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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격감성허세남 Oct 07. 2022

카페 배양장


층고가 굉장히 높다. 전체적으로 회색 톤의 군더더기 없는 내부에는 마주 보는 테이블 대신 같은 곳을 보고 나란히 앉을 수 있는 바 형태의 좌석이 길게 있고, 주문을 하는 카운터 역시 장식은 최소화되어 있다. 음악도 독특하다. 어찌 들으면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같기도 하고, 어찌 들으면 현대음악 같기도 하다. 그리 크지 않아 좋다. 커피를 받아 바다를 바라보는 좌석에 앉았다. 평일 늦은 오후라 그런지 손님은 오직 나뿐이다. 바다를 보며 조용히 커피를 마시던 그 순간은 근 몇 개월 간 가장 평화롭고 인상적인 순간이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이런 순간이 흔치 않은 데다가 이렇게 좋은 카페를 나 혼자 쓰는 순간은 더욱 흔치 않다.


통영 시내 쪽에서 차를 타고 구불구불 해안선을 따라 20분 넘게 가면 나오는 카페다. 예전에 멍게 배양장으로 쓰던 곳의 일부를 카페로 바꿨다고 하는 걸 책에서 보고 꼭 와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름도 <카페 배양장>이다. 어떻게 이런 아무것도 없는 곳에 카페를 낼 생각을 했고, 어떻게 사람들에게 알린 거지? 그저 대단할 따름이다. 외부 바다 바로 앞에도 야외 좌석이 있지만 내부에서 이렇게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게 더 좋다. 멋지다. 이 험한 세상에서 오래 살아남아서 카페를 이어가실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요즘은 지역에 대해 관심이 많다.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몰려있고 그마저도 점점 더 집중화가 심해지는 우리나라에서, 지역의 어떤 도시를 가나 비슷비슷해서 별 차이가 없는 그런 나라에서, 지방 도시가 죽어 간다는 기사가 여기저기서 나오는 상황에서, 각 지역의 고유한 가치를 살리고 매력을 살리는 시도들이 여기저기서 점점 더 활발해지고 있다. 통영의 이런 카페 역시 그런 작은 시도 중 하나라고 본다. 죽어가는 공간을 살리고, 사람들을 모으고, 거기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나아가 지역의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그런 멋진 방향으로 발전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모두가 같은 곳에 살고, 같은 것을 먹고, 같은 것을 보는 건 정말 재미없다. 더 다양한 모습이 공존하는 사회가 멋지고 바람직하지 않을까. 비록 직접적으로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관심과 응원만큼은 아낌없이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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