르셀로나 엑스포를 기념하기 위해 1888년에 지은 거라고 했다. 그 뒤로는 시우타데야 공원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주말이라 벼룩시장 같은 것도 열려 있었다. 현지인들이 자연스럽게 주말을 즐기는 것 같은 그런 모습이랄까. 아이들은 별 감흥이 없는 것 같았지만 우리 부부는 의외로 굉장히 좋았던 곳!
3. 새로운 것
이전에 바르셀로나에 혼자서 2번이나 왔었지만 분수쇼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그러다가 세계 3대 분수(그건 누가 정하는지...) 중 하나라는 소리를 듣고 그것을 보고자 저녁 늦게 에스파냐 광장에 가기로 했다. 숙소에 와서 아이들은 미리 다 씻기고, 모든 짐을 놓고 핸드폰만 챙겨서 택시를 타고 에스파냐 광장으로 향했다.
분수 근처에는 이미 사람들이 많이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는 수인이와 원영이까지 있으니 더 가까이 가지는 못하고 길 건너서 바라봤다. 이윽고 분수쇼가 화려하게 시작됐는데 그저 감탄만 나오더라. 우와! 꽤 길게 진행이 됐다. 30분가량 봤으려나. 분수가 워낙 크니 멀리서도 잘 보이고 워낙 멋있으니 수십 분이 전혀 지루하지 않더라. 이런 새로운 재미도 있는 곳이라니, 바르셀로나가 더 좋아졌던 순간이다.
4. 그리고 함께여서 더 좋았던 것
이전 며칠에 비해 이날부터 날씨가 살짝 덜 더워졌다. 수인이랑 원영이가 가끔씩 찡찡대긴 하지만 원영이는 맘마를 주면 금방 괜찮아지고 수인이는 잠 좀 자고 나면 또 힘이 난다. 어디서 저런 에너지가 나오는지. 애들은 참 신기하다.
오후에 개선문에 가기 전에 원영이 분유를 줄 겸 근처 공원에 잠깐 들어갔다. 나무가 우거지거나 예쁘거나 한 그런 공원은 아니고 그냥 평범한 공원이었다. 그래도 공원은 공원인지라 그늘 벤치에 앉아있으니 시원하고 참 편하더라. 원영이는 금방 분유를 다 먹고, 수인이는 그동안 옆에서 장난감 가게에서 가져온 브로셔를 열심히 보고 있었다. 둘 다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그걸 보는 나와 아내 역시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원래 계획은 금방 나가는 것이었지만 30분 넘게 앉아있었다.
지극히 평범한 공원이지만 함께여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