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같이 참여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공간이 확대되면 어떨지?
거실에 소파도 없고 티브이도 없다. 양쪽 벽에 책장을 만들어 붙였고 그 앞에 가족 개인 책상이 있다. 거실이 가족 모임 장소이자 도서관이자 일터이고 일시 쉼터다. 작은 아파트여서 개인 서재 갖기도 어렵다. 두 아이 독서 습관 길러 주는 방법은 함께 책보고 공부하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고 생각했다.
거실 내 책상에서 책 볼 때도 많지만 대부분 노트북에 뭘 쓰고 정리하는 게 일이다. 지금 이 글도 거실에서 쓰고 있다. 아이들 유치원 다닐 때 아빠 모습이라고 그린 그림은 항상 노트북과 결합 된 이상한 아저씨 모습이었다.
퇴근 후 거실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은 거의 습관이 되었다. 막내 초등 2학년 때인가 베란다 쪽에 자기 사무실이라고 하더니 어느 순간 거실 자기 책상에 ‘다인 사무소’라고 커다랗게 쓴 글을 붙여 놓았다. 아이는 해맑게 웃는다. 거실 1/4은 이 친구 공간처럼 보인다.
큰 아이는 중학생 되면서 자기 방으로 책상 가지고 들어갔다. 자기 공부에 집중하고 싶다고 했다. 늦은 밤에 퇴근하고 집에 오면 내 책상에 앉는다. 노트북 켜고 밀린 작업도 하고 음악도 듣는다. 큰아이는 자기 공부한다며 초집중인데 나는 장난도 걸고 가끔 봐야 할 영상도 뒤져 보고 원고도 쓰니 집중이 안 되는 모양이다. 거실은 ‘따로 또 같이’ 함께 참여하는 가족 전체의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따로 무엇을 하고 있더라도 한 공간에 있을 때 갖는 특별한 느낌이 있다. 옆에 있으면서 살짝 들여다보고 서로 잠시 눈빛 교환하고 웃을 수도 있고, 책 그만 보고 다른 거 하라고 장난도 칠 수 있다. 특별하게 무엇을 같이 하지 않아도 그저 한 공간에서 각자의 일을 하면서 편하게 갖는 관계의 자리가 좋다.
운영하는 연구소 사무실도 그렇다. 선생님들과 함께 있을 때 가끔 떠들고 장난 치는 사람이 있다. 내가 그런다. 선생님들에게 장난도 걸고 이런저런 말도 안 되는 대화로 웃기려고도 하지만 잘 안된다(가끔은 샘들이 웃는는 이 때 기분이 참 좋다). 공간에 함께 하면서 만들어지는 그 ‘숨’ 같은 느낌을 안다.
이전에 개인연구소 하면서 프리랜서 생활을 몇 년 했었다. 하루에도 두세 지역을 옮겨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났고 강연할 때다. 민간, 공공기관, 시설, 단체 등의 건물에 들어가서 사무실이나 강연장 등의 공간에서 만난 그 순간의 느낌이 모두 달랐다. 모두가 참여의 공간이어야 했지만 어떤 곳은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텅 빈 느낌도 받았다. 심지어 모든 이들이 존재하지 않고 최고 관리자 한 두명만 존재하는 공간도 있었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 답답한 곳이다.
곧 추석이다. ‘쉼’이 있는 사람도 있지만 음식과 차례 등 또 다른 ‘부담’으로 다가오는 이들도 있다. 명절은 같지만 모두가 다른 날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의 공간에서 나이나 돈 또는 그 어떤 위치를 중심으로 무법자처럼 구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만나는 사람들 각자가 존중받고 타자 또한 존중하고 존중 받기를 바라지. 후배들 중에 결혼 안 하고 혼자 사는 친구들이 있다. 명절에 가족과 어울리는 이도 있지만 매번 외국으로 여행 가는 이도 있다. 큰집 등 의례 가야 하는 친척 집에 가기도 하지만 요즘은 혼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 보인다. 이유는 간단하지. 공격적으로 질문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니면 무시하려는 이들 때문이다.
사람을 만나고 함께 하는 공간에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관계의 질이 긍정적이고 복이 되었으면 좋겠다. 방법은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는 것. 그 이상 없다. 무언가 개도하고 관리하려는 이들이 가장 큰 문제다. 책임지지도 안는데 어쩜 그리 충고는 잘 하는지 모른다. 그들이 충고가 옳지 않음에도 강요하는 ‘짓’은 그만둬야 한다.
1시가 다 되는 이 시간에 거실. 막내는 내 뒤에 자기 책상에서 스티커 모음 정리한다면서 열심히 작업 중이고, 큰 애는 자기 방에서 조용히 기타 치고 있고 한 분은 빨래 갠다면서 안방에서 티브이 보다가 잠을 자는 것 같다. 나는 멍하게 이 글을 쓰는 중이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하면서 참여하는 공간으로 서로가 원할 때 관계가 이루어지는 공간이 우리 집 거실이다. 거실에 주인이 티브이가 아닌 사람이어야 하고, 가족의 삶의 관계가 자기 주도적으로 살아 나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무실도 지역사회에서도 명절에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 간의 관계의 공간까지 그 어떤 곳이든 이러한 따로 또 같이 참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공간이 확대되면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