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본격감성허세남 Oct 21. 2022

어른이 된다는 것


계절의 변화를 맞아 여름 내내 고생한 선풍기와 에어 서큘레이터를 청소했다. 먼지를 물에 한참 불리고, 그동안에 물이 닿으면 안 되는 본체 및 그 외 부분들을 청소하는 등 3~4시간은 걸린 것 같다. 그동안에 아이들은 옆에서 태블릿을 보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소리를 지르고 놀았다. 문득 '아, 이런 게 어른이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습게도 선풍기 청소를 하다가 말이지.


생각해 보면 어릴 때 나도 저런 걸 거의 한 적이 없었다. 그저 나는 나 하고 싶은 것 하기에 바빴고, 아마도 지금의 우리 아이들처럼 엄마와 아빠가 다 하셨을 거다. 아예 저런 걸 하겠다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계절이 바뀌면 선풍기 청소를 해야지, 선풍기를 넣고 나면 가습기를 꺼내야지, 매일 가습기 물도 갈고 주마다 청소도 해줘야지 등등 책임지고 할 일이 많아졌다. 어른이 된다는 건 이렇게 책임지고 할 일이 많아진다는 것 같다. 그게 사소한 것이든 큰 것이든 상관없이 뭐든 다 많아진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회사의 어른은 리더라고 할 수 있는데 책임을 잘 지는 리더가 진짜 리더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직원이 무슨 일을 하든 결국 큰 책임은 리더가 지는 거고 그게 당연한 거다. 그러니까 동시에 성과도 더 많이 가져가는 것일 테고. 이렇게 더 많이 책임진다는 게 꽤 힘든 일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책임만 질 건 아니니 알아야 하고, 내가 책임지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계속해서 조정도 해야 한다. 최근 카카오 장애 사태만 봐도 결국 물러나는 건 대표지 개별 직원이 아니지 않은가. (지금 대표 사임이 좋은 책임이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른이 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예전에는 모든 걸 나 혼자 결정하고 실행했는데, 결혼하고 나니 아내와 함께 의논도 하게 되고, 아이가 생기니 무슨 일을 하든 아이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살다 보면 이렇게 가진 게 점점 더 많아진다. 그러면서 책임질 것도 많아지고, 전보다 과감하게 할 수 있는 것도 점점 없어진다. 그래서 사람들이 보수적으로 변해가나 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안 그래야지, 언제나 과감하게 실행할 수 있는 여지는 남겨둬야지 하고 생각하지만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어른이 된다는 건 쉽지 않다.


나 원 참. 선풍기 청소를 하다가 별 생각을 다 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덕분에 아름다운 퇴근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