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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건희 Apr 04. 2022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미안함

학교 밖에 있어도 우리나라 청소년들이고 시민이다.

학교 밖 청소년 청소년들의 어려움


학교에 적응을 잘 하면 좋은 학생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학교 적응 관련 논문들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보아 왔다. 학교적응 잘 하는 청소년이 공부 잘 하고 좋은 대학가고 좋은 직장에 갈 수 있는 확률이 높다는 것을 증명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학교적응에 실패하고 학교를 떠난 청소년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이러한 지점과 맞닿아 있다. 학부모들의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인식은 매우 부정적이다.

출처. 머니투데이


통계 들여다보니 매년 6만 여명 내외의 청소년들이 학교를 떠나고 있으며 ’15년 기준 학령기 즉 학교에 다닐 수 있는 나이인 청소년이 647만 명이다. 그 중 학교 밖 청소년은 38만7천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교육부에서는 학교밖 청소년을 칭할 때 ‘학업’을 중단한 학생들이라는 표현을 하곤 한다. 청소년들이 국가에서 운영하는 학교를 중도 이탈한 것이지 학업을 중단했다는 것은 아니지 않나. ‘학업 중단’이라는 표현이 생선가시가 목에 걸린 것처럼 아프다. 탈학교한 청소년들은 공공정책의 단어 하나하나에 부정적인 문제 관점이 녹아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내 보기로 우리가 환경적 문제라고 고려해야 할 대상들은 학교 밖이 아닌 학교 안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잠재적 중도 탈락자라고 들어 보았나? 학교에 열심히 출석 하면서 학생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지만 학교 적응이 힘겨운 청소년들. 학교에는 앉아 있지만 적응하지 못하거나 학교를 그만 두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학생들을 뜻한다.


잠재적 학업 중단 청소년


최근 들어 학업 중단 청소년은 다소 감소 추세를 보이는 반면 학교에 재학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배움을 중단한 상태이거나 중퇴 의도를 가진 청소년인 잠재적 학업중단 청소년이 증가하고 있다고 보고된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학교에서 국영수 수업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고 청소년들의 경우 한 반에서 교사들의 진도를 따라 갈 수 있는 학생들이 몇 명이나 될까 추측하면 상황 파악 쉽다. 입시성적이 자존감과 행복지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학생들의 환경에서 그 공안이 행복할 리가 없다.


그렇다면 학교가 무조건 나쁜 곳인가?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학교에서 친구관계를 깊게 맺고 교사의 배움과 학생회 활동 등을 통해서 나름의 꿈을 꾸며 희망을 노래하는 친구들도 있다. 문제는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 대한 배려가 너무 없다는 것이다. 학교 내 힘겨움을 견디지 못하거나 자신이 꿈꾸던 공부를 할 수 없음에 학교 밖으로 나와서 학업과 진로를 이어가고자 할 때 사회적인 문제 관점과 부족한 지원이 더 큰 문제로 보인다.


청소년들에 대한 배려는 학교내외에서 공동으로 찾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학교는 단순히 적응하는 곳이 아닌, 학생신분을 가진 시민으로서 참여하는 곳이라는 것을 명확히 해야 한다. 학생은 위치권으로서의 자기 권리가 존재하고 이에 따른 책임이 있기 마련이다. 이와 함께 학교를 떠나는 것 또한 청소년들의 선택으로 하나의 권리로 인정하고 학업뿐만 아니라 진로의 장을 지역사회가 만들어 주어야 하고 정책은 거기에 집중해야 한다. 학교 밖 청소년들을 ‘부적응자’라는 편견으로서가 아닌 우리 사회에서 당연히 받아야할 교육에 대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므로 우리가 미안해야 하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 학교 밖, 즉 지역에서의 세심한 배려와 정책, 지원이 적극 있어야 한다.


입시와 취업이 우선일까?


최근 여성가족부의 학교 밖 지원위원으로 위촉 받았다. 관련해서 학교 밖 청소년관련해서 정부 정책 살펴볼 기회가 있었는데 ‘진학’과 ‘취업’ 딱 두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학교 복귀나 검정고시 통해서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고, 자격증 등 취득해서 취업시켜주려는 노력이다. 나름의 성과가 있었다고 보고된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다. 


학교 입시 공부에 저항하거나 문제가 있어서 나온 청소년들인데 학업만을 강조하고 입시를 위한 준비기로 집중한다는 것, 또한 이들이 취업할 수 있는 취업 현장의 열악함 들이다. 정책적 사업으로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만 본질은 이들의 진로 문제에 있지 않을까? 


내 삶과 이 사회의 여러 문제에서 살아 갈 수 있는 어떤 본질적 가치에 따른 자기 고민을 내재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입시에 집중하던지 취업을 하든지 아니면 또 다른 대안적인 삶을 살려는지 어떠한 일이건 선택 할 수 있는 ‘힘’을 주는 활동이다. 특히 단순히 대학생 학습 멘토링 수준을 넘어서 지역사회와의 유기적 연계를 어떻게 할 것인지 다양한 이웃들과의 깊은 관계 맺기와 그 공간에서의 대안적인 자기 삶을 꿈꾸고 실현할 수 있는 방법 찾기 등 해야 할 일들이 넘친다. 핵심은 단순히 검정고시 준비나 학교에 복귀하는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안해야 할 일


또한 청소년들에게 지원을 하면서 학교 밖의 청소년들에게 낙인을 찍어 부족하고 불쌍하고 상처가 엄청 많은 청소년들로 치부하며 동정을 유도하는 일 또한 문제다. 정책 안에서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당연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최소한 미안함이 앞서야 옳다. 학교 밖에 있어도 우리나라 청소년들이고 시민이므로 학교 안에 지원하는 청소년들만큼의 예산과 지원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예산 지원은커녕 문제로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들까지. 청소년들에게 미안해해야 할 일들이 넘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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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에 쓰다가 저장해 놓은 글입니다. 4년 전 글인데 바뀐게 별로 없네요. 4년만에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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