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는 맑고, 나무는 울긋불긋하고, 기분도 좋고. 이런 가을에 집에만 있는 건 죄악이다. 전에 신영복 선생님이 가을을 '피서(避書)의 계절'이라고 하셨다. 독서의 계절이 아니라 오히려 책을 피해야 하는 계절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멋진 나날들이 이어지니, 그 어찌 책만 보고 있으랴. 집에서 뒹굴뒹굴하고 싶다는 생각은 어느덧 사라지고 아이들 덕분에 나와서 이렇게 기분 좋은 날씨를 즐길 수 있으니 기쁜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어렸을 땐 오래 놀 수 있는 여름이 좋았고,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긴 겨울이 끝나고 이제 본격적으로 활동을 열심히 할 수 있는 봄이 좋았는데, 30대가 넘어서는 가을이 좋아졌다. 조금은 너그러워졌다고나 할까, 아니 쓸쓸함이 좋아졌다고나 할까. 나중엔 겨울이 좋아지는 시기도 오려나? 봄의 생동감보다 가을의 처연함이 왠지 더 좋다. 하늘이 눈부시게 파래서 더 그런 것 같다. 묘한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