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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진 Nov 05. 2022

흑과 적, 내 운명을 시험해보자

해외에 나가면 카지노를 간다

어렸을 때부터 홍콩의 도박 영화에 심취했다. 그 시절 슈퍼스타였던 주윤발, 유덕화, 주성치 등이 도박의 신으로 출연했던 도신, 도협, 도성 같은 도박 영화의 신작이 비디오 가게에 들어올 때마다 빌려봤다. 빨간색의 ‘연소자 관람 불가’ 딱지는 그저 종이였을 뿐이다. 지금 생각해도 꼭 ‘연소자 관람 불가’를 해야 했으나 싶은 생각은 든다.


도박의 신 주윤발 (영화 도신)


성인이 된 뒤에도 도박 영화는 빼놓지 않고 본다. 조승우 주연의 타짜는 몇십 번을 봤을까? 영화 속 웬만한 장면은 다 기억하고, 인상적인 대사도 거의 틀리지 않고 외울 정도다.


가슴에 순정도 품었던 곽철용 (영화 타짜)


묻고 더블로 가!


도박은 불법이다. 그래도 카지노에서는 하는 것은 넘어간다. 한국에 카지노는 전국에 총 17개가 있다. 그런데 한국인이 국내에서 출입할 수 있는 카지노는 정선의 ‘강원랜드’뿐이다. 그 외는 외국인 카지노다. 제주 그랜드 하얏트에서 숙박할 때 카지노 출입을 하고 싶었지만, 외국인 전용이라 입구에서 살짝 안을 들여다보며 입맛을 다시고 했다.


그렇다고 내가 도박을 좋아하거나 몰입하는 것은 아니다. 카지노의 분위기가 어린 시절부터 보았던 도박 영화의 현실판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국을 나가면 카지노를 들러본다. 그 계기가 된 곳은 남아공의 라스베이거스, 선시티(Sun City)다.


선시티는 (지금도 그런 분위기가 있지만) 남아공의 인종차별 행위가 잘 나타난 장소다. 1979년 남아공의 부동산, 건설 사업가인 솔 커즈너가 건설한 ‘백인 전용’ 리조트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후 호화 호텔, 골프장 등 여러 시설이 생겼다. 그리고 내가 갔던 2010년 1월까지만 하더라도 선시티에서 흑인이 시설을 즐기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흑인은 일하고 백인은 즐기는 것이 남아공의 모습이었다)


선시티는 베이스캠프였던 루스텐버그에서 50km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차량으로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일정 중 여유가 생긴 날에 선시티를 찾았다. 출장 중이어도 하루 정도는 쉴 수 있으니까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야생 사파리를 즐기고 싶었다. 필라네스버그 국립공원(Pilanesberg National Park)에서 사파리를 할 수 있었으나, 예약하고 아침 일찍부터 가야 한다는 점 때문에 포기했다. 대신 다들 선시티 구경으로 의견을 모았다. 선시티는 필라네스버그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했다.


선시티에 있는 팰리스 호텔

우리는 가이드를 따라 선시티 내의 한 호텔에 들어갔다. 지금 와서 떠올려보니 선시티에 있는 호텔 중 최고급 호텔인 팰리스 호텔에 들어갔다. 그리고 카지노로 향했다. 왜냐고? 선시티는 남아공의 라스베이거스니까.


여권 검사를 하고(카지노 출입 시에는 여권이 필수다) 각자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나도 하나 해보고 싶었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룰렛이 가장 하기 쉽다고 하길래 따라 했다. 우리 돈으로 10만 원 정도의 금액을 칩으로 바꾼 뒤 룰렛을 했다. 마음처럼 내가 건 번호에 구슬이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배당이 낮더라도 블랙과 레드 중에서 하나를 거는 것으로 바꿨다. 어쨌든 손해를 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니까.


그래도 한 몫 챙기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과감하게 베팅했으나 결국 다 잃고 말았다.


수중의 칩은 다 사라지고 모형 칩만 배경으로 남았다


돈은 다 잃었지만 그래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카지노의 재미를 흠뻑 느꼈다. 카지노 안에서 흐르는 시간은 일상의 시간과는 전혀 다르게 빠르게 움직이는 듯했다. 얼마 안 있었던 것 같은데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갔으니 말이다.


남아공에서는 한 번 더 카지노를 찾았다. 포트 엘리자베스로 이동했을 때 숙소로 잡은 호텔 근처의 다른 호텔에 작은 카지노가 있었다.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곳이어서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카지노로 산책했다. 물론 거기서도 칩을 다 잃었다.


인생은 탕진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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